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조광조는 훈구 세력을 몰아내려 했을까? - 조광조 vs 남곤 역사공화국 한국사법정 30
이근호 지음, 박준우 그림 / 자음과모음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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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산군에서 중종까지 내리 읽고 있다.  이렇게 읽는게 좋다.  하나로 이어져서 그 시대가 왜 그랬을까에 대한 의문도 풀리고 어느 드라마보다도 재미있게 읽혀지기 때문이다.  자음과 모음에서 나온 <역사공화국>의 장점은 이렇게 이어지면서도 글쓴이가 다르다는 것에 있다.  아무리 역사가 승자의 기록이라고 하여도 글쓴이가 다르기에 다각도로 바라볼 수 있다.  같은 내용을 다루는 것이 아니니 관점이 다른게 뭐가 그리 중요해라고 말할지도 모르겠지만, <역사공화국 한국사 법정>의 28화는 《왜 연산군은 폭푼이 되었을까?》(이한우 글)이 였고, 29화는 《왜 조선왕조실록은 왕이 볼 수 없었을까?》(김경수 글)이 였다.  두 사건속에 공통적으로 들어가야만 하는 내용이 있을까?  물론 있다. 실록의 사초를 쓴 김일손의 '조의제문'은 28화와 29화에서 공통으로 다루어진다.  다른 작가가 썼기 때문에 다른 입장으로 쓰여지지만, 28화에서 본 내용이 28화를 통해서 또 다시 떠올려지고, 읽었던 내용들도 생각나게 하는 강점이 <역사공화국>속에 있다.

 

 

  《왜 조광조는 훈구 세력을 몰아내려 했을까?》는 어떤 내용일까?  이전에 읽은 내용과는 다른 이야기가 나올것 처럼 보이지만 중종시대의 인물 이야기가 나오려면 당연히 '중종반정'이 나와야한다.  그리고 '중종반정'은 연산군 없이는 이야기 할 수가 없다.  역사의 수레바퀴는 물리고 물리면서 돌아간다.  어느 사건 하나만 뚝 떨어져서 만들어 낼 수가 없으니 <역사공화국>만큼 장대한 이야기는 없을 것 같다.  그래서 한국사법정의 사건들을 만나다 보면《조선왕조실록》을 중고등학생들에게 쉽게 읽히는 방법 중 하나가 <역사공화국>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물론 중고등학생만을 위한것은 아니다.  나 역시 <역사공호국 한국사법정>을 좋아하니 부모도 읽고 아이들도 읽고 함께 역사드라마를 볼라치면 그 재미가 쏠쏠하다.  이 <역사공화국>이 60권으로 완간을 했다.  아직 읽지 못한 부분들이 있어서 그부분들을 읽고 있는데, <한국사법정>을 다 읽으면 <세계사법정>으로 넘어가려 하고 있다.

 

  30화의 내용으로 돌아가자.  '중종반정'은 연산군을 몰아낸 신하들의 승이였다.  그만큼 초기에 중종은 자신을 왕으로 세운 신하들에게 약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이복형에게 죽임을 당하지 않기 위해 숨죽여 살다 어느날 왕이 되었고, 왕이 되었기 떄문에 부인과 생이별을 할 수 밖에 없었던 왕이였으니 무슨 힘이 있었겠는가?  그 왕이 조금씩 자신의 힘으 키우기 위해서 사림의 세력을 불러 모으기 시작했다.  그리고 사림세력의 우두머리였던 조광조는 훈구 세력을 몰아내려고 했었다.  역사의 돋보기를 중종시대의 한 부분에만 맞춰서 본다면 조광조의 '패'였지만, 조광조의 역할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그리고 지금 알아보고자 하는 것은 '왜 조광조는 훈구 세력을 몰아내려 했을까?'에 대한 답을 얻고자 한다.  사림세력과 훈구세력의 뿌리는 고려 말 권문세족에 대항했던 신진 사대부라고 할 수 있다. 성리학을 배움의 기본으로 삼고, 당시 권문세족들의 폐단을 시정하려고 하였던 사람들이었는데, 조선이 건국되면서 새로운 나라를 건설하는 데 힘을 기울여 조선을 세우는데 공을 세워던 세력을 훈구세력이라 하고 조선이 건국되면서 새로운 조선에 참여하는 것을 거부하고 지방으로 내려간 세력들이 훗날 사림 세력의 기원이 되었는데, 그들 중 사림의 정통은 김종직 선생이라 이야기르 하고 있다.  

