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양극화 논쟁 ㅣ 역지사지 생생 토론 대회 4
최영민 지음, 박종호 그림 / 풀빛 / 2013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20 대 80 사회'라는 말을 기억할 것이다. 20여년전, 아니 10여년전에도 이 말은 있어왔다. 20%의 사람들이 사회전반의 80%를 차지한다는 말인데, 이 말을 처음 접했을때 어떻게 그럴 수 있지 싶었다. 그런데 요즘은 '1대 99'라고 한다. 그만큼 사회 양극화가 심해졌다는 말이다. 피라미드 형식의 사회가 잘 살수 있는 사회라고 배웠지만, 이젠 그말이 맞는가조차 알수가 없다. 내가 알고 있는 기본 상식들이 무너져버린지가 오래 되었고, 세상은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고 있다. 그리고 그 속에 우리 아이들이 있다. 분명 변화에 적응하는 자세는 우리아이들이 우리보다는 훨씬 빠르겠지만, 기본적인 것, 왜 그런지는 알고 가야하는것이 아닐까?

책을 통해서 만난 이야기중에 작년에 ‘가난’에 대해 설문 조사를 한 적이 있다고 한다. '가난의 이유가 무엇일까?' 하고 말이다. 그중 가난의 이유를 묻는 질문에 ‘게을러서’라는 대답이 32퍼센트로 가장 많았다고 한다. 우리가 지금 알고자 하는 것이 이 문제이다. 게으름을 많이 피워서 가난한 거야 개인의 잘못이라 할 수 있지만, 과연 우리 사회에 가난한 사람들 모두가 게으른 걸까? 성실하게 일을 해도 가난한 것을 두고 ‘워킹 푸어’(working poor)라고 한다. 개미처럼 일을 하는 데도 가난하다는 것이다. 왜 그럴까? 가난하거나 부자가 되는 건 개인의 노력과 능력의 문제일까? 타고난 조건, 시대 및 사회적 여건과 무관할까?
한두해 있었던 일도 아니야하고 치부해 버리기엔 너무 많은 변화가 우리 앞에 다가오고 있고, 그 변화가 우리의 삶을 어떻게 변화시킬지 우리는 알지 못한다. 내 지식은 지식일 뿐 눈앞에서 보고 있는 것은 아니니 말이다. '의료 민영화' 통과가 화두에 있지만, 물에 물탄 듯 사그라드는 것처럼 보이고 있는 현실이다. 그리고 그러면 안된다고 '식코'라는 영화가 물밑에서 퍼지고 있다. 한쪽에선 사그라들게 하려 애쓰고, 또 다른편에선 보아야만 한다고 외치고 있다. 이런 문제가 우리만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풀빛에서 『양극화 논쟁』을 가지고 나왔다.
'역지사지 생생 토론 대회'에서 다루는 이야기들은 결코 쉽게 접할 수 있는 이야기들이 아니다. 지금까지 다루웠던 문제들이 역사, 환경, 복지였고 아이들의 시선으로 보여주고 있지만, 일반적인 보통의 아이들에 눈에 들어올 수 있는 문제를 다루고 있지 않다. 이번에 다루고 있는 '양극화 논쟁'은 논쟁의 무게가 더하면 더했지 약하게 다가오는 것이 아니다. 사회 양극화가 심해지고 있다고 다들 이야기를 한다. 사회 양극화가 심해졌다는 것은 그만큼 행복하지 않은 사람, 행복하기 어려운 사람들이 늘어난다는 것을 뜻한다. 행복하기 어려운 사람이 많은 나라, 극소수만이 떵떵거리며 살 수 있는 나라가 과연 제대로 발전할 수 있는 나라일까?
책에서는 아이들을 사회 복지팀과 경제 성장팀으로 나뉘어 토론을 하게하고 있다. 사회 양극화속에 들어 있는 소주제들은 소득 양극화 / 교육 양극화 / 문화.정보 양극화 / 건강 양극화 / 주거 양극화로 크게 다섯가지 주제에 대해 토론을 하고 있는데, 이 문제들은 결국엔 하나의 큰 줄기인 사회 양극화속에 모두 포함되게 된다. 사회에서 살아가는데 꼭 필요한 기본적인 것들을 누리고 생활할 수 있도록 나라에서 뒷받침해주어야 한다는 사회복지팀과 경쟁하게 되어 있는 사회에서 성공한 사람이 더 좋은 집, 더 좋은 학교, 더 좋은 생활을 하는게 당연하다고 이야기하는 경제 성장팀.
초등학교에서 중학교에 이르기 까지 작년 한해동안 무상급식이 대대적으로 시행되었다. 이 문제로 인해 굉장히 많은 문제가 대두되었다. 서울시장이 바뀌었고, 여전히 무상급식을 '망국병'이라 부르고, '포퓰리즘'이라 부르는 사람들이 있다. 세금을 그 만큼 더 낸다는 이유때문인데, 아이들 역시 부모의 생각과 같이 하는 경우가 많다. 부모가 하는 생각을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니 말이다. 책은 아이들의 토론을 통해서 우리 사회의 양극화 실상과 해결 방안을 둘러싼 쟁점을 보여주는 것에 머물지 않고 양극화의 구조적 측면을 드러내는 것에 주목하고 있다. 개별적 사실에 대한 이해보다 그 근저에 있는 사회 문제를 대하는 시각을 이해하는 게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닭과 달걀의 문제 일수 밖에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회 문제를 바라보는 데 있어 개인의 자유와 경쟁을 중시하는 경향과 경쟁보다는 사회 구성원들의 협력과 공동체 이익을 강조하는 사고 경향을 우리는 아이때부터 길러줘야 한다. 한쪽으로 치우치는 것은 왜곡된 역사관을 갖는것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나 역시 제대로라고 이야기 할 수는 없다. 아무리 역사와 경제관련 책을 읽는 다고 해도 이 책들이 모두 정도를 걷고 있다고 이야기 할 수도 없고, 내 역사관이 제대로 인지 조차도 지금은 장담할 수가 없다. 하지만 생각을 해봐야 하지 않을까? 나는 '1대 99의 사회'에서 어디에 속하고 있는지 말이다. 1에 속한 사람들이 만들어 내는 정책 현황들. 내가 1이라고 속했다고 아니, 여전히 '20대 80의 사회'에 속해있고, 중산층이라 믿고 있는 사람들. 나 또한 그러하지 않을까 자문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