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비늘 - 개정판
이외수 지음 / 해냄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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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제 읽었는지도 기억이 나지 않지만, 『황금비늘』을 처음 만나건 아니다.  언제나 현재의 나를 기준으로 하고 있으니, 어린시절 만났던 『황금비늘』은 『벽오금학도』만큼이나 신비롭고 재미있는 이야기로 다가왔던 기억만 남아 있었다.  그저 안개 낀 날 황금빛 비늘을 흩날리며 헤험쳐 다니는 물고기와 어린 아이만 기억속에 남아있었는데, 개정판으로 다시 만나게 되니 지금보다 과거의 시간속에서 만났던 이야기들과는 전혀 다름 느낌으로 다가온다.  두 살 때 부잣집 대문 앞에 버려진 김동명은 뛰어난 기억력을 갖고는 있지만 작은 체구에 독특한 수리법을 가지고 있는 특이한 아이였다.  어느곳에서나 사람들은 겉모습으로만 판단을 하는지 번번이 입양의 기회를 놓치고, 힘센 아이의 놀림감으로 괴로운 나날을 보내던 중 동명은 보육원을 뛰쳐나오게 된다.  

 

 

'인간+돈=인격체, 인간-돈=산송장.  내가 보육원을 탈출해서 뼈저리게 절감한 공식이었다.' (p.56)

 

  열한 살에 인간사를 이렇게 깨우치다니 동명은 확실히 특출난 아이임에는 틀림이 없다.  동명이 만난 다리를 다친 장애인 도척.  사람의 인연을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까?  도척과의 인연은 부자의 연을 맺게 되고, 도척이 모시고 있는 자식에게 버림받은 노인은 할머니가 되어 가족을 이루게 된다.  할머니의 죽음 후 술로 세월을 탕진하다 도척의 건강은 극도로 나빠져 시각장애인 지압사에게 치료를 받게 되면서 또 다른 인연으로 지압사인 조선생과 그의 아내가 가족이 되어 편온한 나날을 보내게 되는데, 조 선생의 희망이었던 맹도견을 위한 모임의 후원금을 소매치기 당하면서 움추리고 있던 도척이 움직이기 시작한다. 하반신을 움직이도 못하면서 조선생의 돈을 찾아온 후 동명에게 한 말. "아버지의 전직은 소매치기였다."(p.131) 이런 고백을 들으면 충격적이어야 할텐데, 동명도 도척도 보통사람들이 아닌지, 별반 반응이 없고 한술 더 떠서 도척은 과거 소매치기시절 지녔던 삼감사수와 함께 번개손의 비법을 동명에게 전수해주기 시작한다.

 

'도척은 도둑에게도 도가 있다고 주장했는데, 방 안에 무엇이 있는지 잘 알아 맞히는 게 성(聖)이고, 들어갈 때 선두에 서는 것이 용(勇)이며, 나올 때 맨 뒤에 있는 것이 의(義)이며, 되는지 안 되는지를 아는 것이 지(知)이고, 분배를 공평하게 하는 것이 인(仁)이며, 뒤주 속에 한 끼를 남겨두는 것이 예(禮)라는 것이었다.' (p.134)

 

  비법을 전수하고 세상을 떠난 도척과 급증하는 소매치기에 대한 경찰의 대응이 시작되고, 동명은 지방으로 잠적하던 중 버스에서 만난 한 노인과 춘천의 외딴 마을에서 함께 살게 된다.   이쯤되면 동명이 꽤나 나이가 들었을것 같지만, 여전히 동명은 열셋에서 열네살의 어린 소년이다.  작가는 슬쩍 슬쩍 이야기 속에 또 다른 이야기를 끼워놓고, 복선도 깔아놓지만, 복선이었다는 사실조차도 인지하지 못한 상태로, 이야기의 흐름에 따라가기에 바쁠뿐이다. 세상이 뜻대로 되지 않아 세상에 대한 미움으로 마음을 가득 채워버린 동명에게 도인의 경지에 이른 할아버지 무간선은 낚시를 통해 세상을 읽는 법을 가르쳐준다. 머리를 쓰기보다는 마음을 쓰며 살아가라는 가르침이지만 쉽지만은 않다.  미친 노인이 아닐까 싶다가도 무간선를 찾아온 국회의원이나 배금주의 사상에 사로잡한 낚시터 주인처럼 마음을 등지고 물질만을 좇는 사람들을 보며, 동명은 어느덧 무간선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무간선의 선동으로 살아가기 시작한다.  

