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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 vs. 알렉스 우즈
개빈 익스텐스 지음, 진영인 옮김 / 책세상 / 2014년 5월
평점 :
절판
아이들의 세상은 내가 보는 세상과는 다르다. 아니, 내가 알고 있던 세상과 너무나 다르다. 알렉스 우즈가 속해 있는 세상은 아이들의 세상이었고, 나와는 다른 생각들을 가진 어른들의 세상이었기에 새로운 눈으로 바라보지 않으면 알수가 없는 세상이었다. 남과 다르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어른이 아닌 아이들에게 남과 다름은 놀림거리일 수도 있고, 두려움으로 다가올수도 있을 것이다. '1.가난하다. 2. 신체적으로 다르다. 3. 정신적으로 다르다. 4.친구나 친척이 남다르다. 5. 게이스럽다.' 는 것은 남과 다른것이라고 우즈는 이야기를 한다. 하지만, 아이들이 말하는 가난하다의 의미는 빈곤과는 차이가 있고, 게이스럽다의 의미 또한 일반적이지는 않다. 그저 사내아이가 예민하게 굴거나 영화를 보면서 울고, 책을 많이 읽거나 찬송가외에 사랑노래를 부른다면 게이스럽다로 다가오면, 남과 다르기에 다른 시선으로 보는것이 당연하다고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그리고 그 모든것에 알렉스 우즈가 포함되어 있다.

항구의 세관앞에서 열일곱의 한 소년이 자동차를 몰고 있다. 헨델의 <메시아>가 울려퍼지는 차안에서 소년은 정신을 잃지 않기위해 애를쓰고 있고, 운전을 할 수 없다는 이야기를 전해준다. 그리고 이 소년 주변으로 경찰이 다가온다. 영국에선 너무나 유명한 소년, 알렉스 우즈. 자동차 조수석 사물함에 113g의 마리화나와 피터슨씨의 유골 단지를 가지고 있고, 간질로 쓰러지는 것을 막기 위해 이를 악물고 있는 소년이 이야기를 시작한다. 소년과 유골 단지속에 들어있는 피터슨씨의 삶을. 형제 자매도 없고, 아버지도 누군지 모르고, 엄마랑 둘이 살면서 엄청나게 새끼를 낳는 고양이 루시가 가족일 수 밖에 없는 이유를 이야기하고 있는 우즈는 분명 일반적이지는 않다. 열 살 때 운석에 맞아 코마에 빠진 적이 있는 아주 아주 유명한 아이니까 말이다. 벼락맞은 대추나무도 만나기 어려운판에, 욕실에 있다가 지붕을 뚫고 들어온 운석에 맞아 코마상태에 빠진다는 것이 어디 쉬운 일이겠는가? 덕분에 뇌 수술을 했고, 그로인해 신체적으로 남과 다르지만 우주의 물질이 소년에게 왔다는 사실은 알렉스에게는 경이로움이었다.
운석과의 조우 이후 알렉스의 운석을 연구한 모니카 위어 박사님을 만나게 되면서 과학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지만, 그와 함께 우즈에게 찾아온 간질은 담당 의사인 엔더비 선생님을 만나게 되고, 알렉스는 우주 뿐 아니라 뇌의 신비로움과 아름다움까지 알게 된다. 필연인지 우연인지 알렉스는 점점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찾게 되고, 이 모든것이 학교에서의 왕따라는 결과를 만들어 낸다. 그리고 알렉스를 괴롭히는 친구들을 피해 도망간 집에서 만나게 된 피터슨씨. 피터슨씨의 창문을 깬 책임을 지기위해 허드렛일을 돕고, 피터슨씨의 집에 있는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알렉스는 피터슨씨와 시나브로 친구가 되어간다. 피터슨 아저씨가 좋아하는 작가인 커트 보네거트 주니어. 보통의 아이들이라면 관심도 가지질 않을《타이탄의 사이렌》이라는 작품을 읽고는 양심에 따라 결정하는 권리를 포기하지 않는 것을 이야기하디니 이 아이는 정말 특별한 아이다.
