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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령
양국일.양국명 지음 / 네오픽션 / 2014년 8월
평점 :
절판
어렸을때부터 공포영화를 좋아하지 않았다. '전설의 고향'이 하는 날에는 한 여름에도 이불 뒤집어쓰고 숨어 있기 바빴고, 결혼 후에는 남편 등뒤에서 귀막고 있기 바빴다. 여전히 나는 공포영화를 보지 않는다. <링>이라는 영화의 '사다코'라는 귀신도 이야기를 들어서 알지 영화를 본 적은 없다. 듣기는 해도 보는건 왜 이렇게 무서운지 모른다. 두려움이 이것뿐이겠는가? 책을 통해서 만나는 공포는 몇일밤을 오싹하게 만들어 버린다. 머릿속으로 그려지는 공포와 두려움은 눈앞에서 피가 튀는 것보다 잔인하게 다가오고 귀를 통해서 들려오는 두려움의 고함소리보다 멀리 퍼진다. 책으로 만나는 스릴러 물은 좋아라하고 읽는데, 어째서 귀신이 나오는 이야기는 무서워하는줄 모르겠다. 아마, 사람이 아닌 미지의 존재로 인한 두려움이기에 대처 방법이 없다고 생각을 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첫 장면부터 스물스물 공포가 몰려오는 이야기. 이 소년에게 왜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는걸까에 대한 궁금증도 풀어내지 못한채, 태인의 학교 생활로 들어가 버린다. 20여 년 전에 세워진 명문 사립 고등학교로 수도권에서 4백 킬로미터나 떨어진 지방 소도시, 500미터 고지의 산꼭대기에 지어진 'KM문화예술고등학교'에 태인이 전학을 왔다. 공부잘하는 아이들만 오는 학교라는데, 이제 갈곳이 없이 마지막이라고 온 학교가 이런 학교라니 태인이 이상하게 여길만도 한데, 학교까지 오는길이 여간 스산하지 않다. 빽빽한 숲 속을 뚫고 올라온 학교에서 만난 차가운 미소의 학생주임, 나이를 알 수 없는 교장만 이상한것이 아니라 태인의 앞에 있었다는 빈자리에 대한 아이들의 반응이 오싹함을 느끼게 만든다. 어느 학교에나 귀신이야기는 존재한다. 하지만, 이곳에 흐르고 있는 음산함은 누구나 알고 있는 그런 음산함과는 다른다.
이유도 없이 사라져버린 한 학생의 부재를 아무도 느끼지 못하는 듯 태인은 그 자리에 들어와 앚아 있고. 태인은 사라져버린 은호의 일기장을 발견하게 된다. 은호의 일기장은 학교의 비밀에 대해 이야기하고, 은호가 본 것들을 들려준다. 그리고 룸메이트인 지원의 안내로 들어가게 된 이니그마에서 만나게 된 아이들. 겉으로는 미스터리 소설 연구회 같은 구실을 내세우고 있지만 '학교의 비밀'에 접근하고 악의 소굴을 파헤치는 조사단이라는 이니그마. 태인은 이니그마를 통해서 얻는 '학교의 비밀'보다 은호의 일기장을 통해서 빠져나올 수 없을 정도로 이 미스테리한 학교의 비밀속에 빠져든다. 감시자, 면담과 같은 용어들을 알게 되고 똑같은 얼굴을 한 아이들과 숲에 있는 괴물. 매달 선배와의 만남을 갖는 학교. 은호가 그린 무시무시한 그림들. 믿을 수 있을까? 아니, 믿어야 하는걸까? 왜 태인은 이곳에 있는 걸까?
태인의 전학과 함께 시작되는 이야기는 오랜시간을 이야기하는 것 같지만, 태인의 전학 첫날부터 다섯째날까지 일주일을 넘지 않는다. 하지만 그속에서 퍼져나가는 공포는 스물스물 온 몸을 감싸면서 조여온다. 태인의 이야기 전에 사라져버린 아이의 이야기와 여우 전설의 이야기부터 시작을 했기때문인지도 모른다. 조금씩 밀려오는 공포는 어느새 태인이 읽어내려가는 은호의 일기만으로도 깜짝 깜짝 놀라게 만들고 어떻게 해야할지를 모르게 만들어 버린다. 태인과 함께 하려 하던 아이들과 함께 했던 아이들이 닷세사이에 다른 아이처럼 변해서 태인에게 다가온다. 은호의 일기장을 통해서 만난 은호는 은호의 단짝이었던 석규의 변화를 보면서 위험하니 발을 뺴라는 경고음을 들었다. 그럼에도 은호는 그것을 무시하고 앞으로 나아갔다. 호기심은 엄청난 가속이 붙어 잡을 수 없는 상태가 되어 버렸을테고, 관성을 거스르지 못하고 가속도에 몸을 맡겼을 것이다. 그리고 태인 역시 엄청나게 내달리는 호기심이 가속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을 직감하고 있었다.
"지금 내가 이 학교에서 믿을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 있다면 바로 너야." (p.236)
이니그마에서 만난 유미. 은호와는 또 다른 방식으로 학교를 파헤쳐나가려는 유미에겐 태인만이 믿을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었다. 태인 또한 아무도 믿을 수가 없다. 같은 모습으로 변해버린 아이들. 똑같은 눈빛, 똑같은 얼굴. 반항하던 제임스 딘이 젊음의 상징이듯 아이들은 반항하고 싶을 때 반항하고 분노하고 싶을 때 분노하고, 웃고 싶을때 웃는다. 그게 아이들이다. 질서를 강요하며 억압하면 튀어나오기 마련이다. 일반적인 아이들도 이럴진데, 이 음산한 기운이 감도는 곳에 떨어진 태인이 아무것도 하지 않고 숨죽이고 있다면 청소년이 아닐 것이다 분명 이야기의 처음에 힌트를 주었는데도 난 읽으면서 이 아이의 망상이 빚어낸 것들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했었다. '스키조'로 은호라는 아이를 만들어 낸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아니었다. 지구상에 인간이 모든것의 주인이라는 생각은 잘못인지도 모른다.
"나는 반항하고 싶을 때 반항하고, 분노하고 싶을 때 분노하며 살고 싶어." (p.272)
제목이 '악령'이다. 한여름이 지나 만난 이야기가 스르릉 스르릉 뱀처럼 기어 올라온다. 대놓고 무섭지는 않는데, 어디선가 '악~'하면서 덤벼들것 같고 조심스럽게 책장을 넘기게 만든다. 그럼에도 태인의 말에 정신을 차리게 된다. 격동기라고 하는 청소년기. 생각하고 반항하고 분노하고 삶의 지침을 세워나가는 그 시기. 악령이든 천년여우든 무슨 문제가 있겠는가. 결국 정신 똑바로 차리고 살기 위해 애쓰는 이들이 이 세상을 살아간다. 또 다른 악령이 뒤에 숨어있을지라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