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림길 - 누구나 생애 한 번은 그 길에 선다
윌리엄 폴 영 지음, 이진 옮김 / 세계사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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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겠지만, 윌리엄 폴 영의 <오두막>을 읽은 이들은 <갈림길>을 망설임 없이 택했을 것이다.  오두막을 읽었을 땐, 내 세계만이 너무나 힘이들고 처절하게 무너진다고 느꼈을 당시였기에, 딸을 잃고 방황하는 맥은 내게 특별하게 다가왔었다.  맥과 함께 불켜진 오두막안으로 들어가서 차원분열도형을 너무나 좋아한다는 검은 여인을 만나고, 맥이 "주님...당신은 어디 계신가요? 네가 당신을 필요로 할 때는 한 번도 옆에 계시지 않는군요." 라고 외쳤던 모든 것은 내 속에서 사라지는 경험을 했었다. 나를 사랑하고 계신다고 맥을 통해서 이야기하고 계시는 삼위의 하나님을 만나면서 차원분열도형으로 되어있는 정원과 같은 정신없는 나 역시 귀한 존재라고 알려주시던 그 무언의 외침이 나를 흔들어 놓았었다.  그래서 <갈림길>을 선뜻 잡을 수 있었다.  '누구나 생애 한 번은 그 길에 선다'고 이야기를 하고 있는 <갈림길>에서 나는 누구를 만나고, 어떤 길을 택할지 궁금했다.

 

 

 어쩌면 이렇게 못된 사람이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도 시셋말로 보자면 성공한 삶이라고 여기는 40대의 사업가 앤서니 스펜서를 만났다.  협상의 귀재로 불리고 있고, 뛰어난 전략가로 존경과 두려움을 한 몸에 받고 있지만, 그에게 복종하는 인간들은 사랑받을 자격도, 존경받을 자격도 없다는게 그의 철학이다. 이 남자가 얼마나 사악한 사람인지는 두번의 결혼과 두번의 이혼만 보고도 알수 있다.  사랑해서 결혼을 했음에도 아내, 로리의 당담함이 싫었단다.  그래서 이혼후에 재결합을 하고 완벽하게 망가지고 자신에게 굴복하는 것을 보고 싶다는 갈망 하나로 재결합날 이혼을 하는 치밀함을 보여준다.  얻는것도 없으면서 그는 그랬다.  그렇게 로리와 사랑하는 딸, 앤젤라를 보내버렸다. 아무도 믿지 못하기에 혼자만의 비밀 장소를 만들고, 매일 매일 유언장을 바꾸는 것이 취미인 그가 어느 날 혼수상태에 빠지면서 <갈림길>은 시작된다.  

 

기분이 묘했다. 선택이 어떤 결과로 이어질지도 모르고 현재 자신이 어떤 상황에 처했는지조차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이런 결정을 해야 하다니. 그는 자신이 어디서 왔고, 또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했다.  그런데 이제 그의 선택이 어떤 결과로 이어질지, 어떤 대가를 치러야 할지 모르는 채 선택을 해야만 했다. (p.45)

 

 앤서니는 이제 자신이 알지 못했던 사람들을 만나기 시작한다. 너무나 허름한 곳에 있는 남자. 그곳에서 40년을 살았다고 이야기 하는 이 남자. 처음에 그는 몰랐다. “40년을 이곳에 사셨다고 하셨는데 너무 낡고 못쓰게 되었네요. 그동안 관리를 하셨는데도 이렇습니까?” “맞아요. 안 그래도 지금 손보는 중입니다. 시간은 좀 걸리겠지만 결국엔 잘될 겁니다.” (p.83) 예수라는 사람을 만나고, 성령이라고 소개되어지고 있는 할머니를 만나면서 앤서니(토니)는 또 다른 경험을 하기 시작한다.  오로지 영으로만 다른사람들에게 미끄러져 들어가는 경험.  영혼이 순수한 캐비에게 미끄러지면 토니는 처음으로 친구를 알게 된다.  그렇게 캐비를 거쳐 몰리와 클래런스에게 미끄러지면서 토니는 사람은 어떻게 살아야 할까를 생각하게 된다.  육은 없이 오리지 영만 있는 상태에서 말이다.   게다가, 예수와 성령 할머니가 토니에게 준 단 한번의 '치유의 능력'. 처음 만난 토니라면 두말할 필요 없이 자신을 구했을 것이다.  오로지 자신만 살면 되었던 남자, 무섭고 두렵운 삶일지라도 떨면서 은둔하면서 살면 되니까 말이다.