이제 알렉스에겐 피터슨 아저씨집에 있는 보네거트의 책들이 다른 의미로 다가오기 시작한다. 《고양이 요람》 ,《제5 도살장》,《챔피언들의 아침식사》를 비롯한 책들은 피터슨 아저씨와의 관계를 악화시키기도 하고 화해시키기도 하면서 학교에서의 친구가 아닌 보네거트 관련 독서모임을 창설하기에 이르게 된다 . 십대 소년의 머리에서 나온 생각이라니 대단하지 않은가? 보네거트가 이야기하는 도덕, 생태학, 시간 여행, 외계인의 삶, 20세기 역사, 휴머니즘과 유머까지 모든것을 다루고 있는 <커트 보네거트 세속 교회>. 아이다우면서도 기발한 이 세속 교회가 가능하기나 할까 싶지만 이걸 원하는 이들이 있다. "궁금한 적 있나요. 우리가 여기 왜 있는지? 우리가 어디로 가는지? 어떤 의미가 있는지? 우주가 어떤 곳인지 관심이 있나요??" (p.242) 자아를 찾는 청소년들의 입에서 나올법한 이야기를 보네거트 독서모임을 통해 알고자 하는 아이 그리고 괴짜 노인.
알렉스 우즈가 경험하는 세상은 오묘하다. 알렉스 스스로 찾아서 만들어 내는 세상이기에 다를 수 밖에 없는 세상이고 그러기에 재미있는 세상이다. 작가 개빈 익스텐스는 알렉스의 세상만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책의 중반을 넘어서면서 피터슨씨와 알렉스의 입을 통해 안락사 문제를 다루기 시작한다. 얼마전에 동영상을 통해 안락사를 다룬 프로그램을 본적이 있는데, 법으로 안락사를 허용하는 스위스의 죽음의 조력자에 관한 내용이었다. 그 내용들이 나오고 있다. 자신의 삶을 결정하는 것. 그 중에서도 스스로 죽음을 결정하는 것이 윤리적으로 맞는 문제인지 아닌지에 대해서 누가 정답을 이야기해 줄 수 있을까? 죽음을 코앞에 두고 있는 사람이 아픔과 두려움을 감내하면서 섭리를 따라야 하는것이 정답인지, 섭리를 따른다면 의료시설을 거부하는 것이 더 옳은 일인지도 모르겠기에, 알렉스와 피터슨씨가 들려주는 안락사에 관한 이야기를 편하게 들을 수만은 없다. 책에서도 이야기를 한다. 안락사는 자신의 의지로 죽음을 맞이하는 자살이기에 죽음의 조력자들은 피터슨씨에게 언제라도 바꿀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죽음 의지를 계속 물어본다.
문제는 피터슨씨와 함께 한 이가 열일곱의 알렉스라는 것이다. 보네거트를 통해서 우주와 삶을 이야기하고, 보통의 아이와는 분명 다르다고 해도 소년은 소년이다. 괴짜 노인의 친구로 친구의 곁을 지킨다고 해도, 아이의 간헐적 발작이 찾아온 것은 그 만큼 아이에게 힘겨운 일이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누구도 잘잘못을 이야기 할 수는 없다. 그저 벌써 벌어진 일이기에 엄마는 아이를 다독일 수 밖에 없고, 피터슨씨가 알렉스에게 남긴 유산을 그의 뜻에 맞게 사용함으로써 피터슨씨의 바램처럼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면 될 뿐이라고 이야기하고 싶지만 그러면 다 해결되는 걸까? 수돗물같이 보이는 무색의 투명한 펜토바르비탈나트륨을 녹인 작은 유리컵이 알렉스를 계속 따라다니지는 않을까? 친구를 위해 참고 있다 터져나온 울음이 그걸로 완벽하게 끝이 날 수 있을까? 삶과 죽음 그리고 우주까지 모든 것을 다루고 있음에도 어느것 하나 쉽게 풀리지 않는 이야기. 그럼에도 불구하고 잔잔하게 마음을 아리게 하는 이야기가 개빈 익스텐스의 이야기속에 담겨져 있다. 내가 꺼낼 순 없지만, 누군가는 반드시 꺼내어야만 하는 이야기를 말이다. '우주의 일부가 되어버린 피터슨 아저씨! 잘 지내시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