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우의 집
권여선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4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이렇게 집중해서 책을 읽은 기억이 얼마만인지 모르겠다.  책읽는 속도가 빨라서 책의 내용들이 뒤죽박죽 섞이는 일들이 허다한 나에게 『토우의 집』은 오랜만에 만난 가슴 아리고 뻑뻑한 이야기였다.  초반엔 김원일작가의 『마당 깊은 집』이 떠올랐었다.  책으로 만났던 내용 보다는 어린시절에 만났던 드라마속 풍경이었지만, 그런 모습들이 스물스물 기어오르더니, 어느새 어린 스파이들에 빠져서 아이들이 들려주는 이야기만 듣기 시작했다.  삼악산의 남쪽을 복개하면서 산복도로를 만들고, 그 시멘트 도로 주변으로 지어진 마을과 그 골목을 사는 이곳은 벌레처럼 보인다 해서 '삼벌레고개'로 불린단다.  '삼벌레고개'에 윗마을도 아랫마을도 아닌 '우물이 있는 집'은 '제집 사는 사람','전세 사는 사람', '월세 사는 사람'들이 모인 곳이고, 이곳에 어린 스파이들이 살고 있다. 

 

 

 

  '우물이 있는 집'에 영과 원이 이사오면서 주인집 아들 금철과 은철은 동요하기 시작한다.  동네에 있는 아줌마들과 사뭇 다른 영과 원의 엄마는 새댁으로 불리고, 새댁의 남편에대한 소문은 흉흉하게 돌기 시작한다.  작은 스파이로 활동을 시작한 은철과 영은 마을의 우물에 빠져 죽은 처녀들의 수가 왜 ‘구십삼’인지 밝혀내고, 벽돌을 갈아 만든 독약으로 누군가를 벌하기도 하며, “새댁” 혹은 “누구엄마”로 부르고 불리던 동네 사람들의 이름을 알아내기 시작한다.  ‘개발기술’과 ‘귀밝이술’의 발음이 똑같은데 어떻게 어른들은 그걸 구분해내는지, 어른들의 세계는 알면 알수록 모르는 것들 투성이지만, 그런 어른들을 보면서 아이들은 자라기 시작한다.  좋아하는 영에게 담배를 피우라고 윽박지르는 금철의 사내다움을 보면서 은철은 원의 입에 닭발을 우격다짐으로 넣기도 하고, 영에 말에 금방 싱글벙글한 금철이 바보스럽게 다가오기도 한다. 

 

  동네에 퍼지는 소문들은 모두 은철의 엄마인 순분과 계원들의 입을 통해 돌고 돌면서 터무니 없이 커져가고, 그 사이에 금철의 호기로 은철이 크게 다치면서 계원들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금철을 나쁜 놈으로 만들어 버린다.  이제 순분은 계원들과 함께 어느 누구도 입에 올릴 수가 없다. 그저 뒷담화처럼 했던 새댁네 고모의 자살이야기가 은철에게 닥친듯했고, 평생 동생을 다치게 했다는 짐을 지고 살아갈 금철을 혼낼 수도 없었다.  임보살의 굿 따위가 가져오지 못하던 은철이 변소에 가서 똥을 누는 기적을 새댁의 훈련으로 이루어내면서 순분은 새댁과 함께 그녀의 토우속으로 숨어들기 시작한다.  원에게 동생 '희'가 생기고, 은철이 다치면서 작은 스파이들은 다시 어울리기 시작하지만 검은 양복의 사내들과 함께 원의 아버지가 사라지면서 무성한 소문이 동네에 퍼지기 시작한다.  원의 아버지 '덕규'는'곧 돌아온다는 말을 남기고 떠나지만, 아이들의 이름처럼 영.원.히(희) 돌아오지 못한다.

 

  희대의 사법살인사건이라는 '인혁당 사건'을 떠오르게 하는 원의 아빠, 덕규의 이야기는 비극으로 그려진다.  예쁜 필적, 분첩 대신 핸드백에 들어 있는 펜대, 펜촉 잉크병. “애들을 격일제로 두들겨 패지 않고 남편을 몹시 사랑한다는 이유”로 삼벌레고개 주민들에게 시셈을 받던 새댁의 모습은 덕규의 부재 이후 처참하게 일그러지기 시작하면서 영과 원의 모습도 변하기 시작한다.  동생앞에서 눈물을 흘릴 수 없는 영과 동생 삼고 있는 인형, 희 앞에서 눈물을 참는 원. 아이들의 엄마는 강해야한다고 당연하게 생각을 하지만, 강했던 사람도 한순간에 무너질 수 있음을 새댁의 모습을 통해 여실하게 보여주고 있다.  작가의 말처럼 작가는 이들의 고통에서 시선을 떼지 못하고 있고, 어루만져 위로해야 한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작가이 시선으로 그려진 이들은 서로가 서로를 위로하고 안아주지만, 그 속에 내재되어있는 고통은 줄어들지 않는다.  일곱살 아이들의 시선으로 그려지기 시작한 '토우의 집'은 아이의 성장과 함께 사람이 살고 있지 않는 캄캄한 무덤을 여실히 보여준다.  누구도 대신할 수 없기에 스스로 감당할 수 밖에 없는 고통을 말이다.  그리고 작가가 만들어낸 '토우의 집'안에 들어가기 위해 오늘도 나는 작가의 말처럼 '미완의 다리 앞에서'서성이고 있다.  어린 고통이 세상의 커다란 고통의 품에 안기는 그 순간의 온기를 함께 나누기 위해서 말이다.   

 

오래전 이곳에 삼악산이 있었지

북쪽은 험하고 아득해 모르네

남쪽은 사람이 토우가 되어 묻히고

통가 사람 집에 들어가 산다네

그래 봤자 토우의 집은 캄캄한 무덤   (p.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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