톡톡톡 - 제4회 자음과모음 청소년문학상 수상작 자음과모음 청소년문학 53
공지희 지음 / 자음과모음 / 2015년 8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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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거운 주제를 이렇게 예쁘게도 그려낼 수가 있구나 할 정도로 사랑스러운 책을 오랜만에 만났다.  처음 책을 만났을 때는 푸른빛의 넘실거리는 파도와 자전거를 탄 사람들의 모습이 영 이질적으로 보여졌는데, 표지의 일러가 나타내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안 지금은 참 먹먹하다.  콩닥거리게 다가오는 이야기들이 먹먹함만 남겨놓고 파도의 거품처럼 사라져 버렸다.  아니, 여전히 여운이 남아있고, 보푸라기의 잔향이 남아있고, 십수년전에 내가 떠오르게 되니 책 한 권이 주는 무게가 상당하다.

 

 

공부잘하는 언니와 달리 구박만 받고 엄마의 식당일을 도맡아 도아와주고 용돈 한번 받기 힘든 달림은 자신은 콩쥐라고 이야기를 한다.  중학생인 달림은 집으로 가는 길에 있는 귀신 놀이터에서 혼자 앉아 있는 노랑모자를 만나 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엄마를 찾고 있다는 이 녀석이 왜 달림을 쫄래쫄쨰 따라오는지 모르겠지만, 달림은 사랑스러운 노란모자를 자신의 방까지 몰래 데리고 오고, 노란모자를 하고 있는 꼬마를 볼때마다 따뜻해지고, 애틋해지는 것을 느낀다.  배꼽이 간질간질해지고 따뜻해지는 느낌.  병일지도 모른다고 친구들은 이야기하지만, 이 느낌은 분명 행복하고 따뜻한 느낌이다.  보풀이라고 하는 이 사랑스러운 꼬마를 계속 만나게 될 것 같은 느낌.  "아주 작은 사람을 보풀이라고 하는 거야." (p.60)

 

요즘 아이들답게 이성교제에 대한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나온다.  달림의 소꼽친구인 지평이 나오고, 달림의 절친인 미루의 남자친구인 종하까지. 그냥 같이 있는게 좋았을 뿐인데,  중학교 아이들의 신체가 성인같아 진지는 오래되었다.  함께 있는 것만 좋은 아이들.  어른들은 이야기한다.  '성교육 시간에 뭘 했냐고?'  뭘 했을까?  분명 지지부진한 이야기들을 들었고, 깔깔거리고 웃었는데, 미루가 임식을 했단다.  종하 선배가 무섭다고 달아나 버리면서 미루랑 달림이랑 지평이 셋이서 아이를 같이 키우면 된다고 이야기하는 아이들. 아주 쉽게 답이 나오는 듯 하지만, 엄마에게 이야기하는 건 무섭다.  그러니 아이들이다.  중3의 사고방식은 여전히 어린아이고, 세상을 향한 문을 어떻게 열어주고 보여줘야 할지는 어른들이 할 일이다.  

 

달림이네 가계옆에 자리잡고 있는 뒷문이 열려있는 산부인과.  열 여섯의 엄마가 되어야 하는 것은 무서운 일일수 밖에 없다.  아이가 어른 흉내를 낸다고 어른이 되는 것도 아니면서 열심히 분장하고 찾아간 산부인과.  아이를 낳는 것은 무섭다.  엄마 몰래 낳는것은 더 무섭다.  돌아서 버린것 같은 종하 선배도 무섭다. 이 모든것이 미루는 인생을 포기하는 것처럼 느껴졌을지도 모른다. 그러기에 용기내어 산부인과 뒷문으로 들어갔는데, 미루가 모든 연락을 끊고 사라져버렸다.  미루야... 도대체 어디간거니?   미루 걱정도 걱정이지만, 달림이 주변에서 움직이는 보푸라기는 엄마를 찾을 수 있을까?  달림은 보푸라기의 엄마를 찾아주고 싶어진다.  어느새, 달림이의 엄마도, 언니 해림이도 보푸라기에게 관심을 갖고, 이 예쁜 아기에게 빨려들어 버렸다.

 

계속 엄마를 찾아 다니는 보푸라기의 모습이 얼마나 애처로운지.  바닷가 마을 깊은 곳에 숨겨진 동굴로 달림을 데리고 간 보푸라기.  그곳에 있는 슈가맨과 노랑모자와 같은 모자들을 쓰고 있는 보풀들.  비 내리는 날 보푸라기에게 빌려준 교복 상의를 찾아야 하는데, 슈가맨이 입고 있는 교복을 달라고 할 수가 없는 달림이.  그리고 슈가맨으로 부터 듣게 되는 이야기들.  "저 아이들은 아기들이 자라면서 해야 할 행동들을 그냥 무심히 놀이하듯 하는 거야.  저 아이들은 정말 저렇게 살아보고 싶은 거야.  저 보풀은 지금 핥고 맛보는 중이겠고, 또 저기 저 보풀은 일어서고 걸음마를 하는 거고, 만져보고, 기지개 켜보고, 젖을 빨고, 손가락을 빨고..."  (p.210)

 

'톡톡톡' 두드리는 보푸라기의 손가락 끝에는 얼마나 많은 이야기들이 있는지 모른다.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고맙습니다.  보고싶었습니다.  그 많은 이야기들이 '톡톡톡' 세번의 두드림으로 전해진다.  큰아이를 낳기전에 잃었던 아이도 그런 두드림을 했었을까?  결혼하지 마자 들어섰던 아이.  아이의 잘못됨을 듣고 누워있던 병원은 너무나 두렵고 무서웠었다.  내겐 엄마도, 남편도 있었지만 아이의 사라짐은 아팠고, 두려웠었다.  어쩜 그 아이도 에밀레 별에 가기전에 허락된 지구 여행을 하고 있었을까?  상큼 발랄하기만 할 것 같은 이야기는 고운 포장지를 한겹 벗겨내니, 가족간에도 하지 못했던 이야기들이 숨겨져 있었고,  달림은 해림이 꼭꼭 감춘 아픔과 사라진 해림의 요요를 만나게 된다.  미루가 어떤 결정을 내릴지도 알 수 없다.  어떤것이 정답이라고도 이야기할 수 없다.  미루의 엄마에 눈엔 미루만 보일테니까.  열 여섯 그 예쁜 나이엔 열 여섯에 보이는 것들만 보일테니까.  언제나 모든 순간 고민할 수 밖에 없는 것이 인간이다.  아니, 뱃속에 있을때는 그렇지 않았을까?  저렇게 높은 파도가 몰아쳐도 엄마 뱃속은 안전했을테니까 말이다.  하지만, 그 또한 엄마의 뱃속 밖에서있는 사람들의 생각일지도 모르겠다.  그냥 귀기울여 보자.  누군가 '톡톡톡' 두드리고 있는 소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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