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404번지 파란 무덤
조선희 지음 / 네오픽션 / 2013년 8월
평점 :
"내가 뭔지는 내 이름으로 알 수 있지. 공윤후. 어디에도 없는 것인 '공', 있지만 없는 날인 '윤', 얼마나 이어질지 알 수 없는 시간인 '후'. 나랑 같이 갈래?... 내가 다른 마술도 보여줄게. 김씨에게 위로가 될 행운의 마술이지." (p.25)
갸름하게 잘 빠진 턱, 왼쪽 눈썹 끝에 은빛 이슬처럼 금속 피어싱을 하고 왼쪽 귓볼과 연골에 알알히 푸른 옥돌을 박고 한여름에도 재킷을 단정하게 입고 있는 남자가 있다. 이 재킷이 또 묘하다. 파란 잉크색이라 생각했던 재킷은 청색으로 바뀌었다 시퍼런 바다색에서 창백한 청회색으로 변하는 신비한 옷이니 말이다. 게다가 성은 상관없이 사람들을 무례하게도 '김씨'라고 일관되게 부른다. 그러면서 자신의 이름은 '공윤후'란다. 일반적인 상식으로는 '뭐 이런 인간이 다있어?'하고 돌아서야 할텐데, 그 순간 그의 귀 한쪽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아니 보통의 사람은 그를 본 순간 빠져들 수 밖에 없다. 그가 누구이던지 상관없이 말이다. 사람중에서 여자라면 넋을 놓고 그를 바라볼테니 무례를 이야기하기도 못할 것이다. 죽기위해서 세상에 없다는 '파란 장미 꽃다발'을 안고 있는 여자 앞에 나타나 위로가 될 마술을 보여주겠다고 하는 이 남자. 뭐하는 거야 하려하는데 그는 진짜 마술사였다. 공윤후의 손길이 신경섬유종을 앓고 있던 그녀의 얼굴에 닿자 그 무겁던 혹들이 사라져 버렸으니 말이다.
이 남자는 도대체 누굴까? '룸룸'이라는 사람이 주인장으로 되어있는 <공의 모든 것>이라는 블로그엔 '공윤후'의 모든것이 들어있단다. 사람들이하는 이야기다. 공윤후가 누구인지는 정확하게 이야기를 하고 있지 않지만, 그의 할아버지가 1930년대를 살았던 공청옥이란다. 그는 진짜 마술사라서 트릭을 찾을 수가 없었단다. 얼마나 대단한 마술사였는지 동료인 이순옥의 목을 베었다가 다시 붙이기도 했는데, 독립운동가이기도 했던 공청옥은 일본군 장교 스키야마 고로의 목은 베었단다. 그래서 감옥에 갇혔는데 감옥을 제집 드나들 듯 하다가 죽었단다. 정말 죽었는지는 모르겠다. 공청옥이 죽은 후 공청옥과 똑같이 생긴 공해경이 나타났고, 지금은 공청옥과 똑같이 생긴 손자 공윤후가 있다니 말이다. 그런데 이들의 능력이 똑같단다. 트릭을 찾을 수 없는 마술. 그중의 최고는 단연 사랑을 이어주는 것이라고 하니 짝사랑으로 가슴아픈 남자들이 '룸룸의 블로그'를 찾고 '공윤후'를 찾기 위해서 애쓰는 것도 어찌보면 당연한 것처럼 보인다.
