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의 꽃 김별아 조선 여인 3부작
김별아 지음 / 해냄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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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신하들이 나가니 하연이 계하기를, "전 관찰사 이귀산의 아내 유씨가 지신사 조서로와 통간 하였으니 이를 국문하기를 청합니다"하니, 그대로 따라 유씨를 옥에 가두었다. - 세종실록 21권, 세종 5년 9월 25일

 

  역사 속 이야기를 들쳐 내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고증을 한다 하더라도 그 시절을 살아본 적 없는 이들이 시절을 헤집고 들어가 단 몇줄로 기록되어 있는 문장 속 간극에 뼈를 채우고 살을 발라 살아있는 이야기를 만들어 낸다는 것이 어떻게 쉽겠는가?  세종실록 21권에 나와있는 이 짧은 글과 세종 9년에 일어났던 '유감동 사건'을 통해서 보여준 왕의 행동을 통해서 김별아 작가는 또 하나에 사랑 이야기를 만들어 냈다.  "사람이 있다며 어김없이 사랑이 있었을 것입니다" 라는 한줄에 글과 함께 말이다.  그리고 그녀가 이야기했던 <비너스와 큐피드의 알레고리>의 한구절 처럼 말이다. '모든 사랑이 마땅히 가능하고 충만한 것이었다면, 사람들은 그토록 사랑 뚠에 뒤척이지 않았을 것이다. 헛된 망상과 터부의 사슬이 없었다면, 사랑만큼 하찮고 보잘것없는 장난질도 없었을 것이다.'

 

 

 

  왕의 명으로 저잣거리에서 참형을 당하는 여인이 있다.  저잣거리 왈패가 돌을 던지고 침을 뱉어도 아무도 돌아보지 않는 이 여인은 전 관찰사의 아내 유녹주란다.  이 여인이 남편이 아닌 다른이와 사통을 했단다.  남자는 개국공신의 장남이자 왕명을 출납하는 지신사 조서로. 이러니 조정이 발칵 뒤집힐만도 했을 것이다.  이들에게 무슨일이 있었는지는 소문으로만 알수 있는 일이지만, 여인은 참형을 당했고, 남자는 유배를 떠났다. 그렇게 유배된 조서로는 이십 년 남짓을 더 살았고, 박탕당했던 고신은 단종 때 다시 돌려받았단다. 하지만 어떤 후회와 자성이 있었다 해도 서슬 푸른 강상의 칼에 목이 베여 죽은 유씨는 돌아올 수 없었다. 그들에겐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젊은 장수가 늙은 장수와 왕을 몰아내던 시기부터 이야기는 시작된다.  한 나라가 사라지고 또 한 나라가 세워지던 혼란한 시기에, 일곱살 어린 계집아이 하나가 어찌어찌 살아남아 먼 친척집에 맡겨졌다. 엄한 아버지와 강퍅한 어머니 밑에서 지내던 사내아이에게 여자아이는 좋은 벗이었다.  '이름을 잃는다는 건 존재를 잃는 것이었다.  스스로 이름을 기억해내지 못할 때 사람들은 계집아이를 불쌍히 여겼다. 하지만 그 모든 동정과 안쓰러움을 합쳐도 계집아이 자신의 당혹감에는 미치지 못했다.'(p.74)   사내아이의 이름은 서로. 여자아이의 이름은 없었다.  아니, 기억해 내지 못했다.  그 아이에게서 서로는 녹색구슬을 떠올리고, '녹주'라는 이름을 지어준다.

 

  질투는 참 작은것에서 시작이 된다.  그것뿐일까?  나이와 상관없이 일어난다.  서로의 어미인 경심과 녹주의 어미인 채심은 사촌간이었음에도 항상 비교를 당했단다. 청화당 노마님에 눈엔 자신의 딸 경심이 채심처럼 되기를 바랬을지도 모른다.  그렇다고한들 자신의 딸만 하겠냐마는, 경심은 몰랐다. 그래서 채심이 미웠다. 아니 그녀에 대한 질투를 없앨수가 없었고, 채심을 닮은 녹주가 싫었을 것이다.  녹주를 귀해하던 노마님이 세상을 뜨자, 경심은 녹주를 개성의 작은 암자로 보내버린다.  이제 막 사랑에 눈뜬 두 사람은 기약 없는 이별을 하고, 녹주는 ‘수경심’이라는 이름의 비구니로, 조서로는 좋은 가문의 여인과 혼인하며 각자의 생활을 이어가지만, 두 사람 모두 서로를 잊지 못한다.

