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가야는 하나로 통일되지 못했을까? - 월광 태자 vs 진흥왕 역사공화국 한국사법정 4
조원영 지음, 이주한 그림 / 자음과모음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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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은 아이가 초등학교 5학년이다.  큰아이가 초등5학년때에는 한학기만 한국사를 배웠는데, 작은아이는 큰아이와 달리 1년동안 한국사를 배운다고 한다.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6개월도 안되는 짧은 기간에 선사시대부터 근현대사까지 배운다는 것은 겉핥기식 교육이라고 밖에 말할 수가 없으니 말이다.  그렇다고 1년이 길다고 할 수도 없다.  하지만 불과 4년전만 해도 초등학교에서 한국사를 전혀 다루지 않은것에 비하면 감사할 뿐이다.  큰아이는 겨우 반년의 역사 지식으로 중학교에 입학했고, 이제 2학년이 되었다. 중학교 2학년이 되어 사회 과목속에 '역사'가 포함되어 또 다시 선사시대와 사대문명의 발생지부터 시작을 하고 있다.  

 

 

 

  우리 아이들이 가지고 있는 역사 지식은 학교에서의 지식보다는 '역사공화국'에서 배운 지식이 훨씬 많을것이다. 엄마가 읽고 있는 역사 공화국을 아이들이 하나씩 읽어나가면서 아이들 눈에 새로운 세계가 보여지고 있으니 말이다.  역사 공화국을 언제 만났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그때는 이렇게 체계적으로 읽어나갈지 기대도 하지 못했는데, 60권으로 완간이 되고 난후, 읽지 못했던 1권에서 20권까지, 고조선부터 고려까지의 이야기들을 다시 들여다 보고 있다.  조선시대의 이야기와는 달리 한권 한권 겹치는 부분은 별로 없지만, 알지 못하고, 인지하지 못했던 우리 역사를 만나게 되는 기쁨이 상당하다. 

 

 

 

   역사공화국 한국사법정의 4번째 이야기는 '월광태자 vs 진흥왕'으로 가야에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가야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있는가?  나는 잘 모른다.  학창시절에 배운기억이 얼핏 들긴 하지만, 정말 스칠정도의 지식이었던 같고, 도대체 생각이 나지 않는다.  기억의 남는 부분은 철기를 생산했다는 정도다. 가야는 고구려, 백제, 신라처럼 한 나라가 아니라, 지금의 경상남도와 경상북도 일부, 전라남북도 일부 지역에 흩어져 있던 여러 나라를 모두 합쳐 가야라고 불렀다.  금관가야, 대가야, 아라가야, 소가야 등의 가야 이름은 신라와 고려 시대에 붙여진 이름이고, 당시에는 각각 '가락국','가라국','안라국','고자(고차)국','임나'라고 부렀는데, '임나'는 가야의 여러 나라가 가락국과 가라국을 높여서 '님의 나라'로 불렀던 데에서 나온 이름이기도 하고, 일본으로 건너간 가야사람들이 떠나온 고국을 '임나'라고 불렀다고 한다.

 

 

 

  흔히 '육가야'라는 말을 많이 하지만, 가야는 여섯 개 나라밖에 없었던 것이 아니다.  적어도 열두 나라 이상이 있었고, 가라국과 함께 멸망한 나라만 해도 열 개나 되었다. 가야는 철 생산이 풍부하고 기술이 뛰어나기도 했을 뿐 아니라, 우륵의 '가야금'으로도 유명하다.  우륵은 가락국의 외교적 문제로 인해서 친 백제파가 친 신라파를 숙청할 위기에 처하자 신라로 망명을 하게 된 인물로 신라 진흥왕에게 몸을 의탁한후 가야금 곡을 후세에 남길 수 있도록 노력을 하였다.  하지만, 나라가 없는 백성은 서러울 수 밖에 없다.  우륵의 제자인 주지, 계고, 만덕은 우륵으로 부터 가야금을 배우지만, 가야금이 번거롭고 단아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곡을 줄여 다섯 곡으로 만들고 그들 기호에 맞도록 바꾸어 연주를 함으로써 신라의 '대악'의 틀을 만들었다. 신라의 입장에서는 자신들의 음악의 탄생이니 반길만한 일이었겠지만, 나라없는 설움을 톡톡히 느끼는 우륵을 보면서 '국가'의 중요성을 느끼게 된다.  

 

  신라가 가야를 멸망시켰다는 역사적 사실 때문에 원래부터 신라는 강한 나라였고 가야는 그에 비해 국력이 약한 나라였다는 고정관념을 가지고 있었다.  물론 신라는 삼국을 통일한 역량을 가진 나라였으나, 가야도 한때 그에 못지 않은 국력을 가졌음을 인정한다.  하지만 신라에 멸망했다는 이유만으로, 가야 역사의 많은 부분이 거의 전해지지 않는다.  그나마 남아 있는 내용도 신라의 역사 속에서 변방의 작은 사건처럼 축소되어 가야가 원래부터 신라보다 약한 나라였던 것처럼 왜곡된 것은 바로잡아야 한다. 최근에 옛 가야 지역에 대한 활발한 고고학적 발굴 조사 성과가 쏟아져 나오고 있음에도 여전히 교과서에서조차 불과 한 장 정도로 가야사를 다룰 만큼 소홀히 취급하는 것이 현실이다.  한번 흘러간 시간은 되도릴 수 없다.  분명 인간이 지나왔던 시간이 항상 정의로웠던 것도 아니다.  그러나 역사의 법정에서는 그 지나간 시간을 오늘날의 시선으로 냉정하고 진실하게 바라볼 수 있고, 함께 동참한다는 것은 의미있는 일일것이고, 기록으로서의 역사와 사실으로서의 역사를 다시 돌아봐야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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