헤어샵을 하는 김병구가 '공윤후'를 찾은 이유 역시 사랑이었다. '곽민혜 입시 미술학원'의 원장, 곽민혜. 사고로 다리를 저는 그녀가 병구에 눈에 들어왔다. 사고 이후 계속 자라는 병에 걸렸다는 그녀는 이미 180을 넘어섰는데 모든것이 사랑스러워 보인다. 키작은 병구에게 왜 민혜가 들어왔는지는 알수 없지만, 사람 마음이 생각대로 되는 것이 아니니 어쩌겠는가? 그래서 '공'을 찾지만, 공의 특별한 능력을 얻기 위해서는 그의 조건을 받아 들여야만 한다. 하나를 얻게 되면 하나를 잃는다는 조건이 있다. 그래도 행복과 사랑을 선택할지는 인간에게 달려 있단다. '공'에 대해서 알면 알수록 겁이 나기 시작하지만 사랑을 멈출 수가 없다. "이 상자에 숨어버리면 세상에 오직 한 사람만이 여기 숨어 있는 당신을 찾아낼 있습니다. 그 사람이 누군지 알고 싶다면 이리 나오세요. 만약 그 사람이 당신을 찾아내지 못하면 당신은 잠자는 숲 속의 공주보다 더 긴 잠을 자야 할 수도 있습니다." (p.143). 누구에게 하는 말일까?
파란 무늬의 손 / 금이 변해 / 아침의 코와 세 개의 눈으로 / 그와 그녀와 그것들의 이름 후엔 어김없이 '활과 공윤후'로 이어진다. 도개산 404번지. 오랫동안 출입금지 팻말이 걸린 산길. 전설에 의하면 도개산은 도깨비들의 산이란다. 그리고 그곳에 있는 단풍 나무가 사람의 소원을 들어준다고 한다. 하지만 그곳에 들어간 사람은 아무도 돌아오지 못했단다. 하나로 이어질 것 같지 않은 이야기들이 하나씩 들려오고 있는데, 이것이 참 묘하다. 신경섬유종을 앓고 있던 여인을 돕고, 헤어샵을 하는 병구에 사랑을 이어주고 나니, 프란츠와 동하 이야기가 나오고, 죽은 언니가 따라다니는 아완의 이야기가 나온다. 분명 다른 이야기였다. 다만 그 속에 공윤후가 있었고, 프란츠가 있을 뿐이었다. 그저 어디에나 있을법한 전설따라 삼천리 쯤으로 생각을 하고 있을때 '룸룸'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그리고 따로 떨어져 있던 이야기들을 하나로 모으기 시작한다.
"너 좋을 대로 해. 인간은 선택을 할 수 있어서 인간인 거야. 혼자가 무서우면 둘을. 둘이 무서우면 혼자를 택하는 거야. 하나는 불행, 둘은 다행이라지만, 어느 쪽이든 거기엔 반드시 대가가 따르지." (p.158)
활과 공윤후. 공윤후의 모든것은 <공의 모든것>이 아니라 활과의 대화를 통해서 들려주고 있다. 어렸을때 만났던 도깨비들은 뿔도 달렸고 옛날 이야기를 읽다보면 오래된 물건이 변해서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하는데, 이 세상엔 오래된 물건뿐 아니라 나무도 도깨비가 된단다. 움직이는 회화나무라니.. 아니, 자명괴가 회화나무에 꽃이라는 걸 처음 알았다. 100년을 살아온 도깨비. 나타났다 사라졌다를 반복하지만 '공'은 항상 있어왔다. 공랑으로 공청옥과 공해찬으로 그리고 공윤후로. 아니, 그저 '공'으로 있어왔다. 암울했던 시대를 함께 했고, 급속도로 변화는 시대를 함께 했다. 도포자락이 자켓으로 변화는 것만 바뀌었나 생각하면, 시대와 함께 '공'도 변화를 하고 있는게 보인다. 그리고 '활'도 변화를 한다. 404번지 파란 무덤자리. '공' 역시 사랑을 꿈꾸고 누군가의 소유이기를 바라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매력적인 도깨비. 도깨비를 기다리고 찾는 사람들. 조선희 작가의 글답게 재밌다. 상식적으로 알고 있던 모든 도깨비들을 다 만난것 같은 '공'의 모든 이야기. 지금 내가 가장 궁금한 건, '공'은 무엇이었을까 하는것이다. '활'만큼 나도'공'이 궁금하다.
"세 조각이 모여서 하나의 물건을 이룬 것이 너라던데, 각 조각이 모두 온전한 물건이면서 세 조각이 모두 모여야 완벽하게 하나가 되는 물건에는 도대체 뭐가 있지?" (p.16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