 

 윌리엄 폴 영은 토니가 바라보는 것을 함께 바라보게 만들면서, 토니 외부의 모습과 내면의 모습을 교차하면서 보여주고 있다.  처음, 토니가 보게되는 거칠고 다 망가진 집들과 정원이 조금씩 관리되어지는 모습들과 캐비에게서 느껴지는 사랑. 몰리에게서 느껴지는 캐비와 린지에 대한 절실함과 클래런스 장로에 대한 두근거림.  다른 이들의 심장소리가 들리고 그 느낌이 100% 전달된다면 어떨까?  토니는 그 모든것들은 그들과 함께 느끼면서 자신이 경험하지 못했던 것들을 경험하기 시작한다. “전 단지…… 죽음이 끝이기를 바랐던 것뿐이에요.”(p.119 ) 라고 이야기하던 토니에게 예수와 성령의 존재는 떨림으로 다가왔을지도 모른다.  아무것도 남지 않기에, 아니 이후의 삶이 없다고 믿었기에 그는 사람들을 미워하고 자기 자신을 증오할 수 있었다.  그에 내부에서 벌어지고 있는 작금의 사실들을 토니가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것은, 아니기를 그토록 바랐던 이유는 두려움 때문이었을 것이다. 

 

 “죽음이 끝이 아니라면 그동안 제가 저지른 짓들을 어떻게 만회할 수 있겠습니까? 어떻게 제 자신에게서 벗어날 수 있을까요? 당신이 하는 말이 진실이라면 제겐 희망이 없어요. 무슨 말인지 아시겠어요? 만약 죽음이 끝이 아니라면 제게 희망이 없다는 것이…….” (p.120)

 

 <갈림길>은 <오두막>보다 훨씬 다이나믹하다. 예수님과 성령님을 만나는 장면이나 토니가 캐비와 몰리의 영에 속하게 되는 과정들은 판타지적인 요소까지 포함하면서 읽는 이들의 접근을 용이하게 만들어 주고 있다.  믿지 않는 이들이 읽어도<갈림길>은 환상적인 이야기 속으로 빠져들게 만든다.  어찌보면 짐캐리 주연의 '브루스 올마이티'를 떠올리게 될 지도 모른다.  굉장히 재미있다.  순순한 캐비와 토니가 이야기 하는 장면도 그렇고, 사랑을 시작하는 몰리와 클래런스의 콩닥거리는 사랑을 몰래 보는 재미도 솔솔하다.  그와 함께 가족을 떠올리게 되면서 고양이에게 모든 재산을 상속한다는 토니의 유언장 사수 작전은 스릴러까지는 아니지만, 그들과 함께 올바른 유언장을 사수하기 위해서 뛰어다니는 경험까지 하게 만든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죽음 이후 아무것도 없다고 믿는 토니가 자신의 어머니가 그렇게도 믿었던 예수님을 알게 되고, 성령님에게 자신의 모든것을 내주는 것이다.   

 

  나의 삶을 내가 100% 주관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  매일 죽어가는 사람들도 있고, 죽음 직전에서 살아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런 일들이 우연에서 일어난 일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나는 알고 있다.  내가 99%의 길을 만들어 걷는다고 해도, 주님이 움직이시는 1%의 길로 내 길이 만들어 진다는 것을 말이다.  오늘 내 생명을 주님이 그의 나라로 데리고 가신다고 해도 나는 어쩔 수가 없다.  주님이 내게 주신것이니까 말이다.  <갈림길>은 색다른 이야기다.  육신이 움직이지 못하는 상태에서 토니는 영으로 주님을 만나고 영의 세계가 변화기 시작하면서 한번도 경험하지 못했던 것들을 경험하게 된다.  그러면서 그의 내면은 변화를 맞게 된다.  이게 가능할까라고 의문을 품을 수도 있지만, 왜 그런 의문을 <갈림길>에서 품어야 한단 말인가?  기욤뮈소의 판타지 소설속에서는 당연하게 '너머의 세계'나 '중간세계'를 받아들이면서 말이다.  얼마나 다행인가?  죽음이 끝이 아니라는 것.  부활의 주님이 첫열매가 되시는 부활절에 나는 토니의 삶의 변화를 이렇게 만나고, 죽음이후에 삶을 생각해본다.

 

진실을 구한다면 언젠가는 평화를 얻으리라.  평화를 구한다면 평화도, 진실도 얻지 못하리라.  아첨과 희망 사항만으로 시작한다면 모두 절망으로 끝나리라. - C.S. 루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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