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르만 헤세의 사랑 - 순수함을 열망한 문학적 천재의 이면
베르벨 레츠 지음, 김이섭 옮김 / 자음과모음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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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무것도 모르던 때에도 학교에서 읽으라는 숙제로 읽었던 작품들중엔 헤르만 헤세의 작품들이 많았다.  무슨 내용인지도 모르고 읽었던 책들은 숙제로 읽었을때가 아닌 시간이 흘러 다시 만나는 순간부터 새로운 이야기로 다가왔지만, 헤르만 헤세의 작품만큼 '필독'이라는 이름으로 읽어야 했던 작품들은 많지 않았던 것 같다.  <데미안>을 처음 읽었던 기억이 나는데, 1900년대 초반에 쓰여진 작품을 읽으면서도 갭을 느끼지 못했던 걸 보면 무슨 생각으로 읽었는지 모르겠다.  그 어려운 책을 어린아이가 왜 읽었을까?  그뿐인가? 노벨문학상을 받은 작가의 책은 읽어봐야할 것 같았던 어린시절의 호기는 <수레바퀴 아래서>, <싯다르타>, <나르치스와 골드문트>, <황야의 이리>, <크눌프>, <클링조어의 마지막 여름>, <유리알 유희>까지 겉표지만 뚫어지게 보다가 몇장 넘기고 잠들고 했던 시간들이이 참 길게도 이어졌었다.  독일 현대 문학의 거장, 진정한 삶의 길을 탐구한 영혼의 구도자라는 헤르만 헤세. 어디서 들은건 있어서 그의 모든 작품이 그러리라 생각을 했었고, 그의 삶 역시 그러리라고 생각을 했었다.

 

 

  순수함을 열망한 문학적 천재의 이면이라는 부제를 달고있는『헤르만 헤세의 사랑』은 내가 알지 못했던 헤세를 만나게 해주고 있다.  문학적인 측면에서 분명 헤세는 대단하다.  존경하는 작가이기에 현존해 있다면 옆에도 못가고 벌벌 떨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의 사랑은 문학으로만 일관되어졌으면 하는 생각이 책을 읽는 내내 들었다.  헤세의 철학이 집약된 대표작들은 길이 남을진데, 남녀간의 사랑은 어쩜 이렇게 안타깝고 외바라기로 만들어 버리는지 참 나쁜 남자다.  헤세만큼 뛰어난 작가는 사랑의 역사조차 그냥 넘길 수가 없는 것 같다.  그의 사후, 이렇게 사랑을 이야기하는 편지 한장 한장, 누군가에게 이야기했던 절절한 가슴앓이까지도 모두 공개되어질지 누가 알았겠는가?  몇줄 적지 않은 끄적임 마저도 연구하고 그 속에 있는 헤세의 마음을 알아내려는 사람들 덕분에 거장으로만 남아있었을 헤세는 인간적인 모든 면들이 그를 궁금해하던 모든 이들에게 보여지고 있다. 

 

  책은 그동안 공개되지 않았던 여러 편지와 문서를 찾아내 헤르만 헤세가 사랑한 여인들에 대한 이야기를 소개하고 있다.  사랑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은 참 다양한 사랑을 하는 것 같다.  과거 뿐 아니라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인물중에도 뛰어난 작가나 음악가처럼 예술을 하는 사람들 옆에는 그들의 사랑을 갈망하는 이들이 손만 뻗으면 닿을 거리에 있으니 말이다.  헤세 역시 하나의 사랑만 찾아오진 않았다.  우리나라의 주례사처럼 '검은 머리 파뿌리'는 턱도 없던 헤세는, 사진작가였던 마리아 베르누이, 성악가였던 루트 벵거, 미술사학자였던 니논 돌빈까지 세 여인을 사랑했고 그들과 결혼을 했다.  서로 사랑하는 유예기간은 그리 길지 않다.  하지만 모든 사람들이 짧은 유예기간이후 '이젠 그만~!'을 외치지는 않는다.  우리가 거장이라 말하는 헤세의 사랑은 아름답지가 않다. 심지어 헤세와 각각 인생을 공유한 세 여인은 헤세와의 사랑을 모두 지워버리고 싶어 했단다.

  잔인하게도 책은 세 여인과의 사랑 이야기를 '기.승.전.결'처럼 사랑의 시작부터 끝까지 낱낱이 보여주고 있다.  묻어버리고 싶고, 기억하기조차 싫은 이야기까지도 베르벨 레츠는 끄집어 내어 독자들에게 '알 권리'를 채워주고 있다.  꿈꾸며 사랑을 노래하던 아름다운 여인들은 한 남자를 만나 새로운 삶을 노래하지만, 세 여인은 헤세의 삶의 일부분이었다는 것을 어떻게 이야기할 수 있을까?  아이들의 아빠가 되어버린 남자가 자신들의 삶 전체를 엉망으로 만들 사람일지 누가 알았을까?  마리아 베르누이는 이야기를 한다.   “그와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이 더 이상 없어. 다시는 그에게 기쁜 마음으로 굴종하지 못할 거야. 이제 그런 건 없어. 그 사람은 그냥 작가일 뿐이야.”  그는 작가다.  누구나 인정하는 천재 작가다.  철학을 이야기하고 고뇌하는 삶을 이야기하기에 전쟁에 참여하던 독일 젊은들의 주머니 속에 한권씩 가지고 있었다는 <데미안>의 작가.  동생의 삶을 보면서 <수레바퀴 아래서>를 집필한 천재 작가.  하지만 마리아 베르누이의 말처럼 그는 '그냥 작가'이다.  읽지 않았다면 몰랐을 것을 알아버렸을 때 느낄 희열보다 답답함이 더 많이 느껴졌던 경험을 하게 된『헤르만 헤세의 사랑』은 '사랑'이라는 표현도 아깝다.  책임이 따르지 않는 사랑은 사랑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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