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거의 천재적인
베네딕트 웰스 지음, 염정용 옮김 / 단숨 / 2013년 11월
평점 :
품절
'이제 모든것이 결판날 것이다. 제발 검은색이 나오기를! 제발! 그리고 공이 솓도가 아주 느려져 마침내 한 숫자 칸에 틀림없이 멈춰 설 듯한 소리가 들렸다. 뒤를 이어 실제로 딸깍 하며 공이 최종적으로 어떤 칸에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p.431)

오랜만에 끝내주는 책을 만났다. 반전이라면 반전인 이야기 때문이 아니었다. 마지막장을 읽으면서 조마조마하면서도 이렇게 될까, 저렇게 될까를 생각하게 만들고, 그러다가도 주인공에게 희망을 이야기하는 나를 발견하게 되었다. 희망이면 좋았을까? 그 희망이 터진다면 재미없잖아 하고 있을때 작가는 이렇게 끝을 맺어 버린다. 내 마음은 두근두근 아직도 진정이 되지 않고 있는데, 펑터트린것도 아니고 그냥 둔것도 아님에도 강력하게 여운이 남는다. 열일곱 살의 가망없는 루저라는 프랜시스 딘. 이 아이를 만들어 낸 베네딕트 웰스. '거의 천재적인'은 이 젊은 작가에게 건내야 할 이야기다. 거의 천재적인이 아닌 이 작가는 깜빡이면서도 눈길을 사로잡는다. '나를 결코 잊을 수 없을걸' 하면서 말이다.
'일생 동안 아무것도 이루어내지 못했고, 앞으로도 이루어낼 수 없을 절망적인 루저들. 프랜시스의 심장이 갑자기 격렬하게 뛰기 시작했다. 내가 아무리 그렇게 되지 않으려고 노력하더라도 언젠가는 저들과 같이 될 거야. 나는 아무리 노력해도 결코 이곳에서 벗어나지 못할 거야.' (p.79)
트레일러에서 살고있는 프랜시스 딘은 열일곱의 고등학생으로 집안의 가난, 빚, 무능, 무지를 안고 있는 전형적인 미국의 하층민으 이다. 이 아이는 자신이 고등학교를 제대로 졸업하지 못할것이라고 생각을 하고 있다. 엄마는 정신병을 앓고 있고 친아버지는 누군지도 알수 없고, 이혼한 양부와 양부의 아들이 부러운 아이다. 살기위해서 아르바이트에 매달리지만 생활비와 엄마의 약값을 충다하기도 부족한 이 아이에게도 첫 사랑이 찾아온다. 엄마가 입원한 병실 옆에 자살미수로 들어온 앤메이 가드너. 프랜시스 눈에 천사처럼 보이는 그녀는 친부에게 성폭력을 당했다고 이야기를 하고, 프랜시스는 그녀에게 빠져들어 버린다. 트레일러 촌으로 이주한 후 학교 생활은 엉망이고 친구도 없는 프랜스시에게 친구라고는 '너드'라고 불리는 그로버 체드위크뿐이었다.
사는 것 자체가 힘에 겨운 프랜시스에게 엄마의 음독자살 기도는 한없는 나락으로 떨어트리지만, 프랜시스에게 전해진 한 통의 편지는 희망을 안겨주기에 충분했다. 엄마가 쓴 편지 안에는 프랜시스가 어떻게 해서 태어나게 되었는지, 친아버지가 누구인지, 그걸 왜 지금까지 숨겨야 했는지에 대한 모든 내용이 담겨 있었다. 믿어도 될까? '천재은행'에서 천재의 정자로 만들어진 '니틀 천재'가 프랜시스란다. 자신의 탄생에 대한 새로운 사실이 밝혀지자 프랜시스는 양부에게 5천 달러라는 거금을 빌리고 스물한 살로 나이를 위조한 신분증을 만들고 그로버, 앤메이와 함께 자동차로 여행을 떠나려 한다. 이렇게 이 아이들은 아버지가 살고 있다는 캘리포니아 로스앤젤레스까지 무작정 떠나는 미국 횡단 여행을 시작한다. .
이들이 살고 있는 뉴욕을 시작으로 중서부, 라스베이거스, 샌프란시스코, 로스앤젤레스를 거쳐 티후아나까지 이 젊은 청춘들은 '천재은행'에 정자를 준 프랜시스의 양부를 찾기위한 길을 떠난다. 열일곱 청춘은 왜 이리도 무모한지 모른다. 빌린돈 5천 달러를 여행자금으로 사용하고, 라스베거스에서 꿈만 믿고 도박을 하니 말이다. 거기서 딱 멈추는 것이 어찌나 어려운지 빌린돈이 한푼도 없어졌을때 조차도 프랜시스는 꿈을 꾼다. 그래도 그에겐 천재인 친부를 만날 희망이 남아있었다. 루저로서의 삶이 아닌 새로운 삶을 그리는 이 청춘의 꿈은 이루어 질 수 있을까? 천재에게서 태어났으면 당연히 천재여야 하지 않을까 싶지만, '천재 은행'의 유일한 성공작인 앨리스터 헤일리 조차도 그 천재적인 재능에도 불구하고 평범한 레스토랑 지배인으로 살아가고 있다고 하니, 아직은 <가타카>속 정해진 운명을 논하기에는 어려움이 있을 것이다.
IQ 170의 하버드대를 나온 아버지를 만났을까? '천재 은행'의 존재는 확실할지 모르겠지만, 그 안에 있는 천재들의 정자는 확실히 천재들의 것이었을까? 욕심이 과한 천재과학자의 무모함이 터무니없는 실수를 저지르지는 않았을까? 의심도 없이 프랜시스를 따라오다 친부를 만나기도 전에 앤매이의 고백은 열일곱 청춘을 아프게 만든다. 그리고 찾게 되는 친부. 실수와 우연의 만남이라고 해야 할까? 아니, 어떤것이 실수고, 어떤것이 우연이었을까? 『거의 천재적인』이다. 조금만 더 버텼더라면 천재가 되었을지도 모르는 프랜시스. 그의 이야기는 이것으로 끝이 아니다. 열일곱의 삶이 끝이 아닌것처럼 그에겐 또 다른 삶이 찾아오고 그로 인한 또 다른 이의 삶이 계속된다. 프랜시스는 어떻게 되었을까? 알 수 없다. 그저 내 기분에 따라서 달라지겠지. 오늘은 그녀를 만나고, 내일은 그녀와 헤어지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