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전변태
이외수 지음 / 해냄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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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무살 무렵에 『벽오금학도』를 읽었다.  작가가 누군인지도 모르고 회사로 책을 대여해주는 아저씨를 통해서 만난 책이었는데, 책 한권을 읽고 한동안 멍해있었던 기억이 난다.  이젠 그 책이 어떤 의미로 다가왔는지 조차 기억이 나지 않지만, 난 그렇게 이외수 작가를 만났었다.  그리고 그렇게 맺은 연이 스무해 넘게 이어져 오고 있다.  물론 그는 나를 모르지만, 나는 그를 안다.  그의 사상은 모르지만, 그의 글은 여전히 좋아한다.  이번에 읽은 글은 단편 모음집이다.  워낙에 요즘 세상에 변태들이 많아서 그런 이야기를 다뤘는지 알았는데, 불완전 변태, 완전변태의 생태용어가 책 제목으로 쓰여져 있다.  재미있다.  열 편의 단편들이 실려있는 『완전변태』는 재미와 함께 생각해야 할 이야기들을 곳곳에 폭약처럼 묻어둔 글들이다.  읽다가 어느 순간 터져서 감정을 주체할 수 없게 만드는 힘을 가지고 있다.

 

 

  운동능력이 거의 없는 곤충이 번데기 상태를 거쳐서 성충이 되는 것을 말하는 <완전변태(完全變態)>외에 소나무에는 왜 소가 열리지 않을까 / 청맹과니의 섬 / 해우석(解憂石) / 새순 / 명장(明匠) / 파로호(破虜湖) / 유배자 / 흉터 / 대지주 까지 10편의 단편들은 '새순'이나 '흉터'처럼 짧은 글도 있고, '청맹과니의 섬'이나 '파로호'처럼 호흡이 긴 글들도 있지만, 모두 하나같이 작가의 울림을 듣게 만든다.  재미있게 읽다가 훅하고 들어오는 것들이 너무 많다.  어찌 10편의 단편 모두에 이런 장치들을 해놓을 수 있는 것일까?  역시 이외수작가를 되뇌일 수 밖에 없게 만드는 이유다.

 

'밤나무에서는 밤이 열리고 배나무에서는 배가 열리고 감나무에서는 감이 열리는데 왜, 소나무에서는 소가 열리지 않을까?' (p.26 / 소나무에는 왜 소가 열리지 않을까 중에서)

 

'아무튼 녀석은 대마초를 흡연하지 않은 지금도 감방 구석에 웅크린 채 나비가 되는 꿈을 꾸고 있다.  그런데 인간이 나비가 되어 훨훨 날아다니는 꿈이 아름다울까, 나비가 인간이 되어 터덜터덜 걸어다니는 꿈이 아름다울까.' (p.97 / 완전변태 중에서)

 

"실력 없는 도공은 명품만 골라서 깨뜨린다는 옛말이 있지. 동곡이 명장이라는 소문듣고 왔다가 옛말이 하나도 그르지 않다는 사실만 깨닫고 가네. 어찌 그리도 신묘하단 말인가. 명품은 모조리 장도리로 박살 내버리고 자신을 그대로 빼닮은 아집 한 덩어리만 덩그러니 남겨놓는구만." (p.135 / 명장 중에서)

 

  소나무에 소가 솔을 의미하니 당연히 소가 안 열리지 하며 넌센스로 받아치다가 아비의 썪지 않은 손가락에서 '판검사'만을 최고로 여겼던 부모의 간절한 소망을 알게 되고, 웅크려 애벌레처럼 기어다니다 번데기가 되어 완전변태를 하는 감방 동료가 결국엔 자신인것을 보여주는 장면을 읽으면서 작가의 속성인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단편의 나온 인물들은 작가를 다른 직업군보다 존중하고 있다는 느낌이 강하게 든다.  이외수 작가가 그걸 바라고 있는지도 모르겠지만, 대마초를 핀 작가를 존중하고 있는 감옥 안 사람들이나 작가와 기자의 차이를 적나라하게 이야기하는 파로호의 외박눈이 노인에게서 그런 느낌이 든다. 작가는 여러가지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자신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것 처럼 보이지만, 결국 돌고 돌아 알게되는 '청맹과니의 섬'에서 살던 다람쥐들의 행방은 민선생에게 잊혀진 과거의 한장면이되어 충격으로 다가오는것 처럼 말이다.

 

  술술 넘어가는 책장은 재미를 분명하게 드러내준다. 『완전변태』라는 다소 강한 제목을 끌어냈음에도 불구하고 작가는 책을 읽는 도중에 다른곳으로 빠질 틈을 주지 않는다.  짧은 호흡안에 한편을 읽고 생각을 하는 사이에 또 다른 이야기를 들추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출판사의 평처럼 작가가 만들어낸 이야기들은 '세포들이 술렁거리고 혈관이 부풀어 오르는 황홀경이 펼쳐진다'. 그리고 이 역설로 가득한, 놀라울 정도로 감각적이고 개성 넘치는 작품들은 씽긋 웃음을 날리게 만든다.  2014년에 만나는 과거와의 조우쯤으로 치부해버리고 싶을 정도로 단백하지만 웃음을 잃지 않은 이야기들 덕분에 말이다.  2005년에 발표된 『장외인간』이후 9년만에 발표된 『완전변태』는 확실히 읽는 재미를 주고 있고, 단편 속 삽화들은 『하악하악』으로 이미 익숙한 터치에 편안함에 갖게 만든다.  힘들지 않게 읽을 수 있는 『완전변태』.  재미있게 읽으면서 사유의 힘을 키울 수 있는 행복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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