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테이트 오브 더 유니언
더글라스 케네디 지음, 조동섭 옮김 / 밝은세상 / 2014년 11월
평점 :
절판


  친정엄마와 이야기 하다 보면 간혹 엄마의 인생은 책 한권 분량이다라고 말씀을 하신다.  어린시절부터 여학교시절,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 우리 남매가 결혼을 할때까지의 이야기들은 너무 많이 들었음에도 그리 세세하게 기억이 남지는 않는다.  엄마가 걸어왔던 길을 글로 남기면 어떨까하는 생각을 이 책을 읽으면서 했었다.  함께 기뻐했던 일들, 함께 슬퍼하고 아파했던 일들, 기억속에서 모조리 지워버리고 싶은 일들까지 엄마의 세월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빅 픽처』가 워낙에 강했기 때문에, 후속작들이 빛을 덜 발했다 하여도, 여전히 더글라스 케네디의 작품들은 히트를 치고 있고, 자꾸만 손이 가게 된다.  여자의 심리를 어떻게 이렇게 잘 묘사 할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여성 심리에 정통한 더글라스 케네디가 선사한 이번 작품은 인생의 모든 조각들의 모음이다.  1966~1973년까지의 젊은 시절의 한나의 이야기와 50이 넘어버린 2003년 현재의 한나의 이야기가 1, 2 부로 나뉘어 져서 보여지고 있다.

 

 

 

  스무살은 법적으로는 성인이 되는 나이이니 모든것이 변화하는것은 사실이지만, 정신적으로 어른이 되었다고는 할 수가 없다.  결혼을 한후 주변을 보니, 서른이라는 나이도 여전히 아이같은 나이인데, 스무살이 무슨 어른이겠는가?  하지만, 스무살에 도달한 아이들은 스스로 어른임을 내세우기에 엄마와 아빠의 관계를 분석하려하고 자신의 주장을 관철하려고 한다.  한나 역시 그랬다.  베트남전 반대운동을 이끌며 매스컴의 총아가 된 존 윈드럽 래덤 교수와 뉴욕갤러리에서 매년 개인전을 열 만큼 널리 인정받는 화가인 도로시 래덤의 딸인 한나 어릴 때부터 한나는 자기 자신의 이름보다는 ‘누구누구의 딸’로 더 알려져 있다. 한나는 스스로를 부모와 달리 특별한 재능을 타고 나지 못한 존재로 인식하면서 부쩍 자신감을 잃지만, 부모는 부모이기에 '엄마의 자살 기도는 결별을 선언한 남편과 반기를 든 딸에 대한 지배력을 재확립하려는 의도적인 계획이 아니었을까?' (p.57) 하면서 자신의 의견을 내세운다.

 

  한나의 엄마는 다양한 남자들을 만나보라고 권유하지만 한나는 댄을 만나면서 단 한 번도 한눈을 팔지 않는다. 한나가 졸업도 하기 전에 댄과의 결혼을 발표하자 도로시는 평생 ‘전업주부’로 살려고 하냐며 딸을 비꼬고, 한나는 부모의 우려와 친구 마지의 충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댄과 결혼해 곧 아이를 임신하고 출산한다.  한나는 자신이 부모가 우려하던 대로 덫에 걸렀고, 출구가 보이지 않는 막다른 길에 서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인생이 이런것을..."제프리를 돌보느라 잠을 설치다보니 스트레스를 받기도 하고, 펠험으로 이주한 결정도 실수인 것 같고, 블랜드 박사 집에 들어가 살기로 했다가 어그러진 것에도 마음을 상했어요. 물론 제 인내심이 부족한 탓이죠.  살다 보면 뜻밖의 일이 생길 수 있으니까요." (p.110)  아빠를 통해 알게된 토비어스 저슨이 댄이 시아버지의 병환으로 집을 비운 시기에 한나의 집에 머물면서 한나의 삶을 뒤흔들어 놓은 사건이 발생한다.

