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페르니쿠스가 들려주는 지동설 이야기 과학자가 들려주는 과학 이야기 45
곽영직 지음 / 자음과모음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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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과학 시간에 지구의 둘레를 계산하는 것은 언제나 난제였다.  수식을 풀다가 까딱 잘못하면 이상하게 나왔고 모든 사고의 정지를 느끼게 하는 머리 아픈 시간이었다.  당시 지구과학 선생님은 남자를 만날땐 꼭 지구가 지동설과 지구 둘레를 계산할수 있는 사람을 만나야만 한다고 하셨는데, 지금에 난 지구 둘레 계산도 잊어 버렸다.  그뿐인가?  천동설은 생각도 못하는 남편을 만났으니, 선생님 말씀을 들은걸까?  아니, 위성사진으로, 지구본으로 지구가 둥글고 지동설을 당연히 받아들이고 있으니 감사해야겠다.  어쨌든, 내게 어머어마한 과제를 남겨줬던 지동설을 주장했던, 코페르니쿠스. 그가 들려주는 지동설은 이십년이 훨씬 지난 지금에 와서야 너무나 궁금한 이야기로 다가오고 있으니, 참 아이러니하다.    

 

 

코페르니쿠스는 원래 대학에서는 신학공부를 했고 그후 카톨릭 교회의 참사회 의원이었다.  당시 신학을 공부하면서 철학, 수학, 천문학에 대한 강의도 들을 수 있어서 천문학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는데, 교회에서도 천문학을 배울 것을 권장 했기 때문에 천문학을 공부하게 되었다.  교회에서는 새로운 달력을 만들기 위해서 천문학을 권장했는데, 당시의 율리우스력은 오래 사용하다보니 달력 날짜와 별자리가 10일 이상차이가 나게 되었고, 잘못된 달력 때문에 교회의 권위가 서지 않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코페르니쿠스는 달력보다는 지동설이냐, 천동설이냐가 더 고민이었고,  당시에는 모두 천동설을 믿고 있었는데, 공부를 하다 보니 이상한 부분이 많아 새로운 체계를 만들고 싶어 했다.

 

언제부턴가 사람들은 자연현상들이 신 때문에 일어난다는 것을 점점 믿지 않게 되면서 자연 현상을 과학적으로 분석하기 시작했다.  그런 생각은 여러 곳에서 나타났지만, 크게 기여한 사람들은 고대 그리스 인이었다.  그리스는 인구도 영토도 적고, 넓지 않은 나라였지만 인류 역사 발전에 끼친 영향력은 대단했고, 당시에는 신화만큼이나 황당한 이야기가 많았다.  신화와 과학은 다르다.  신화는 누구도 반박할 수 없지만 과학은 그들의 주장을 비판하거나 반박할 수 있기에 고대 그리스 인의 주장이 과학의 시초라고 할 수 있다. 그리스 과학자들은 관측과 측정을 통해 많은 사실들을 알아냈지만, 그때까지 알아낸 사실들을 모두 비례 값이었고, 정확한 값을 알기 위해서 지구, 달, 태양 중 하나의 크기만 측정하면 나머지 값의 비례식을 이용해서 계산할 수 있는 일을 에라토스테네스가 알아낸다.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의 수석 사서로 근무하면서 여러가지 재미있는 실험을 하던 에라토스테네스는 지구 둘레를 측정하길 원했다.  그는 태양빛이 매년 하지에 시에네에 판 우물 바닥까지 비춘다는 사실과, 알렉산드리아에서는 절대 일어나지 않는 다는 것을 알게된다.  알렉산드리아는 시에네에서 약 800km떨어진 도시로, 그는 태양빛이 시에네 우물의 바닥까지 비추는 시각에 알렉산드리아에서 막대 그림자의 각도를 측정해서 각도가 7.2도라는것을 알아내고, 지구중심에서 시에네와 알렉산드리아에 그은 두 직선이 우루는 각과 같다는 것을 알게된다.  이렇게 에라토스테네스는 지구 둘레가 25만 스타드라는 것을 계산하게 되는데, 이 값은 실제 값과 2% 오차밖에 나지 않았고, 그렇게  최초의 과학적인 방법으로 지구의 크기를 알아냈다.

 

고대 천문학자들 모두 지구는 정지해 있고 모든 천체가 지구 주위를 돌고 있다는 지구 중심의 우주관을 가지고 있지는 않았다.  기원전 5세기 피라고라스의 제자였던 필로라우스는 지구가 태양주위를 돌고 있다는 말을하다 미친사람 취급을 당했고,  기원전 310년에 태어난 아리스타르코스도 태양 중심 천문체계를 만들었다.  하지만 지동설은 고대 그리스인의 경험과 상식에 맞지 않았고, 지구가 실제로 운동하고 있다는 것을 증명해 줄수 있는 증거가 하나도 없었기 때문에 아리스타르코스의 지돌설은 천동설과의 논쟁에서 졌기 때문에 역사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복잡한 천동설 체계를 완성한 것은 프롤레마이오스로 <수학집대성>이라는 책을 썼는데 이책은 후에 <알마게스트>로 알려지면서 '천문학 백과사전'과 같은 책으로 여겨졌다.

 

코페르니쿠스에 지동설에 관한 주장 중에는 현대적인 관점에서 볼때 틀린것이 두가지 있었는데, 하나는 고대 그리스의 생각을 그대로 받아들여 행성이 원동을 할 것이라고 판단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행성들이 태양 가까이 있는 어떤 점을 중심으로 돌고 있다고 주장한 것이다.  이런 실수는 1500년대에 살았던 그로서는 짐작도 할수 없었기 때문이었는데, 코페르니쿠스의 주장들은 <천체의 회전에 관하여>라는 책에 실려있다. 코페르니쿠스의 주장은 레티커스가 지지해주었고, 레티커스가 출판을 해주면서 코페르니쿠스는 죽기전에 자신의 책을 보게되지만, 그의 책에 실린 두개의 서문 중 하나는 그 당시의 사회분위기를 반영하듯 그의 책 내용을 허무맹랑한 이야기로 몰고 간다.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은 갈릴레이와 케플러 같은 후배과학자들에 의해서 완성이 된다.  우주 관측이 가능한 망원경을 만들어 천체를 직접 관측한 갈레리이는 이단 심문소에서 지동설 금지 이후 "그래도 지구는 돈다'라는 말로 유명한데, 진실여부는 알수 없다. 브라헤의 조수였던 케플러에 의해서 행성이 타원운동을 한다는 것을 밝혀낸다.  하지만 케플러는 천체들이 태양으로부터 멀어질수록 왜 가까이 있는 행성보다 천천히 도는지에 대해 알지 못했는데, 이를 해결한 사람이 바로 중력이라는 개념을 알아낸 뉴턴이다.  태양으로부터 멀어질수록 중력의 영향도 덜 받게 되어 태양과 가까이 있는 행성보다 천천히 돈다는 것을 수학적 공식으로 밝혀냄으로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은 완성이 된다. 그리고 우리아이들은 지금 그 내용들을 배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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