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오미와 가나코
오쿠다 히데오 지음, 김해용 옮김 / 예담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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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꽤 오래전에 <델마와 루이스>를 본 적이 있다.  20년도 전에 만들어진 영화는 요즘도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릴정도로 파급력이 강하고 잘만들어진 영화였던 기억이 난다.  자유를 외치며 그랜드캐년 벼랑끝을 질주하던 그들은 분명 사회적 약자로서 갇혀있던 벽을 깨고 나아가는 모습이었다.  지금보다 어린시절 어린시절 만났던 영화였기에 내 의식속에 델마와 루이스에 교감을 했었는지도 모른다. 이십대에 만났었던 델마와 루이스가 생각난 이유는 오쿠다 히데오가 그려낸 나오미와 가나코가 그녀들처럼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분명 영화와는 다른 내용임에도 불구하고 나오미와 가나코의 이야기는 그녀들을 떠오르게 만든다.

 

 

  백화점 외판부 여직원 나오미. 미술학을 전공하고 미술관 큐레이터를 꿈꾸던 그녀가 백화점 외판부직원이 된것은 운명이었는지도 모른다.  자신이 원하던 일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하나씩 외판부직원으로서 경력을 쌓아가고, 돈많은 고객들의 취향을 맞춰주면서 쾌감을 느낀다.  나오미의 친구인 가정주부 가나코.  결혼전부터 서로 잘맞는 그녀들에겐 서로에게 이야기할 수 없는 비밀이 있었다.  어머니에게 상습적인 폭력을 가하던 나오미의 아버지.  남편의 폭력에 무방비로 노출되어 숨고싶어하는 가나코.  남편의 무자비한 폭력에 어떠한 저항도 할 시도조차 하지 못하고 숨죽이고 살고있는 가나코의 현실을 우연히 알게 되면서 나오미는 어린시절 아버지로 부터 상처입은 트라우마가 되살아나기 시작한다.  

 

"차라리 둘이서 죽여버릴까?  네 남편." (p.123)

 

  입에서 나오는 순간 말에는 힘이 생긴다.  머릿속으로만 생각했던 것들이 입을 통해서 나오는 순간부터는 계획을 세우게되고 뭔가를 해야만 할것 같은 압력을 느끼기도 하면서 구체화되어간다.  어린시절 아버지의 폭력을 가나코의 남편인 다쓰로에게서 발견한 나오미는 '클리어런스 플랜'을 세우고, 이 플랜을 실현하기 위해서 모든 힘을 쏟기 시작한다.  "죽여버릴까"라고 이야기를 하면서부터 나오미는 가나코의 남편을 사람으로 생각하지 않기에 '제거'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그리고 남편의 폭력에 벌벌 떨기만 하던 가나코는 나오미의 말에 동조하는 순간부터 변하기 시작한다. 그녀들의 위험한 '클리어런스 플랜'는 말도 안되게 착착 진행되어 가면서, 완전 범죄가 가능할 것처럼 느껴지기 시작한다.  

 

  오쿠다 히데오는 '나오미 이야기'를 통해서 '클리어런스 플랜'을 제안하고 준비, 실행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그녀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모든 것들이 이 플랜을 실현하기 위해서 지금까지 있어왔던 것처럼 그렇게 그녀가 실현해나가는 계획은 말도 안되게 현실화 되어 간다.  하지만, 세상 어디에 완전 범죄가 있겠는가?  완전범죄를 꿈꾸는 이들은 수도없이 많지만, 범죄는 범죄다.  사람의 목숨을 신이 아닌 인간이 처리하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인가?  이런 문제에 대한 생각은 오쿠다 히데오의 글에서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른 속도감으로 생각의 회전을 멈추게 만들어 버린다. 그리고 생각의 회전이 멈추어진 순간 모든 경우의 수를 치밀하게 계산한 완전범죄라고 믿었던 '클리어런스 플랜'의 허점들이 하나씩 드러나면서 나오미와 가나코는 시시각각 궁지에 몰리게 된다.
 

  플랜의 완성을 위해 나오미와 가나코가 모의한 가나코 남편의 실종에 따른 사후 처리와 주변 인물들의 의혹은 이제 가나코의 몫으로 남게 된다.  하나씩 드러나는 허점들을 가나코는 어떻게 빠져나갈 수 있을까?  분명 '클리어런스 플랜'이라는 근사한 단어를 사요하고 있지만, 살인은 범죄다.  가능할것 같지 않은 일들이 벌어지고, 가나코의 남편과 똑같은 모습을 하고 있는 중국인 린씨(린류키), 그녀들의 이야기를 따라가다보면 이 말도 안되는 범죄현장이 너무나 당연하게 받아들여지고, 은연중에 그녀들을 완벽한 피해자로 여기면서 그녀들의 완전 범죄가 완벽하게 클리어되기를 바라게 된다.  그러기에 가나코 시어머니나 시누인 요코의 행동을 가족을 찾는 몸부림이 아닌 집착이나 범죄로 여겨지게 된다.  나에게 문제가 생긴걸까?  폭력은 어떠한 경우라도 용납되지 않는다.  그럴진데, 그녀들이 말하는 플랜은 살인이다.  후회도 용서도 할수 없는 두번다시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 것이 그녀들이 말하는 플랜이다.

 

  어디까지 갈수 있을까?  '델마와 루이스'처럼 그랜드 캐년 넘어로 달려야할까?  이야기의 끝은 아무도 모른다.  완전범죄는 애시당초 불가능했고, 그 과정을 생각하는 순간순간이 그녀들에겐 더 행복했는지도 모른다.  플랜이후 가나코는 충분히 행복할까?  아니, 자신과는 상관도 없는 일에 어린시절을 투영하고 플랜을 실행한 나오미는 행복할까?  모든 가족을 뒤로하고 둘만이 새로 시작하는 삶이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읽는 독자들뿐 아니라 나오미와 가나코조차도 말이다.  분명 오쿠다 히데오는 독자들로 하여금 롤러코스터에 태우고 스릴을 만끽하기에 부족함 없게 만들었다.  소설은 소설일 뿐이기에 통쾌함만 기억하려한다.  폭력은 폭력을 부른다는 것도, 폭력 뒤에 '클리어런스 플랜'을 계획하는 것도 그저 소설이길 워원한다.  내가 그녀들에게 동조하는 것도 역시나 소설에 동화되었기 때문이다.  현실이 소설보다 더 소설같은 시대에 살고 있는 지금, 그저 현실에선 절대 이 모든 일들이 일어나지 않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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