 

"진정한 낚시꾼은 물고기를 낚는 법을 배우기 전에 먼저 자기 자신을 낚는 법을 배워야 하오.  자기 자신을 낚는 법을 배운 다음에는 자기 자신을 방생하는 법을 배워야 하오.  자기 자신을 낚는 일은 온 우주를 낚는 일이며, 자기 자신을 방생하는 일은 온 우주를 방생하는 일이오." (p.271)

 

"흥부가 다리를 다친 제비를 보고 불쌍함을 느껴서 치료를 해준 것은 마음에서 기인된 행동이지만, 놀부가 멀쩡한 제비의 다리를 분질러서 치료를 해준 것은 생각해서 기인된 행동이니라." (p.407)

 

  참 어려운 말을 열네살 소년에게 무간선을 들려주고 있다.  물론 이 말들은 동명이라는 어린 소년을 통해 내게 들려주지만, 마흔이 넘은 내게도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스무해전에 『황금비늘』을 만났던 나는 무간선의 말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었을까?  기억조차 나지 않고, 지금 이순간 너무나 새롭게 다가오니 그렇지 않았던 것 같다.  무간선을 찾던 문재형이 낚시터에 취직을 하게 되면서 낚시터 조양제를 배경으로 새로운 이야기가 펼쳐지고 또 다른 인연들이 시작된다. 잠깐 스치듯 지나간 안개속을 헤험치는 무어의 존재를 아는 이를 이곳에서 만나게 될 줄 동명은 알 수 없었을 것이다.  세월을 낚다 금선어를 쫒아 사라져 버린 가연의 아버지.  그녀는 아버지를 찾을 수 있을까?  무간선은 이야기한다.  금선어는 무원동에 살고 있는 물고기로, 그곳은 언제나 자비로운 기운으로 가득 찬 곳이라고. 그곳에서만 금선어는 안개속을 헤험쳐 다닌다고 말이다.  

 

  안개 낀 날 황금빛 비늘을 흩날리며 창공을 헤엄치는, ‘초월적인 힘’을 지닌 ‘무어(霧魚)’를 중심 소재로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상상속의 물고기는 그리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지는 않다.  가연이 등장하고 동명이 황금물고기의 비늘로 소매치기의 직감으로 인해 강한 전율감을 느낄때까지만 해도 말이다.  모든것을 꿰뚫고 있는듯한 무간선의 말이기에 책을 읽다보면 어느새 그의 말은 모두 진리인것처럼 느껴지고 다른 의미를 찾지 않아도 되는 것처럼 느껴질때도 있다.  인생의 진정한 의미가 무엇이라고 딱 잡아서 이야기할 수 있는 이들이 얼마나 될까?  톨스토이의 소설처럼 그저 '사람은 사랑으로 살지요'라고 이야기 할 수도 없지 않는가?  누구에게도 답은 정해져 있지 않지만, 누구나 가지고 있는 것 또한 그 답일 것이다.  어떤 가치관을 가지고 어떤 삶을 살아가느냐에 따라서 우리 인생은 그만큼 달라지니 말이다.  굉장히 도교적인 냄새가 강하다.  물욕의 허망함을 이야기하고, 도인의 경지에 이른 노인은 세상과의 화해를 열네살 소년을 통해 우리에게 들려준다.  받아들이는 것은 각자의 몫이다.  작가 역시 딱 부러지게 이렇게 이렇게 하시고라고 강요하고 있지는 않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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