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천주교 박해가 일어났을까? - 홍봉주 vs 흥선대원군 역사공화국 한국사법정 44
방상근 지음, 조환철 그림 / 자음과모음 / 2012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위만조선부터 이어오던 역사공화국 한국사 법정이 60권으로 완결을 지었다.  조선중기부터 거의 다 읽었다고 생각을 했는데, 중간 중간 리뷰없이 넘어간 부분이 꽤 많아서 다시 읽어내려가기 시작했다.  한번에 다 읽기는 힘이 들듯하고 차근히 읽어내려서 역사에 맥을 잡아보려고 생각을하고 읽으니 이렇게 재미있을 수가 없다.  물론, 그 전에도 역사공화국을 심하게 편애했지만 말이다.  역사를 좋아해서 고등학교때도 역사만 파고 들었던 기억이 나는데, 역사공화국을 읽으면서 내가 알고 있던 것들이 정사가 아닌것들이 참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뿐아니라, 한쪽으로 치우쳐서 역사를 바라보고 있었다는 것도 알았다.  우리 교육이 그런면도 없지 않았지만, 학교에서 배웠던 역사를 맹신했었던것 같다.

 

 

 <왜 천주교 박해가 일어났을까?>는 제목만 보고도 떠오르게 되는 인물이 있다. 흥선 대원군 그리고 척화비. 흥선 대원군에 대한 이야기는 얼마나 많은가?  살기 위해서 바보처럼 살았다는 인물.  어떤 이들은 그를 개혁의 아이콘이라고 하고, 또 다른 이는 우리의 세계화를 막은 인물이라고도 한다.  척화비만 두고 생각을 한다면 분명 그는 세계화를 막은 인물이다.  하지만, 그 당시 조선 사회속으로 들어가 보면 그가 그럴 수 밖에 없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역사엔 가정법이 없다.  물론 알고 있다.  타임슬립을 이야기하는 허구속에서 조차도 이야기들은 역사속 나비의 날개짓도 건들지 않게 움직인다.  허구일 뿐인데도 왜 그럴까?  돌맹이 하나에 위치를 바꿔서 지금 세상이 좋아진다면 옳은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지만, 정말 지금 세상이 풍요로워질까?  알 수 없는 일이다.  역사는 지금 세대가 아닌, 우리 다음 세대가 또 판단할 문제이니 말이다.

 

 우리집 아이들은 여름이면 양화진에 간다. 성경학교에서 수련회기간에 빠지지 않고 가는 곳이 양화진이기 때문에 아이들에게 양화진은 조금은 익숙한 곳이다.  이곳이 어떤곳인가?  조선후기 천주교박해의 산역사를 보여주는 곳이 이곳이다.  워낙에 많은 신자들의 머리를 잘랐기에 '절두산'이라 불리는 곳. 그곳이 양화진이다.  이 곳에서는 왜 그런일이 벌어질 수 밖에 없었던 것일까?  근대라는 개념은 개항이후에 우리 역사에 들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것이다. 그리고 근대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평등이다.  모든 인간이 차별받지 않는 사회. 그것이 인류가 실현해야할 보편적 가치일것이다.  하지만 인류의 역사속에서 그러한 시기는 그리 길지가 않다.  서구에서는 산업 혁명과 시민혁명 이후의 일일것이고, 우리는 앞에서 언급했듯이 개항 이후의 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다면 개항 이전 조선사회는 어떠한 사회였을까?  신분제가 존재하는 불평등한 사회였던 것은 당연했을 것이다.

 

 

 한국사 법정 44권에서는 3대에 걸쳐 순교를 한 풍산홍씨 홍봉주가 원고로 나온다. 물론 피고는 고종의 부친으로 1873년 정치에서 물러날 때까지 천주교를 박해했던 흥선 대원군이다. 17세기 조선에 처음으로 소개된 천주교는 1784년에 이승훈이 북경에서 세례를 받고 돌아오면서 더욱 활발해졌다.  조선초기엔 천주교를 서양학문으로 여겼기때문에 관대했었지만, 천주교가 조상에 대한 제사를 거부하자 사교로 규정하게된다.  척화비를 세운 흥선 대원군은 천주교를 대대적으로 탄압하였으며 박해는 신유박해, 기해박해, 병오박해, 병인박해로 이어졌다.  척화비에는 '서양 오랑캐가 침범하였을 때 싸우지 않음은 곧 화의하는 것이요. 화의를 주장함은 나라를 파는 것이다"라고 쓰여 있는데, 천주교와 서양을 동일시 하게 보는것은 시점의 차이가 있어서 일어난 일이었지만, 그 당시에는 그럴 수도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천주의 사랑은 평등을 이야기하고 있어서, 조선사회에서는 힘없는 수많은 사람들이 천주교에 들어가게 된다.  그렇기에 권력을 가진 사람들은 겁이 났을 것이고, 권력에 중심에 있기를 원한 흥선대원군은 더욱 박해를 가했을 것이다. 병인박해때 서양 선교사 9명이 순교를하게 되는데, 이는 청나라에서 서양인들을 처형하고 있다는 보고가 들어오면서 정부 대신들이 흥선 대원군을 비나하면서 그의 정치적 지위를 안정시키기 위해서 천주교를 탄압하기 시작한점 만 보고도 알수가 있는 일이다.  하지만, 세상은 변화하게 되고 1886년 '조불 수호 통상 조약'이 타결되면서 선교사들은 호조만 지니면 조선 국내를 자유롭게 다니며 가르칠 수 있는 권리와 치외법권을 보장받게 된다.  이러한 현상은 문호 개방, 개화 정책 추진, 서양국과의 조약 체결 등 조선이 근대 사회로 진입하면서 얻어진 성과이지만, 여기에는 100년 동안 교회를 유지하려던, 목숨을 바쳐서라도 신념을 지키고자 했던 신자들의 노력이 있었음을 기억해야만 할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