 

불의 꽃을 꺾은 것이 죄였다.  꽃을 탐내고, 꽃을 잃어 노여워하고, 꽃에 홀린 어리석음이 죄였다.  슬픔도 기쁨도 죄였다. 녹주는 끝내 세 가지 독을 떨친 수경심이 될 수 없었다. (p.153)

 

  비구니가 되기전에 동자승같은 어린 여인을 사미니라고 한단다.  사미니의 삶을 살고 있는 녹주는 '수경심'이 될수 없었다.  잊어야함에도 잊을 수가 없었고, 떨쳐내려 해도 떨쳐낼수가 없었다.  불의 꽃이라지 않는가?  금지되어 있는 것은 더욱 아름답다.  가슴속에 남아 있다 해도 '불의 꽃'은 '불의 꽃'이다.  꽃에 홀린 어리석음을 떨쳐낼수 없기에 사미니는 '수겸심'이 될 수 없었고, 암자의 주지승, 운공은 인연을 이야기 한다.  인연은 어디에서 오는것일까?  사랑하던 아내와 사별한 후 작은 암자를 찾은 이귀산은 환속 후 절 살림을 돕고 있던 녹주에게 한눈에 반하여, 후처로 맞는다.  자식보다 어린 후처가 어찌나 곱고 예쁘던지. 녹주를 위해 피리를 구하던 이귀산은 녹주의 먼친척 오라비라는 서로를 만나게 된다.   

 

   아내도 있고 자식도 있는 사람이었다.  모든걸 떨친다고 절로 갔다가 떨치지 못해 나이많은 전 관찰사의 후처가 된 사람이었다.  그냥 사람이었다.  그냥 그렇게 사람으로 먼 친적으로 살려했는데, 가능하지가 않았다.  삼십여 년을 간직해 온 마음이 이 둘을 그냥 사람으로 살게 하질 않았다.  은밀한 밀회가 시작되고, 밀회는 숨길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낮엔 새가 있고 밤엔 쥐가 있으니까.  자신들에 눈과 귀만 막으면 되는 일이 아니었다.  분명 사랑이지만, 사랑이라 그들은 이야기 하지만, 세상에 허락 받지 못한 사랑은 사랑이 아니다.  만져서는 안되는 '불의 꽃'에 홀려 꽃을 꺾은 그 순간부터 그들은 의지와 상관없이 바다로 흘러들어가는 물줄기였는지도 모른다. 의지와 상관없이 흐르고 흐르는 물줄기.

 

  그들의 사랑을 역사는 한줄의 정사로 만들어 버렸다.  김별아 작가는 그 한줄에 숨을 불어 넣어 살려냈고, 그 속에서 녹주와 서로가 사랑하기 시작했다.  하나에 사건이 같은 일을 겪은 두 사람에게 다르게 적용되었고, 여인은 형장의 이슬로 사내는 긴세월 유배지를 떠돌았다.  그들은 어떤 꿈을 꾸었을까?  작가의 글처럼 여인은 죽음앞에서도 사랑때문에 행복했었을까?  그 사랑때문에 아무런 후회가 없었을까?  알수는 없는 일이다.  죽음앞에서 싱긋 웃을수 있었던 그 미소를 세인들은 기이하다 여기지만, 작가와 함께 녹주를 따라갔던 이들은 그럴 수 밖에 없음을 알고 있다.  긴 세월에 끝에서 서로 함께 하면 안되는 이들이 함께 했다.  아니, 처음부터 함께 했어야 옳았을지도 모른다.  어떤것이 옳고 그르다고 이야기할 순 없다.  그들에 사랑을 이야기 할수도 없다.  여전히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인것이 이 말도 안되는 사랑이니 말이다.  사랑 사랑... 누구 말했나?  향기로운 꽃보다 진한것도 맞고, 눈물에 씨앗인 것도 맞는 이 사랑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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