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게 - 어느 은둔자의 고백
리즈 무어 지음, 이순영 옮김 / 문예출판사 / 2013년 10월
평점 :
절판


『무게』라고 읽었는데, 영문이 'HEFT'다.  이 단어의 정확한 뜻을 몰랐다.  작가의 글을 읽다보니 처음 생각한 제목은 'Everyone's sons'였다고 한다.  영어로 읽을 때 각운이 잘 맞긴 했지만 발음하고 기억하기 다소 어려워 책  내용을 가장 잘 표현하는 단어 하나를 생각해낸 것이 바로 'Heft'였고, 이 제목이 무척 마음에 들었다고 이야기를 하고 있다.  사전을 찾아보니 1. 무게, 중량  2. 중요성; 세력, 영향력  3. 대부분; 주요부, 요점으로 되어있고, 작가 역시 'Weight'를 의미하기도 하지만, 짐이 되는 것, 고통스럽게 짊어지고 가야 하는 것을 의미하고, 복잡하고 힘겨운 것을 의미한다고 이야기를 한다.  마지막뜻인 진지하고 심각하며 중요하게 여겨지는 것을 의미하기도 하는데, 이것 또한 앞의두 가지 의미 못지 않게 중요하다고 이야기를 하고 있다.

 

 

  처음엔 책 표지나 제목이 요즘 흔하게 나오는 것처럼 달달하거나 자극적이지 않아서 소설이라는 생각을 못했었다.  책을 받고 손이 가기까지 조금은 더디게 걸렸던 것 같다.  그런데 이게 웬걸.  이 책 대박이다. 재미도 있고 작가의 말처럼 두 주인공들이 견뎌내야하는 삶의 무게가 고스란히 느껴진다. '내가 마지막으로, 정말 마지막으로 집 밖에 나간 때가 2001년 9월이었어요.'(p.16)라고 편지글을 쓰고 있는 아서는 쉰여덟의 은퇴한 대학교수로 250kg에 달할 만큼 뚱뚱한 남자다.  아서가 유일하게 소통을 하는 것은 온라인 쇼핑을 제외하고는 대학교수 시절 자신의 학생으로 만났던 샬린 터너와의 18편 간의 편지 뿐이지만, 편지로만 세상을 만나는 아서는 진실되지 못하다.  예전 싸이나 페이스북처럼 모든 현실이 아닌 행복한 모습만 보여주는 것 처럼 말이다. 그렇게 자신을 숨겨오던 아서에게 샬린으로 부터 그녀의 아들의 후견인이 되어달라는 연락을 받게된다.

 

  현실의 눈으로 아서를 바라보지 않는다면, 아서는 부자인 데다가 유명한 건축가인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아름다운 가구와 책을 가지고 있는 남자다.  그런 그가 10년이 넘도록 세상밖은 커녕, 문밖으로 나오지도 않고 자신의 집 이층에도 올라가 본적이 언제였는지 기억조차 할 수 없다고 한다면 믿을 수 있을까?  아서는 이제 샬린에게 진실을 말하고 샬린과 샬린의 아들을 맞을 준비를 하기 시작한다.  그러기 위해서 아서는 자신의 집을 청소하기 위한 사람을 고용하게 되면서 욜란다가 오게 된다.  혼자만 있을때는 전혀 부끄러울 것이 없는 집에 찾아온 낯선 타인은 자신이 고용주임에도 불편하고 어렵게 다가온다.  그녀를 돌려보내야만 할까?  아니, 그냥 두는게 좋은 것일까?  먼지쌓인 이층과 쥐가 튀어나오는 주방.  이 모든것이 어린 도우미 눈에 보여지고, 아서는 불편함과 창피함을 함께 느낀다.

