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근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김소영 옮김 / 살림 / 2013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히가시노 게이고의 추리단편집이다.  그래서인지 『탐정클럽』이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2010년경에 읽었던 기억이 나는데, 그 역시 탐정들이 문제를 해결해내는 추리단편집이었다.  물론, 그것과는 다르기는 하지만, 『비정근』은  『탐정클럽』과 『신참자』를 떠올리게 하는 작품이었다.  아마, 책 표지를 제한후에 하드커드에 잇는 일러스트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비정근』에 나온 이미지와 많이 비슷하니 말이다. 이 작품은 1997년에 발표한 초기 작품이란다.  그래서 그런지 풋풋하고 깔끔한 단편들이 읽는 재미를 솔솔 느끼게 해준다.

 

 

 

나는 천성이 일하기를 싫어한다. 돈은 없어도 괜찮으니 좋아하는 일만 하며 살고 싶다. 말이 나온 김에 털어놓자면 교사라는 직업도 좋아하지 않는다.  대학 3학년 때 취업활동에 늦었다는 것을 깨닫고 부랴부랴 방향전환을 했던 것뿐이다. (p.9)

 

  대놓고 천성이 게으르다고 말하는 스물다섯 살의 '나'는 미스터리 작가가 되는 게 꿈이지만, 원고 집필 시간을 확보하기에 좋은 직업이어서 초등학교에서 비정규직 기간제 교사를 하고 있다. 기간제 교사는 정교사가 출산이나 병가로 휴직을 해야 할 때 대체교사 역할을 하는 것이다. 성격은 건조한데 상대가 아이들이라고 다르지않다. 사실 교사라는 직업도 좋아하지 않고, 당연히 교육에 대한 특별한 사명감도 없는 '나'는 그저 무리하지 말고 무사히 석 달을 넘기는 것만을 바라는 사람인데, 그가 파견되는 학교마다 괴이한 사건이 발생한다.  여교사가 학교체육관에서 시신으로 발견되고, 독극물 테러 사건이 발생하고, 자살을 시도하는 여학생이 있는가 하면, 초임 교사가 학교 건물에서 뛰어내려 자살하는 사건까지 일어나니, 사건을 몰고다는 '기간제 교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비정규직 교사는 학교 관계자이면서 동시에 외부인이다. 교육자로서 사명감을 가지고 일해도 인정받지 못하지만 실수라도 하는 날엔 가차 없이 잘려도 누가 뭐라 하지 않는다. 적당히 몸을 사리며 버티는 요령을 터득한 주인공에게 심상치 않은 사건들이 발생하고, 사건마다 교사로서는 상상하기 힘든 방법으로 추리를 전개해 나간다. 주인공은 자기 반 아이들을 아무 생각 없이 날뛰는 ‘방약무인한 원숭이’라고 부르며, 어리다고 봐주지도 않는, ‘따뜻하지 않은, 비정(非情)한’ 교사이지만, 자기 반에서 일어난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누구보다도 적극적으로 나선다. 별 관심 없는 것처럼 행동하면서도 아이들에게 툭툭 던지는 말들은 비정한 교사가 아니다.

 

사람이란 말이야, 당연히 호불호라는 게 있는 법이야. 하지만 확실한 건, 사람을 좋아해서 얻을 수 있는 건 아주 많지만, 싫어해서 얻을 수 있는 건 거의 없다는 거야. 그런데 굳이 싫어하는 사람을 찾아낼 필요는 없지 않겠어? (p.152)

 

  제1장 6×3 / 제2장 1/64 / 제3장 10×5+5+1 / 제4장 우라콘 / 제5장 무토타토(ムトタト) / 제6장 신(神)의 물 // 방화범을 찾아라 / 유령이 건 전화 로 목차가 되어 있는데, 1장에서 6장까지는 '비정근'교사인 '나'의 이야기 이고, '방화범'과 '유령이 건 전화'의 이야기는 초등학교 5학년인 고바야시 류타가 사건을 풀어내는 이야기다.  일본어의 오류로 인해서 해결이 안되었던 사건들도 있지만, 초등학교 비정근 교사의 특징답게 아이들의 소소한 글씨 실수를 쪽집게처럼 찾아낸다. 1997년도 작품인데, 일본의 초등학교 모습은 지금 우리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의 모습처럼 느껴진다. 인기투표 대신 '우라콘'을 만들어 내고 '스포츠 도박'을 하는 아이들의 이야기가 낯설면서도 익숙하게 다가오는 이유가 여기에 있을 것이다.  하지만, 초등학교 아이들 답게 순수하게 다가오기도 한다. 그래서 아이들이 글자를 틀리고 자신에게 도움이 되게 바꾸기도 하니 말이다.  5학년인 고바야시 류타의 이야기는 딱 그나이 아이들 이야기 같아서 풋풋하게 다가온다.

 

  단편 모음집 이기에 어디서부터 책장을 펼쳐도 부담감 없이 재미있다. 굉장한 추리를 원한다면 한번쯤 갸우뚱거리면서 생각해봐야겠지만, 단순히 히가시노의 초기작을 만날 수 있다는 설렘만 가지고 읽기 시작하면 충분히 매력적이다.  『신참자』를 떠올린다면 그 느낌이 어떤것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가볍게 읽을 수 있고, 신선하게 다가온다.  내가 알고 있던 작가가 아닌 새로운 작가의 글을 만난 느낌이랄까?  너무나 거대해져서 범접하기 힘들것 같은 이도 역시 병아리 시절은 있었으니까 말이다.  풋풋한 히가시노 게이고를 만날 수 있는 책, 『비정근』은 그래서 읽을 만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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