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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 정원 - 제4회 혼불문학상 수상작
박혜영 지음 / 다산책방 / 2014년 10월
평점 :
고향에 대한 별다른 그리움이 없다. 수원에서 태어났다고는 하는데 그 기억이 남아있지 않고, 줄곧 내 기억의 가장 밑바닥에 남아있는 곳은 지금살고 있는 곳이다. 몇해전에 고향이 그리워 수원으로 부모님은 거처를 옮기셨지만, 우리집보다 좋은 아파트 생활을 하시는 부모님댁에서 고향을 그리지는 않는다. 그저 내가 그리는 것은 부모님이다. 그러니 내게 고향은 부모님이 계시는 곳이다. 서울이든 수원이든, 아니 타국에 계시더라도 내 고향은 부모님이 계시는 곳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비밀 정원』을 통해서 만난 이요와 이율은 언제나 고향을 그리워하고 있다. '노관'이라는 독특한 분위기의 가문과 질서를 유지하고 있는 이 신비한 곳으로 연어가 제 목숨을 다하여 돌아오듯이 그곳을 바라보며 돌아오려하고 있다.

"여기는 노관이야. 나는 지금 노관에 있어!" (p.9)
작중 화자인 이요의 귀향으로 시작되는『비밀 정원』은 '노관'에 도착한 이요가 바라보는 안당의 모습으로 '노관'에 숨겨진 이야기들을 들려주기 시작한다. 어머니가 앉곤 하던 색 바랜 우단 의자와 느티나무 탁자위 바느질 바구니와 성경책이 그래도 남아 시간을 가두어 둔 갔다고 이야기를 하면서 비밀 정원의 문을 살짝 열어 그 안에 꼭꼭 감춘 이야기를 꺼내놓으려 하고 있다. 태어날떄부터 '노관'의 하나뿐인 장손으로 태어난 이요에게 세상은 어떤 모습으로 다가올까? 성장소설 처럼 이요의 어린시절부터 이야기는 그려내고 있지만 큰 맥을 이루고 있는 것은 요의 삼촌인 율의 이야기다. 가려져 있는 율의 이야기는 커튼 하나만 걷어내도 보일듯이 여기저기에 묻어나 있기에 요의 성장을 따라가다보면 율의 모습이 여기저기에 투영되어 보여진다. 그럼에도 독자도, 작가도 아닌 척 하면서 요를 따라가게 된다.
한편의 클래식을 듣는 것처럼 글들이 들려오는 '노관'의 이야기는 죽음 마저 아늑하게 만들어 버린다. "죽음은 문과 같지. 할머니는 그 문을 통과해 하느님 곁으로 가신거란다."(p.33)처럼 아련한 말들이 요의 일생을 관통하고 있다. 병약한 아버지의 죽음과 할머니가 돌아가신후 '노관'으로 돌아온 삼촌은 요에게 기댈수 있는 아버지처럼 든든하게 다가오면서 요의 어린시절은 '노관'의 평화로운 풍경과 삼촌의 방에 있는 책들로 더할 수 없이 풍요롭게 채워진다. 게다가 '열려라. 연못!'을 암호로 하는 수녀원에 사는 테레사의 편지는 요의 일상을 가슴뛰게 만들어 주고 있다. '노관'에 살고 있는 인물들은 책의 클래식함처럼 고운언어들을 사용하고 있다. 열여섯이 되면 물레의 바늘로 100년동안 잠이 들어 버린다는 공주님의 편지들은 한통한통 쌓여서 '노관'의 비밀상자에 또 다른 비밀들과 함께 갇혀지면서 요의 어린시절을 채워간다.
요즘 드라마로 표현이 되었다면 '노관'의 역사와 이들의 이야기는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막장 드라마의 모든 공식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책을 펼쳐서 읽기 시작하면 이 공식들이 모두 무너져버리고, 사랑만이 남는다. 어린시절 사랑했던 연인. 키울수 없는 아이, 형수가 되어 돌아온 연인, 부모를 그리워하는 버려진 아이, 첫사랑의 아련함, 잊을 수 없는 사랑의 족쇄까지 분명 이야기는 얼키고 설켜서 막장으로 치달아야하는데, '비밀의 정원'처럼 숨겨진 '노관'속 사람들의 삶은 고요하기만 하다. 물아래에서 끊임없이 움직이며 호수위에 평온함을 가장하고 있는 백조들처럼 고요하고 평화롭게만 느껴지는 그들의 삶은 은은하게 풀빛으로 물들인 한지처럼 보일듯 말듯 그려지고 있다. 모두들 알고 있지만 모두 쉬쉬하면서 '노관'의 안주인과 이율 교수를 바라보고만 있다. 어머니의 부재를 두려워하는 아이는 어찌할 줄 모르는 모습으로 그려지고, 또 한편으로는 경험해보지 않았던 곳에서 성장해가기 시작한다.
'노관'을 흐르고 있는 그들의 사랑은 맺어질듯 하지만, 결국은 맺어지지 않는다. 그럼에도 손교수는 "율이는 사랑에 승리하지는 않았지만 사랑을 완성했어!" (p.286)라는 표현을 쓰면서 그들의 사랑을 응원하고 있다. 그녀를 만난 순간부터 이십여년이 흘러 형의 아내가 되고 조카의 엄마가 되었음에도 떠날 수 없는 사랑은 어떤걸까? 분명 말도 안되는 이야기다. 이루어지면 안되는 이야기인데, 잊혀진 아이는 어떻게 해야할까? 햇님만 따라다니는 해바라기처럼 사랑만 바라보고 사랑만 갈구하는 이들의 모든것이 '사랑'하나로 완성되는 것처럼 그려진다. 그러기에 부모세대의 사랑을 당연한거처럼 받아들이듯 그리고 있다. 그러기에 요와 테레사와의 만남이 물결한번 일지않은 잔잔한 호수처럼 느껴지는지도 모르겠다. 한 여인을 향한 사랑, 그 사랑으로 온전한 인간이었던적이 단 한번도 없었다고 외치다 사라져간 사람은 사람이 아닌 그저 사랑이다.
뭐라고 표현해야할지 모르겠다. 제 4회 혼불문학상 수상작, 많은 소설가들이 새로운 이야기를 들려줬다고 평하고 있고, 순수했던 시절로의 회귀라고 이야기를 하고 있다. 내가 느끼고 있는건 뭘까? 책장을 다 덮고 나서도 잔잔한 울림이 멈추질 않고 성석제님의 말처럼 바람에 흔들리는 코스모스같은 흔들림이 남아있다. 이런 이야기를 내가 좋아했던가? 왜 이렇게 가슴이 아릴까? 가을이라 그런지도 모르겠다. 요와 테레사를 보면 노관의 안주인과 율은 몹쓸 사람인데, 그렇게 다가오지 않으니 말이다. 오로지 사랑만을 위해서 살다간 율은 시인이다. 시인의 언어로 쓰여진 사랑은 곱다 못해 아리게 다가오고, 평생 시인의 사랑을 받으며 살아온 사람도 시인이 되어버렸다. 그래서 한국근대사와 함께 이야기된 그들의 사랑이 이토록 절절하면서도 그윽한 향을 뿜어내고 있나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