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토리 자매
요시모토 바나나 지음, 김난주 옮김 / 민음사 / 2014년 3월
평점 :
품절


"함께하는 순간, 사소한 사건도 따스한 이야기가 된다."

 

  요시모토 바나나의 책들에서 공통적으로 느껴지는 감정이 이 따스함이 아닐까 싶다.  가격대비 얇은 책은 못견뎌하는 내가 양장이라는 이름하에 이렇게 얇은 책을 군말하지 않고 읽는 이유는 그녀가 들려주는 따스함을 느끼고 싶어서이다.  책 좋아하는 사람들의 공통적인 특징은 재미도 있으면서 읽을 맛이 나는 책으로 페이지가 좀 있는 책들을 좋아한다는데 있다.  그런점에서 본다면 요시모토 바나나의 책들은 얇아도 너무 얇다. 130페이지 가량 된다고 해도 책의 크기가 워낙에 작아서 포켓북보다는 크지만 가히 크다고 할수가 없다.  소장하고 있는 『키친』이나 『도마뱀』도 이 크기니, 민음사에서 그녀의 책에 트레이드 마크화 하려는 듯 싶기도 하고, 이젠 그녀의 책이 또 일반적인 두깨의 양장본으로 나오면 그 또한 이상할 듯 싶다.  

 

 

  '우리는 도토리 자매입니다.  이 홈페이지 안에만 존재하는 자매죠.  별거 아닌 애기를 나누다 보면 마음이 차분하게 가라앉는 일, 없으세요?  언제든 우리에게 메일 주세요. 어떤 내용이든 괜찮습니다. 정해진 틀 안에, 정해진 글자 수만큼이라는 규칙은 있지만요.  시간이 걸리더라도, 답장은 꼭 보내겠습니다. - 도토리 자매 올림' (p.7) 으로 이야기가 펼쳐진다. 고독한 사람들 사이에서 떠도는 비밀의 홈페이지 '도토리 자매'. 두서없는 이야기를 두서없이 나누고 싶은데 말할 상대가 없는 우울한 날, '도토리 자매'에게 메일을 보내면 반드시 답장이 온다. 내 이야기를 누군가가 들어주고, 이야기를 해주는 곳이 존재한다면 꽤나 환영받을것 같다.  게다가 돈을 받지도 않고 오로지 무료봉사다.  

 

'내 이름은 구리코. 언니 이름은 돈코다.  이름이 참 어처구니없다고 생각하겠죠. 나 역시 그렇답니다.  구리코도 물론 대단한 이름이지만, 돈코는 딱 듣기에도 별로다. 게다가 우리는 쌍둥이도 아닌데, 먼저 태어난 언니에게 동생이 생길 것까지 감안해서 돈코라는 이름을 지어 주고 말았다.' (p.18)

 

  돈코와 구리코, 둘이 함께 도토리 자매다. 일본어로 '도토리'는 '돈구리'라고 발음을 하는데, 언니와 동생의 이름에 각각 '돈'과 '구리'가 들어가 '도토리'라는 뜻이 된다고(p.18) 주석에서 설명을 해주고 있다. 일본어를 모르니 알 수 없었던 이야기와, '도토리'의 일본어 발음을 책을 통해서 알게 된다.  어쨌든 낭만적인 성격의 부모님에게서 태어나(그러니 아이들의 이름을 돈코, 구리코라고 지었다고 구리코는 이야기를 한다) 실컷 사랑받았던 언니와 동생은 어느 날 갑작스러운 교통사고로 부모님을 잃고 친척들의 집을 돌면서 자란다. 차밭을 일구는 삼촌 집에서는 삼촌의 죽음으로 헤어짐을 겪었고 부유한 의사 부인인 이모 집에서는 냉랭한 분위기에 주눅이 들어 지냈다. 어느 누구도 그들을 학대하거나 힘들게 하지 않았지만, 그 시기의 아이들에게 친척집은 내집이 될 수 없었을 것이다.  

 

  성인이 된 돈코와 함께 구리코가 간 곳은 쇠약해져 있던 할아버지의 집이었다.  쇠약한 친척 할아버지를 돌보아 드리는 조건으로 할아버지의 유산을 상속받기로 했지만, 점점 할아버지와의 교류가 돈독해지면서 자매는 할아버지와의 이별 이후 마음둘곳을 못 찾다가  둘이 처음으로 떠난 여행지에서 한 가지 아이디어를 떠올린다.  모르는 사람들의 고독을 치유하기 위해 어떤 이야기에도 반드시 답장을 하는 홈페이지 ‘도토리 자매’를 만드는 것. 이런게 될까 싶은데 외로운 사람이 의외로 많은지 도토리 자매의 홈페이지는 외롭고 힘든 사람들의 메일이 언제나 도착해있다. 

 

  외로운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면서 자매는 자신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남편을 잃은 이에겐 부모를 잃었을때의 마음을 이야기하고, 병자를 간병하는 이들에겐 자신들의 경험담을 이야기해주고 있다.  그러면서 자매들 역시 마음속에 감추고 있던 과거의 기억들을 하나씩 떠올리게 된다.  연애를 하고 있는 돈코와 자신도 잊고 있던 과거의 상처속에서 서서히 빠져나오기 시작하는 구리코의 이야기는 메일을 통해서 보여주는 치유 의식처럼 자신들 스스로를 보듬어 준다.  그럴수도 있다고 말이다.  아주 어린 시절 느꼈던 첫사랑의 죽음을 목도하는 과정은 꿈을 통해 보여줌으로 이 얇은 책을 판타지의 공간으로 만들어 주고, 구리코가 느끼는 애잔한 감정에 함께 동참하게 만들어 버린다.

 

  마음을 담은 대답이 상처입은 이들의 마음을 쓰다듬고 토닥여주는 것과 같은 힘을 발휘하게 만드는 '도토리 자매'의 공간은 비밀스럽지만 열려있는 곳이다. 사소한 사건도, 의미 없는 사연도 함께 나누면서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곳.  그렇게 은밀하게 메일을 보내는 이들을 다독여주고, 메일을 읽고 답을 하는 이들의 마음 속 응어리 역시 풀어주고 있는 곳이 '도토리 자매'의 공간이다.  가상의 공간에만 존재하지만, 어디에나 존재하면서 들을 준비가 되어있는 돈코와 구리코.  자신들의 이야기를 서로 들어주는 공감의 능력이 이들에게 치유의 힘을 길러주었는지도 모르겠다.  '도토리 자매'가 자신들의 삶을 어떻게 꾸려나갈지는 아무도 알지 못한다.  모든 인간이 그러하든 그녀들 역시 미숙한 존재이고, 하나씩 배우면서 자라나가는 존재이니 말이다.  하지만, 그녀들이 듣고 진심으로 대답해준 답장으로 행복하고 위로를 받는 사람들이 있고, 그 위로의 글을 통해서 그녀들 역시 마음이 따뜻해지고 풍요로워질 것이다.  외로운 날, 힘들고 어깨가 너무 아파 쓰러지고 싶은 날, 나도 '도토리 자매'에게 메일 한통 보내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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