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은 지옥이다
비프케 로렌츠 지음, 서유리 옮김 / 보랏빛소 / 2013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타인은 지옥이다> 제목 한번 기차게 뽑아냈다.  책장을 덮고 나자마자 든 생각이 책 제목을 뽑은 카피라이터였다.  원제가 <모든 걸 감춰야 해>라고 하는데, 이 보다는 우리나라에서 나온 제목이 확연하게 와 닿는다.  물론, 책을 다 읽고 난 후에 이야기다.  처음엔 이게 뭔가 싶었으니까 말이다.  게다가 표지는 어쩜 이렇게도 섬뜩한지 붉은 머리에 육감적인 여인이 죽은 듯 누워있고 머리맡에는 칼이 꽂혀 있지 않는가?  스치듯 보면 이 붉은 머리칼이 핏물처럼 오싹하게 만들어 버린다.  그뿐이 아니다. 그보다 더한 건 그녀가 누워있는 곳이 어디인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내가 느끼는 공간은 시멘트로 꽁꽁 쌓아놓은 감옥이나 병동으로 다가왔는데, 그런 의도였는지, 주인공의 내면의 공간을 그린건지 잘 모르겠다.

 

 

 

  친정에 가면 현관문에 '홍여사님! 가스불은 잠그셨나요?'라는 문구가 큼직막하게 적혀있다.  친정엄마는 외출을 하실때마다 가스불을 잠갔는지 아닌지 신경을 쓰셔서 아버지가 써서 붙여주신 문구다.  엄마는 밖에 나가실때마다 그 문구를 보신곤 가스불을 다시 확인하신다고 하신다.  어째서 가스에 대한 집착이 있으신지는 모르겠지만, 가정주부라면 대부분 그렇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  어린시절 친구중에는 횡단보도를 건널때마다 하얀선을 밟아야만 마음이 편하다는 친구도 있었다.  나는 그런경험이 없긴 하지만 이런 증상을 강박증이라고 한단다.  책을 통해서 새롭게 안 내용이다.  보통 사람들에게 이런 강박증이 약하긴 하지만 한두개씩은 가지고 있단다.  <타인은 지옥이다>속 마리는 우리가 흔하게 겪고 있는 강박증 보다 훨씬 심한 강박증을 앓고 있다.  38살의 그냥 평범한 유치원 교사라고 생각했던 그녀가 교통사고로 딸을 잃고, 남편과 이혼을 한후 보통의 강박증보다 강도가 강한 강박증이 생겼다.  머릿속에서 끊임없이 너무나 구체적으로 살인 충동을 느끼기 시작한것이다.

 

  살인 충동을 느낀다고 살인을 저지를까?  말도 안되는 일이라고 해야하는데, 그녀에게 그런일이 생겼다. 잠에서 깨어난 마리는 자신의 손에 피 묻은 칼과 손톱에 낀 검붉은 핏자국을 보게된다. 그리고 사랑하는 남자 친구가 피투성이 시체로 누워 있는 모습, 오랫동안 머리속으로 저지른 살인 장면 그대로 그녀가 사랑하는 파트릭이 그녀옆에서 처참한 모습으로 죽어 있는 모습을 보게된다.  분명 머릿속으로 생각했던 장면인데, 그를 죽인 기억이 백지장처럼 하얗게 생각이 나지 않는다. 그녀는 범인이 맞을까?  정말 그녀의 머릿속 살인마가 그토록 사랑했던 남자 친구를 죽인것일까?  그녀조차 모르니 아무도 알수가 없다.  다만 그녀의 강박증은 '질병 및 관련 건강 문제의 국제 통계분류'인 ICD-10에 의하여 F42.0으로 분류된 '강박사고 또는 되새김'으로 분류되어 감옥이 아닌 정신병원에 입원을 하게 된다.

 

  하나씩 과거를 긁어모아 퍼즐 조각을 맞추는 것.  현실에서 팔켄하겐 박사가 하는 일은 마리의 사라져 버린 기억속의 퍼즐을 맞추는 일이다.  이곳에서 가능하긴 한걸까?  해리성 기억상실증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 몇개의 인격을 몸속에 가지고 있는 사람들, 끊임없이 누군가를 죽이는 상상을 하고 있는 사람.  이들 속에 마리가 있다.  팔켄하겐 박사를 만나고 마리의 전남편인 크리스토퍼가 그녀를 만나러 오기 시작하면서 그녀의 오래전 기억들이 하나씩 밖으로 나오기 시작한다.  강박증으로 유치원에 병가를 낸 이야기.  강박증 커뮤니티에서 만난 엘리와 엘리를 통해 얻게 된 안식들.  파트릭과 그의 동생들, 베라와 펠릭스.  잊고 살았지만 파트릭과 함께 라면 다시 사랑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니 사랑했다.  그의 동생들과 함께하는 시간은 보통의 사람과 다르지 않은 평범한 사람처럼 느껴졌다.  베라가 마리의 핸드폰에 저장된 머릿속 살인을 듣기 전까지는 말이다.

 

  책장을 넘기는 동안 정말 마리가 파트릭을 죽였을까하는 생각이 계속 들었었다. '내 머릿속에 살인자가 살고 있다.  분노 게이지 100%일 때, 이소설을 펼쳐라!'라고 책 표지에 실려있는 길이다. 왜 분노 게이지 100%일 때, 이 소설을 펼치라고 했는지는 책을 읽어보면 알 수 있다.  끔찍하도록 소름이 돋는다.  하지만 그 끔찍함이 강하게 밀려오는 것이 아니라 잔잔한 파문처럼 몸을 감싸고 조여오기 시작한다.  서서리 조여오는 공포는 내 분노가 별것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마리 같은 경우도 있지 않은가?  아니 그녀보다 더 한 경우도 있지 않은가?  잠재되어 있던, 묻어 버렸던 것이 표면으로 드러났을때의 공포는 상상을 넘어선다.  마리의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타인은 지옥이다>는 마리보다 더한 이에 이야기를 들려 주고 있다.  마리를 통해서라도 자신이 느꼈던 공포의 원인을 사라지게 만들려고 했던 사람의 이야기를 말이다.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들을 머릿속으로 죽이고 있는 여인.  사람을 만나는 것이 괴로움으로 다가오는 그녀에게 '타인'은 끔찍한 '지옥'이었을 것이다.   사르트르는 그걸 알고 있었을까?  '타인은 지옥이다'라고 그녀가 알기도 전에 <닫힌 방>에서 이야기를 해주고 있으니 말이다.  마리의 세상이 지옥이 아닌 세상이 되길 바라지만, 마리에게만 지옥은 아닐 것이다.  삶이란 원래 힘들지 않는가?  지옥까지는 안가더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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