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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중 용접공 ㅣ 미메시스 그래픽노블
제프 르미어 지음, 박중서 옮김 / 미메시스 / 2015년 1월
평점 :
품절
서문을 읽지 않고 만화를 읽었다. 읽으면서 어린시절 만났던 <환상특급>이라는 외국 드라마가 떠올랐는데, 이 이야기가
현실과 환상의 중간쯤에 모호한 상태가 꼭 안개속에 갇혀있는 것 처럼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구전되어지던 이야기들도 있었던 것 같은데, 지금도
인위적으로 만든 꿈과 침대 귀신이 어렴풋이 생각이 난다. 『수중 용접공』은 내게 <환상특급>을 떠올리게 했는데, 데이먼 린들로프가
서문에서 이야기를 하고 있다. <환상특급>에서는 아쉽게도 누락되었던 에피소드들 중에서도 가장 뛰어난 이야기라고 말이다. 분명
만화책을 읽고 있는데, 이 느낌을 뭐라고 해야할까? 이 거친 그림체 속에서 과거의 소리와 음악이 들려오는 듯한 착각에 빠지는 것은 나뿐일까?
그런 기분이 든다면 '수중 용접공'이라는 <환상특급>의 기이한 열차에 함께 올라타도 문제가 없을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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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잭 조지프이다. 나는 노바스코샤 주 티그스베이 해안에 설치된 석유 시추션에서 수중 용접공으로 일하고 있다. 나는 이곳에서
태워났고, 아마 이곳에서 죽을 것이다. 이제 나는 우리 아버지가 나를 낳았을 때와 같은 나이가 되었다. 아버지는 1990년의 핼러윈 데이
밤에 사라졌다. 내가 열 살 때였다..' (p.98~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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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바스코샤 연안의 시추선에서 일하는 수중 용접공 잭 조지프는 막대한 수압을 견디며 깊은 바다 속에서 일하는 데에 익숙한 사람으로
나온다. 어느날 잭은 바다 밑에서 시계 하나를 발견하게 되면서 이상한 경험을 하게 된다. 누군가 자신에게 말하는 소리. 바닷속 보물을 찾던
아버지처럼 잭은 물에 이끌리고, 유일하게 마음 편하고 혼자인 장소인 바다속을 좋아한다. 아내의 출산일이 얼마남지 않았다는 걸 알면서도 한
아이의 아버지가 된다는 부담감 앞에서는 이상하게도 위축되어 버리고는 물속으로 점점 더 깊이 들어갈수록, 잭은 아내와 곧 태어날 아들로부터 점점
더 멀어지는 것만 같았다. 기시감처럼 잭의 머릿속을 스치고 가는 장면들. 잭은 그 고통을 참지 못하고 출산이 임박한 아내를 두고 다시
바닷속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얼음처럼 차가운 해저의 고독 속에 깊이 들어가 있는 사이에 설명이 불가능한 일이 생긴다.
바다밑 바닥에서 시계를 줍자마자 잭의 시간은 뒤죽박죽으로 변하고, 시추선으로 올라온 잭은 홀로 남아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시공간이 뒤죽박죽이 되어버렸음에도 잭은 아내의 출산을 걱정하지만, 그 순간 잭은 아버지와 함께했던 10살의 어린 아이로 변해
있다. 이혼을 한 부모님. 만남이 쉽지 않은 아버지는 잭과 함께 할때 마다 술을 드셨고, <가라앉은 도시>라는 놀이를 하곤
했었다. 온 마을이 물속에 가라앉아 있다고 상상하면서 아버지와 함께 한 시간들. 바닷속 보물을 찾고자 했던 아버지와 아버지가 건네주던 시계를
쓰레기라며 버렸던 어린 잭. 그리고 그 시계를 찾아주겠다고 약속 했던 아버지.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핼러윈 데이에 물에 들어 갔다가
사라져 버린 아버지. 잭에 기억속에 봉인이 풀리면서 잭은 다시 바닷속으로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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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과 환상의 중간쯤인 어딘가에서 잭은 그렇게 아버지를 만난다. 아들을 위해 시계를 찾던 아버지를. 아들에게 모든 것을 보여주고
싶었던 아버지를 잭은 아버지가 자신을 낳았던 나이가 되어 드디어 만나게 되고, 잭은 비로서 아버지가 될 준비를 하게 된다. 모든것이 사라질 것
같은 그 시간에 시추선 위에선 위험을 감지한 동료가 내려와 잭을 구해내고, 잭은 아내가 순산을 한것을 알게 된다. 그리고 이 환상특급은 잭은
손에 어린시절 물속에 버렸던 시계를 보여주면서 끝이난다. 『수중 용접공』은 아버지와 아들, 탄생과 죽음, 기억과 현실과 함께 수면 아래 묻어
두고 있던 기억의 보물을 꺼내주고 있다. 어쩌면 정신과에서 치료를 받아야 할 이야기를 잭은 스스로 치료를 받고 이겨냈는지도 모르겠지만, 이
모든것 뒤에 항상 수면 아래에서 잭을 바라보며 응원하고 있던 아버의 존재가 있었던 건 아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