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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N의 비극
다카노 가즈아키 지음, 김아영 옮김 / 황금가지 / 2013년 6월
평점 :
작년에 읽었던 책 중 단연 최고는 다카노 가즈아키의 <제노사이드>였다. 숨막히는 긴장감과 어디서도 존재하지 않았던 인물들이 펼쳐내는 딱딱 맞아 떨어지는 퍼즐 조각들은 작년 여름을 시원하게 만들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그래서 다카노 가즈아키라는 이름만 듣고도 <K.N의 비극>이 미치게 궁금했는지도 모른다. 다카노 가즈아키의 미스터리 서스펜스 걸작이라는 이름을 달고 나온 <K.N의 비극>은 책장이 넘어가는 속도가 빠른 소설이다. 책장을 펼치고 몇 시간 만에 읽어 버릴 정도로 재밌고 빨리 넘어간다. 그런데 그게 한달 전 일이다. 어떻게 써야 할지 감도 잡지 못하겠고, <제노사이드>가 떠나지 않고 있는 상태에서 읽어서 였는지 재미는 있는데, 최고라고는 이야기 할 수가 없는, '다카노 가즈아키?'라고 고개를 갸우뚱 하게 만들어 버리는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물론 재미있다. 소설은 재미있어야 한다고 외친다면 이 소설은 단연 재미있다. 게다가 출판사에서 이야기 하는 것처럼 날카로운 문제의식까지 건드리고 있기때문에 잘 쓰여진 책임에 틀림이 없다.
고등학교 때였는지, 사회생활을 했던 때였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드라마 중에 <M>이라는 드라마가 있었다. 원혼에 쓰인 주인공의 눈이 괴기한 음악과 함께 푸르게 변하면서 괴력을 뿜어내는 이야기 였는데, 그 이야기의 배경이 산부인과 였었다. 주인공에게 쓰인 원혼은 낙태한 아이들의 원혼이었었는데, 어린 시절 본 드라마가 어찌나 무섭던지 한여름에 이불을 뒤집어 쓰고 봤던 기억이 난다. 그 드라마가 꽤나 흥행을 했던 기억도 나는데, 뜬금없이 <M>을 이야기 하는 것은, <K.N의 비극>이 <M>을 떠오르게 만들기 때문이다. '구미의 표정을 살피자 눈동자에 예의 굳센 빛이 돌아와 있었다. 가나미는 안도했다. 구미와 함께 있는 한 자신은 보호받고 있다고 되뇌었다. (p.15 프롤로그 중에서) 고양이 새끼를 보러가는 구미와 가나미에 이야기로 프롤로그를 열었는데도 불구하고 1장으로 넘어가자 마자 프롤로그를 싹 잊고 있었다. 언제나 튀어나오는 망각의 힘이라니...

글발과 운발이 맞았는지 책 한권이 베스트셀러에 오르면서 슈헤이는 새로운 맨션을 구입하고 아내 가나미와의 행복한 삶을 꿈꾼다. 끊없이 펼쳐질것 같은 행복은 피임을 잊게 만들고, 가나미는 임신을 기뻐하지만, 전적으로 자신의 힘으로 된 베스트셀러가 아님을 아는 슈헤이는 불확실한 미래와 맨션 구입으로 써버린 돈을 생각하면서 아이를 미루자는 제안을 하게 된다. 가나미 역시 괴롭지만 남편의 상황을 알기에 수긍을 하게 되고, 중절 수술을 받으려고 하는데, 가나미에게 다른 여성의 의식이 나타나면서 수술을 미루게 된다. 자신의 눈앞에서 자살 시도를 한 도다 마이코에 일로 휴직을 하고 있는 정신과 의사인 이소가이가 슈헤이 부부의 삶에 관여하기 시작하면서 가나미를 지배하고 있는 미지의 여성의 의식은 겉잡을 수 없이 급변하기 시작한다. 도대체 가나미의 의식을 지배하고 있는 여성은 다른 인격인지 유령의 빙의인지 의사인 이소가이 조차도 이해를 할 수 없는 상황에 놓이게 된다.
정신병이라 이야기를 하고 있는 이소가이와 유령일지도 모른다고 의심을 품기 시작하는 슈헤이. 묵직한 소재이지만 너무나 흔하게 발생하고 있는 임신과 중절이라는 소재를 다루고 있으면서도 이소가이와 슈헤이는 빙의와 정신병에 초첨을 맞춰서 이야기를 풀어 나가고 있다. 중간에 낀 가나미만이 자신의 상태를 정확히 모르고 있다가 가끔씩 본래에 의식을 찾을때면 소스라치게 놀랄뿐이다. 악귀의 모습처럼 무섭게 가나미의 아이를 지키는 미지의 여성. 처음부터 그 미지의 여성이 누군인지 책을 읽은 사람이라면 알 수 있다. 가나미와 함께 프롤로그를 장식하고 있던 구미. 하지만, 왜 그녀가 가나미에 몸에 빙의가 되어 가나미의 의식을 사로잡고 있는지는 명쾌하게 들려주고 있지 않다. 'K.N의 비극' 이라고 실린 2000년 11월 9일자의 지방 신문 속 내용으로 모든것을 해결해 버리기에는 모호하지 않을까? 스산한 공포를 느끼게 하며, 가나미의 몸을 지배하고 있는 구미의 의식은 분명 긴장감 넘치고 스릴을 안겨주고 있지만 '미스터리 서스펜스 걸작'이라고 하기엔 부족한 감이 있다.
가나미가 다시 자신의 모습을 찾아나가는 과정이 이야기의 기본 뼈대겠지만, 분명 작가는 이소가이가 느끼는 고뇌를 통해서 생명을 생각하게 만들고 있다. 물질과 아이 어느것이 더 중요할까? 누구나 아이라고 쉽게 이야기를 하지만, 아직 태어나지 않은 아이라면 이라는 전제에서 펼쳐지는 이야기는 이소가이 만큼 읽는 내내 가슴을 답답하게 만들어 버린다. 그럼에도 이 찜찜함은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다. 거장 다카노 가즈아키이기에 무한한 관심을 가졌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언제나 수작이 나올 수는 없을 것이다. 다카노 가즈아키에 글이 아니었다면 '대단한데'라고 외쳤을 작품이 <K.N의 비극>이고, 이 작품을 통해서 남는 글은 구미가 슈헤이와 오카베에게 '내가 누군지 알아?'라고 질문한 것에 대한 답일 것이다.
"'나는 엄마야.'라고 구미가 말했어요. 굉장히 행복하다는 표정으로, '배 속에 있는 아기의 엄마야.'라고요." (p.3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