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세 번째 아이 - 제12회 문학동네어린이문학상 수상작 보름달문고 48
이은용 지음, 이고은 그림 / 문학동네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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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0년 대 초,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는 제4의 물결을 예고했다.  새로운 물결속에서 인간은 우리가 상상도 하지 못한 그런 인간이 될 수 있다고 밝혔다.  그리고 그것은 현실이 되었다.'로 이야기가 시작된다. 우리가 상상도 하지 못한 인간?  작년에 <제노사이드>라는 책이 커다란 방향을 일으켰었다. 신인류의 탄생을 보여준 책이었는데, 책에선 신인류가 축복인지 저주인지에 대해서 확실한 답을 이야기하지는 않았지만, 문제에 대한 화두는 던져주고 있었다.  사실, 여타의 SF 작품들로 인해서 우리는 그런 신인류의 탄생보다는 최첨단의 로봇이 더 가깝게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1990년대 말에 나왔던 <바이센테니얼맨>이 그랬었고, 그보다 더 지능적인 <아이로봇>이 그랬었다.  그뿐인가? <트랜스포머>시리즈에서는 인공지능 로봇들에 대립된 싸움도 보여주고 있다. 로봇에 대한 이야기만 있는 것은 아니다. <아일랜드>나 <6번째 날>에서는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문제를 심엄하게 이야기를 한다.

 

 

  <열 세 번째 아이>는 인간의 감정이 억제된 맞춤형 아이 시우와 인간보다 더 깊은 감정을 지난 로봇 레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아이들이 사고하기에는 쉬운 문제가 아님에도 이젠 그런 문제에 대해서 아이들이 생각할 때가 된것이 현실이다.  어떻게 시우와 레오가 만나는지 들어가 보자.  시우는 '장시우 프로젝트'에 의해서 부모가 원하는 데로 만들어진 열 세번째 아이다.  첫번째 아이인 김선 박사를 필두로 맞춤형 아이가 태어났는데, 시우가 유명한 이유는 감정적인 문제에서 훨씬 이성적이기 때문이었다.  시우는 엄마가 결정해둔 미래처럼 살기만 하면 되는 아이였다.  이런 시우 주변에 시우와 같은 열번째 아이도 있고, 일반적인 아이도 있다.  아이들만 있는것이 아닏. 시우에겐 강아지 로봇, 물고기 로봇, 동생 로봇 시아가 있다. 그리고 이제 완벽한 로봇, 레오가 함께 하기 시작한다.

 

 레오에게는 시우에 대한 경험이 입력되어 있다.  인간과 같은 감정을 느끼기 위해서는 경험에 대한 기억이 필요하기때문에 레오는 어린시절에 시우에 대한 모든 것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레오는 시우를 특별하게 느낀다.  하지만, 시우에겐 레오 역시 로봇일 뿐이었다.  하루가 다르게 로봇이 만들어 지고, 이제 로봇이 인간의 감정까지 가지게 된다고 해도, 시우는 자신의 지문하나로 함께 했던 로봇들의 센서를 조정해서 폐기처분 되어지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강아지 로봇도 함께 했던 시아도 로봇 폐기센터에 버릴 수가 있었다.  이해할 수 없는 것은 레오였다.  감정을 느끼는 로봇. 이 이상한 로봇은 레오의 행동을 전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어떻게....?  함께 한 기억이 있는 동생을 폐기처분할 수 있을까?'

 

 "로봇은 아무런 결정도 하지 못해.  감정은 느낄 수 있지만 그것뿐이야.  인간과 같은 판단력은 애초에 입력하지 않았어.  기분이 나빠도 인간을 위협하는 행동은 하지 못해. 그런 결정을 내릴 이성적인 능력은 없으니까.  인간이 손을 뻗어 칩을 제거하면 언제든 사라질 수밖에 없다고." (p.74)  이렇게 엄마는 이야기했지만, 로봇을 만드는 민박사님은 감정을 가진 로봇은 이제 로봇이 아니라고 이야기를 하기 시작한다. 만들어지지 않았다면 모르겠지만, 만들어진 이상, 감정 로봇은 보호되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제대로된 사람만 이렇게 느끼는 것은 아니었다.  감정을 가진 로봇들 역시 숨죽이고 억제하고 있었다는 것을 그들은 조만간 알게 되어버린다.  그토록 최신사양이라면서 좋하하던 감정로봇이 자신의 감정을 드러냈을때, 사람들은 두려워하기 시작한다.  사람들은 이제 감정보다 이성을 더 중요시 하니까.  인간이 아닌 로봇이 드러내는 감정을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단 말인가?

 

 엄마 아빠가, 우리 사회가 원하는 완벽하게 맞춰진 아이들이 세상을 차지하고 살아간다면 세상은 생각대로 완벽해질까? 로 만들어진 <열 세번째 아이>는 완벽한 인간, 시우와 완벽한 로봇, 레오를 통해서 현 사회의 문제의식을 건드리고 있다.  어떤것이 가장 인간적인 것일까?  '인간은 생각하는 동물'이라고 이야기들을 한다.  그 생각은 감성과 이성 중 어느쪽에 더 비중을 두고 있을까? 점점 사회는 감성을 억제하고 이성을 중시하고 있지만, 그것이 인간적이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인간적인 로봇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닐까?  '로봇들은 주인이 시키는 대로 했어. 그래야 살 수 있으니까. 인간처럼, 인간과 같이 살 수 있으니까.  하지만 우리도 감정이 있어. 머리로 명령을 받아들이지만 가슴이 말을 듣지 않아.'(p.247).  아이들이 부모에게 말하고 있는 것처럼 들리는 이 문장을 읽으면서 지금 우리는 인간처럼 살고있는가에 대해서 깊게 고민해본다. 인간다움이 무엇일까 하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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