 

  '내 오래전 기억 속에는 나처럼 이름이 켈인 아버지가 있다. 우리 성은 켈러다. 아버지는 내게 자신의 이름을 주었고 자신의 야구공을 주었으며, 내가 네 살 때 애리조나 주로 떠났다. 그리고 나는 지금까지 켈 켈러다.'(p.113).  켈의 이야기의 시작이다.  용커스라는 가난한 동네에 살고 있는 열입곱 살 켈 켈러는 엄마의 고집으로 부자 동네, 펠스 랜딩의 학교로 오게된다. 자신이 살던 곳과는 전혀다른 곳 그곳에서 켈은 불쌍하고 외로운 고등학교생다.  네 살때 사라져 버린 아버지, 술로 인해 대머리가 되어가고 자신보다 무거운 몸이 되어가는 망가진 엄마의 모습, 제대로된 부모와 좋은 집과 차를 가지고 있는 학교 아이들의 모습은 켈을 더욱더 외롭게 만들지만, 뛰어난 운동실력과 야구실력으로 메이저리그를 꿈꾸지만, 엄마는 켈이 야구가 아닌 대학을 가기를 희망하면서 켈의 대한 진학에 도움이 주기위해 아서에게 전화를 건다.

 

  18년 만에 걸려온 샬린의 전화는 아서의 삶을 뒤흔들기 시작한다.  샬린이 보내온 한장의 사진으로 샬린의 아들이라는 켈에 대한 생각은 켈을 맞이해야한다는 생각으로 전환된다.  오랜 세월 먼지에 뒤덮여 있던 자신의 집을 청소하기 위해 찾아온 어린 청소부 율란다.  이제 아서는 샬린과 켈을 기다리면서 율란다와의 대화를 시작한다.  자신의 삶이 아닌 어린 청소부의 삶이 보이기 시작하고, 그녀와 힘겨운 산책을 통해서 오랜시간 스스로 갇혀있던 집이라는 은신처에서 한걸을 밖으로 나오기 시작한다.  아서의 독백이라고 생각했던 글은 어느새 켈과 샬린의 이야기를 펼쳐내다가 율란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물론 아서와 켈의 이야기지만, 현재의 이야기만을 들려주는 것은 아니다.  아서의 과거와 켈의 네살때의 기억. 그리고 샬린의 야간 대학시절의 기억. 

 

  아서, 켈 그리고 샬린은 기억속에서 사는 인물들 처럼 보이지만, 한편으론 현실을 받아들이면서 살고 있다.  책의 중반부로 넘어서면서 최대 관심사는 켈이 누구의 아들인가 하는 것이다.  켈의 이름이 '아서 켈 캘러'라고 밝혀지면서 아서와의 연관성을 찾게되고, 샬린의 죽음 이후 샬린의 편지는 켈의 정체성마저 혼미하게 만들어 버린다.  샬린이라는 다리가 이어놓은 아서와 켈.  작가 리즈 무어는 어느 한쪽도 기울이지 않게 적절하게 아서와 켈에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쉰여덟의 은퇴한 교수의 이야기와 청춘의 반항을 시작한 열일곱 아이의 삶의 모습을 말이다.  켈보다 어린것 같은 아서와 삶의 무게로 열일곱 같지 않은 켈.

 

  책을 잡기 전에는 표지에서 오는 묵직함으로 인해서 쉽게 다가갈 수가 없었다.  『무게 - 어느 은둔자의 고백』이라는 제목 역시 쉬운 이야기는 아니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었다.  기우였다.  아서의 편지글로 시작되는 글은 아서와 켈, 그리고 율란다의 이야기속으로 빠져들게 만들어 버린다.  상상 이상이었다.  끔찍하게 쌓아놓은 음식을 먹는 장면도 아이들의 일탈 장면도 거부감보다는 이들이기에 가능한 이야기구나 하는 느낌으로 다가왔고, 아서와 켈의 만남을 그리고 희망하게 만들어 버린다.  작가는 정답을 알려주지 않는다.  아서에게도 켈에게도.  삶의 정답이라는 것이 있을 수 있겠는가?  이야기 속 주인공들도 여러사람이 함께 하는 인생이라는 바다속에선 그 자신만이 주인공이 될 수는 없다.  모두가 자신의 삶에선 주인공이니 말이다.  아서와 켈, 샬린과 율란다, 심지어 율란다의 남자친구까지.  그들의 이야기를 누구도 좌지우지 하거나 논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들의 삶은 오로지 그들의 삶일 뿐이니까 말이다.  다만, 그들의 이야기를 통해 또 다른 인생을 배울 뿐이다.  내 인생만이 정답은 아니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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