 

 

  김종직 선생의 제자가 한둘은 아니지만 그 중 한명이 김굉필 선생이고 그가 조광조의 스승이다. '조의제문'이 김종직이 쓴 글이니 사림과 훈구의 싸움은 하루 이틀의 일은 아니었다. 권력의 힘은 강하다.  훈구 세력에게 권력이 집중되면서 인사 청탁을 하는 '분경'이 발생하는 등 문제점들이 발생했을 뿐 아니라, 훈구 세력은 지금의 거대 재벌과 같았는데, 전국에 많은 농장을 소유하고 , 자신과 친한 사람을 지방관으로 보냈다.  또한 집안의 노비들을 통해 공물의 방납등으로 큰 이익을 얻었고, 이런 과정에서 백성들은 높은 고리와 지대등을 내야만 했다.  그들의 권력은 그들의 부를 축적시켰고, 그것을 내려 놓기엔 너무나 달았을 것이다.  임금이 이런 사실을 몰랐을 리는 만무하기에 세조 5년에 김종직이 관직생활을 하면서 사림이 균형을 유지하기를 원했지만, 거대 권력을 가진 훈구세력을 막기엔 힘이 들었을 것이다.  본격적으로 사림 세력을 주목하기 시작한것은 성종때로 성종은 훈구 세력의 비리를 처단하기 위해서 홍문관이라는 기관을 설치하여 관원들의 비리를 탄핵하는 역할을 만들었다.   

 

  중종 때는 어떠했을까?  조광조 등의 제안으로 경학에 밝고 덕행이 높은 사람을 천거하여 시험을 봐서 사람을 뽑았던 과거 제도를 현량과라고 말하는데, 이는 뽑힌 인재들이 도덕적으로 문제가 없는 인재 인지를 검증할 수 없었던 과거제의 한계를 넘어서기 위한 방법중 하나였다.  지방에서 학문적으로 뛰어나지만 등용되지 않은 인재를 불러들이기 위한 장치가 필요하기도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는 사림의 중심인물인 조광조가 제안한 것이었다.  훈구세력이 가만히 보고만 있을리가 만부했다.  조광조는 이 뿐 아니라 향약을 보급했는데, 사림은 향약을 실시하고 도덕과 예학의 기본 서적인 소학을 보급하여 향촌 사회에서 지배력을 강화해 나갔었다.  조강조가 주장한 개혁정책엔 이뿐 아니라 국왕의 학문과 정치적 능력을 높이기 위해서 경연을강조했고, 도교식 제사를 광장하던 관청인 소격서 혁파를 주장했다.

 

 

  점점 조광조의 힘이 커지면서 중종은 겁이 났었을지도 모른다.  훈구세력 입장에서는 조광조에게 힘을 실어주는 중종이 겁이 났었을지도 모른다.  '잘못된 공훈'을 바로 잡아야 한다는 '위훈 삭제'를 주장하는 조광조에게 훈구세력이 할 수 있는 것은 말도 안되는 '주초위왕(走肖爲王)'이였고, 중종은 모르는 척 받아들인다.  역사 속 한 토막은 완벽한 '조광조의 패(敗)'였다.  하지만 이걸로 끝이라면 역사가 아니다.  '역사의 수레바퀴'는 끝없이 돈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도 돌아가고 있고, 그 속에 작은 부분이 나중엔 커질수도 더 작아질수도 있다.  향약은 널리 퍼졌고, 사림의 세력은 퇴계 이황선생같은 분들에 의해서 명맥을 유지하면서 조선 후반의 역사속에서는 정치, 문화, 사상을 주도하게 된다.  하나의 단편적인 사건들로 역사를 이야기할 수는 없다.  그래서 과거를 들여다 보는 것은 재미있다.  역사엔 만약이 없다지만, '만약'을 넣어서 생각해 보는 것, 그 역시 역사를 들여다 보는 한 방법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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