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자를 떠올리면 플라폰, 아리스토텔레스, 칸트, 홉스, 소크라테스나 맹자, 공자, 순자가 먼저 떠오른다. 학교에서 배웠던 철학자들이 이들이었고, 달달 외웠던 내용들도 플라톤의 이데아, 아리스토텔레스의 행복, 칸트의 순수 이성이었으니까 말이다. 동양으로 넘어오면 성악설, 성선설을 외웠었고, 그런 내용들로 시험을 봤었다. 그래서 그런지 철학자속에 우리네 조상님들은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실학자가 철학자일까?' 라는 생각을 왜 한번도 해보지 않았는지 모른다. 아니 서양에 철학자들이 과학자나 수학자였다는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우리 조상님들에 대한 생각은 어쩜 이렇게 무지했었는지 모르겠다.

철학자가 들려주는 철학이야기의 목록을 살펴보다가 서양철학자 뿐 아니라 우리 조상님의 이름이 다수 들어있는 것을 보고 '헉~'하는 생각이 들었다. 정약용의 경학이야기, 최학기의 기학이야기, 퇴계 이황의 경 이야기와 함께 실려있는 것이 <박지원이 들려주는 이용후생 이야기>다. '이용후생'. 분명 어디선가 들었던 말인데, 뭔지 모르겠다. 박지원이 생소해서일까? 설마? 박지원이 생소하다면 국사시간에 너무 잠만 잔 사람들이다. 다른건 몰라도 북학파, 실학자 박지원은 너무나 많이 들어서 익숙하니까 말이다. 게다가 달달 외우다시피했던 <열하일기>를 쓴 분이 연암 박지원이다. <열하일기>속 소설들은 중고등학교 필독서로도 당당히 이름을 걸고있는것이 대부분이다. <호질>,<허생전>,<양반전>. 읽어보지 못했다고 해서 제목은 확실히 알수 있다. 얼마전엔 큰아이와 함께 <열녀함양박씨전>에 대한 글도 읽어봤으니 박지원에 대해서 알만큼은 안다고 생각했는데, '이용후생'을 설명하기가 어렵다.
북학파의 한 사람인 박지원(1737~1805)은 반남 박씨로 서울 서소문 밖 야동에서 태어났다. 열여섯 살때 비로소 글을 배웠는데, 과거시험을 단념하고 세상을 비판하며 살았단다. 스말살에서 서른살 사이에 아홉 편의 소설을 썼고, 1780년 마흔네살 되던 해에 사신 일행에 끼어 청나라로 여행을 한 후 거기서 듣고 보고 겪었던 일을 쓴 것이 <열하일기>란다. 이 속에 들어있는 아홉 편의 소설은 그의 철학과 사상을 보여주고 있다. 쉰살이 되어 벼슬을 받고, 현감, 양양부사를 지내면서 농사에 관한 책인 <과농소초>를 썼는데, 실학자로서 상공업뿐만 아니라 농업에도 관심이 있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정조 임금이 죽은후 벼슬을 그만두고 4년뒤인 1805년에 사망한것으로 기록은 나와있다.
실학이 조선에서 발생한 원인은 몇가지가 있는데, 첫째,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이라는 두 전란으로 말미암아 나라 경제가 바닥나고 백성들의 살림살이가 빈궁해지면서 당시의 주도적인 사상이었던 성리학의 신분 질서나 가치가 여지없이 무너뜨려지면서 실학이 나왔다. 둘째, 청나라의 문물과 청나라에서 들어온 서양 과학과 기술을 접한 후, 사람들의 눈은 새로운 것에 이끌렸고, 원수의 나라일지라도, 그들의 발전된 문물까지 배척해서는 안된다는 생각이었고, 중국이나 조선이 세계의 중심이 아니라, 많은 나라 가운데 하나라는 생각을 가지게 되면서 외국의것도 우수하면 언제든지 배워야 한다고 여기게 되었다. 조선의 실학파가 북학이라는 말을 쓰는 이유는 청나라가 병자호란을 일으켜 조선에 쳐들어온 원수지만, 그들의 문물을 실용에 보탬이 되도록 배워야 한다는 것이다. 박지원은 원수를 갚기 위해서라도 그곳에 유학을 가 배워야 한다고 생각했단다.

박지원의 생과 북학파는 알겠는데, 이종란 선생이 아이들에게 <박지원이 들려주는 이용후생 이야기>속에서 연암의 일생을 이야기하려 하는 것은 아닐것이다. 쉽고 재미있게 그는 어떻게 박지원의 사상을 이야기하고 있을까? 책속 주인공 지훈이의 아버지는 대학강사다. 대학교수가 아닌 강사인 아버지는 책만 좋아하고, 어머니는 <허생전>의 허생의 아내처럼 살림을 꾸려나간다. 아버지가 하는 공부가 돈을 버는것도, 인기가 있는것도 아니라며 어머니가 몰아세우자 아버지는 가출을 해버린다. 그리고 허생처럼 돈을 빌려 사업을 시작해서 성공을 한다. 무려 5년동안 가출을 한 아버지는 TV뉴스에 방송을 탄 덕분에 집으로 돌아오지만 사업에 성공한 아버지 덕분에 지훈이네 가족이 잘먹고 잘살게 되지는 않는다. 아버지는 모은 돈을 노숙자들을 위한 마을 건설에 사용을 했기 때문이다. <허생전>은 연암 박지원의 꿈이 담겨 있는 소설이다. 농사를 짓고 싶어도 지을 땅이 부족하고, 장사를 하고 싶어도 당시의 신분 질서가 허용하지 않았던 그에게 문학을 통해서 정책을 비판한 것이다. 그래서 <허생전>을 당시 양반 등의 집권층과 현실적인 실학파인 북학파들의 대비를 보여 준 풍자 소설이라고 부르고 있고, 결국 불합리한 현실과 집권층에 대한 비판이 무인도에 이상국을 건설하는 것으로 나타난 것이다.

이종란 박사가 이야기하는 박지원의 '이용후생'은 바로 여기에 있다. '이용후생'과 함께 거론되는 '정덕'의 길이라는 것이 돈만 많이 벌어 배부르게 잘먹고 잘사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 바른 덕을 쌓아서 그 덕을 지키는 것이야말로 이용후생이 나아가야 할 길이라는 것이다. 책의 앞뒤페이지에 있는 카툰처럼 말이다. 삼형제가 있었다. 그중 가장 큰형이 정덕이었다. 정덕은 일하지 않았다. 백성은 임금을 따르고, 상것은 양반을 따르는 것이 인간의 도리이며, 덕을 쌓는 것이 최우선이라면서 글만 읽는 정덕에게는 동생들이 있었는데, '이용'과 '후생'이이었다. 동생들만 형을 먹여 살리느라 고생을 하였는데, 중국을 다녀온 한 사람이 정덕을 꾸짖었다. <양반전>,<호질>,<허생전>등을 통해서 정덕을 비생산적인 존재로 본것이다. 사물을 배우며 그 사물을 '이용'하여 사람의 생활을 넉넉하게 하는 '후생'이 더 중요하다고 본 것으로 인간다운 생활을 누릴 수 있을때 인간읟 ㅗ리도 그 깊이를 더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담 '정덕'은 없어져야 할까? 아니다. '정덕'은 '이용'과 '후생'보다 후에 있다는 것이지, 별개는 아니다. 고로 박지원이 말하는 것은 돈을 말이 벌거나 남을 배부르게 먹고살게 하는 '이용후생(利用厚生)' 다음에는 바른 덕을 쌓아 지키는 '정덕(正德)'을 실천하라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