 

  육아에 지치고 남편에 대한 애정이 식어 외롭고 지쳐있을 때 찾아온 저슨의 유혹은 한나가 넘어가기에 충분히 매혹적이었다.  누가 알았겠는가?  그렇게 멋져 보이던 저슨의 목적이 한나를 이용해 캐나다로 도주하기 위한 것이었을 줄.  한나는 협박과 불안에 저슨을 캐나다까지 피신시키고 돌아온다. 이게 끝이라고 생각을 했었다.  '어떤 비밀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은 없어. 아니, 양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 비밀로부터 자유롭게 벗어나서는 안 돼.' (p.219) 친구인 마지에게만 털어놓은 이야기를 속에 품고 한나는 삶은 2003년을 배경으로 넘어온다.  34년 동안 헌신해 온 결혼 생활의 결과 존경받는 교사, 남편은 의사, 아들은 변호사, 딸은 펀드매니저가 되어있으니 완벽한 집으로 보이는데,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니다.  자기만의 세계에 빠져 있는 남편, 강한 종교적 신념으로 배타적인 아들 제프리, 유부남과의 실연에 절망하고 있는 딸, 리지까지 한나의 삶은 항상 그리 순탄치가 않다.

 

  서른해가 지났다.  그렇게 깐깐하던 엄마는 알츠하이머로 자신을 알아보지도 못하고, 아빠 역시 세월을 이기지는 못한 시간이 되었다.  가장 친한 마지는 폐암으로 몇개월 남지 않았다고 하고 세상은 그냥 흘러가는것 같이 느껴져야 하는데, 그렇지가 않다.  이제 아이들만을 바라보는 나이도 남편만을 바라보는 나이도 아니지만, 여전히 치기어린 행동을 하는 딸아이는 한나의 아픈 손가락이고, 리지를 절망속으로 몰아놓은 의사를 그냥 보고만 있을 수도 없는데, 세상은 리지를 정신병자로, 한나와 댄을 제대로 양육을 하지 못한 인물로 몰아세운다.  멀쩡한 사람을 한순간에 바보로 만드는게 이렇게 쉬웠던가?  말도 안되게 그 옛날 생각하기도 싫은 토비어스 저슨이 책을 썼고, 그중 한 챕터가 한나에 관한 이야기란다. 사랑에 빠져 조국과 남편을 배신한 유부녀.  세상이 다 알아버린 리지의 실종과 맞물려 책을 팔 욕심인지 저슨이 나섰다.  모든걸 잃어 버린 한나.  왜 모든게 이렇게 엉망이 되어 버리는 건가?  한마디로 듣지 않고 한나의 독서토론 친구에게 가버린 댄, 낙태를 옹호했다는 이유로 등을 돌린 제프리. 여전히 미궁에 빠져 실종상태로 있는 리지.

 

  더글라스 케네디를 알고 있는 독자라면 이야기의 전개가 어떻게 될 것인지 대략의 감은 이미 잡고 있을 것이다.  그 생각이 맞다.  새드도 해피도 아니지만, 한나를 위기에 그대로 넣어 두지는 않는다.  더글라스 케네디의 모든 작품들이 약간은 권선징악을 풍기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세밀한 심리 묘사는 역시나 책을 읽는 내내, 한나와 동일시 되게 만들어 버리고, 황색 기사들이 목을 죄어오는 것을 바라보면서 어떻게 할 수 없는 나약함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어느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생! 필할 수 없다면 당당하게 마주하라!'라고 이야기를 하지만, 이걸 어떻게 당당하게 마주할 수 있겠는가?  바로 어제까지도 웃으면 지내던 이들이 내게 등을 돌리고, 가족마저도 떠나버리는 상황에서 말이다.  아버지 외에 한나에겐 가족도 아군이 아니었다.  삼십년을 산 남편이 얼씨구나 다른 여자에게 떠나버리는 상황이라니... 세상은 원래 이렇다고 포기해 버릴까?  한나는 아이들을 제대로 키웠다고 이야기 하고 있지만 책을 통해 만난 아이들은 결코 그렇게 다가오지는 않는다.  엄마의 삶을 그려보다가 책 말미엔 내게 맡겨진 아이들을 최선을 다해 사랑으로 키우자로 생각이 바뀌어버린 소설이『스테이트 오브 더 유니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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