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홉 개의 붓
구한나리 지음 / 문학수첩 / 2012년 6월
평점 :
절판


 몇 주전에 읽고는 잊고 있었다.  가독성이 뛰어나서 하루만에 다 읽고나서는 이 신예 작가에게 푹 빠져 있었는데, 다른 책을 넘기고 있자니 또 다른 내용에 빠져 버리기 일수다.  그렇게 잊고 있었는데, 자신과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싸움을 하는 책이 있었는데, 그게 뭐였더라 하는 생각이 드는게 아닌가?  한참을 생각한 끝에 <아홉개의 붓이> 떠올랐다. 그렇지?  그렇게 책 표지가 떠올랐고, 갈무리 해놨던 책의 내용들이 하나둘씩 떠오르기 시작했다.  곱게 한복을 입은 소녀가 그림을 그리고 있었는데, 이 소녀가 여간 이상한것이 아니다.  머리에 뿔이 있는 소녀.  뭘까?  그 소녀가 들고 있는 붓이 '아홉개의 붓'인가?  아니면 붓이 아홉개라는 말일까?  

 

 

바람과 물의 아이들이 자유로이 날개를 펼치며 하늘에 가까운 이들이므로 '천인'이라하고, 흙과 나무의 아이들이 낮은 곳을 즐기는 까닭에 '비인'이라 하고, 소와 불의 아이들이 가장 번성하여 그 수가 많았으므로 그들이 스스로를 '상인'이라 불렀다. (p.32)

 

 신화적인 요소가 훨씬 강한 나라가 '한'이 아닐까 생각이 든다.  <아홉개의 붓>의 배경은 한이다.  이 한을 만든 신적인 존재가 '아홉의 감'이다. 아홉 감은, 빛과 넋과 시간, 바람과 물, 흙과 나무, 쇠와 불의 감으로 표현이 되고 있다.  이 하늘 세상에 살던 감들이 혼돈의 세상을 하늘 세상과 닮은 모습으로 빚기로 마음먹고, 삼인(천인, 상인, 비인)을 만들어 현세로 보내는데, 세월이 흐르다 보니 이들의 모습이 지금의 세상과 비슷해 져 버렸다.  아무런 힘도 없던 상인의 수가 급속도로 늘어나면서, 그들은 하늘을 나는 천인은 신적인 존재로 생각을 하고, 함께 하지만 욕심 없는 비인은 낮게 여기고, 자신들의 노비나 가축쯤으로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런 세상에 한골이라는 작은 마을의 높은 어르신 류원은 17년 전에 맞아들여 키운 ‘갈’이라는 아이에게 아홉 감과 아홉 붓의 이야기를 들려주게된다.

 

감의 수와 똑같은 아홉 개의 붓을, 감들께서 인간들에게 내리셨단다.  천인에게 셋, 상인에게 셋, 비인에게 셋. 똑같이 그렇게 주셨단다. (p.28)

 

 상인과 비인 사이에서 태어난 상인들로부터 아버지와 어머니를 잃는 비극을 겪었지만, 갈은 류원의 호의아래 아가씨 소리를 들으면서 자랐다.  상인보다 오래 살수 있는 비인. 비인의 피를 받았기에 17세 소녀임에도 보통의 소녀티가 나지 않는 갈은 류원이 말한 '감'을 찾아 길을 떠나기 시작한다.  왜 갈일까? 그녀도 모르는 사이에 그녀가 '감'의 주인이었으니까.  그녀가 만든 붓으로 그린 그림은 향기가 났고, 실존하는 것이 되어버렸으니까 말이다.  게다가 천인인 이린이 갈의 뿔을 없애 주면서 갈은 상인 소년의 모습으로 세상으로 나아간다. 세계를 창조한 감(신)들은 자신의 힘을 아홉 붓에 나눠 두었고, 그것을 모두 모으게 되면 세상은 삼인이 모두 조화롭게 살 수 있게 된다고 류원은 말했다. 갈이 세상속으로 나가면서 갈과 함께 하기 시작하는 사람들이 생기기 시작한다.  약초를 쓸줄 아는 재찬, 비인이면서 피리로 물을 불러들일 수 있는 아리, 나무칼을 사용하는 시겸.  여러 형태의 모습을 가지고 있는 '붓'이 하나씩 갈에게 모여지기 시작한다.

 

 가독성도 좋고, 그리 두껍지도 않은데, 아홉개의 '붓'이야기가 설렁설렁 쓰여진 부분이 없다.  갈과 일행들이 들리는 곳마다 '붓'은 있었지만, 이 붓은 주인과 함께 사라지기도 하고 다시 만들어지기도 한다.  하지만, <아홉개의 붓>은 '붓'을 찾는 이야기가 아니다.  어느곳이든 그들이 가는 곳엔 천재가 만들어낸 삼인들이 살고 있었다.  그들의 삶은 모두 같았을까?  인간이 아니라고 믿어버리는 순간, 사람들은 잔인해 진다.  인간이 아닌이들로 인해 자신들이 살 수 없다고 믿게 되고, 그들이 벌인 일이 아니라도, 말 못하는 이들에게 덮어 씌여버리기도 한다.  소수의 약자에가 다수는 왜이렇게 악해지는걸까?  갈이 가는 모든 곳에 '비인'들은 숨죽이고 두건과 모자로 뿔을 가리고 있다.  물론 모두다 그런것은 아니다. '짚풀동자'라는 이름으로 불리면서 함께 공존하고 살아가는 곳도 있기는 하다.  눈살이 찌뿌려지기도 하고 미소가 머금기도 하는 곳들을 지나면서 갈의 일행들은 붓, 피리, 방울, 나무깎는 칼, 종, 도기, 뜨개바늘, 옥돌과 끊임없이 악인으로 여겨지게 만드는 '영암'의 옥달까지 모으게 된다.  

 

붓을 모으는 것이 무엇 때문이라고 생각했나? 그건 곧 삼인의 권력이야. 수단으로서 그만한 수단이 없지. (p.279)

 

 아홉개의 붓이 모여지면 아홉 감이 바라신 세상, 조화의 세상, 누구도 위에서 군림하지 않고 누구도 아래에서 고통 받지 않는 세상이 된다고 류원은 갈에게 분명 말했었다.  그랬기에 갈이 움직였고, 아리와 시겸이 함께 했었다. 이부명이 갈을 쫒으면서 이렇게 이야기하기 전까지 갈은 류원을 의심치 않았었다. 의심은 또 다른 의심을 품게 만들어 버린다.  어린 소녀가 의지하던 재찬이 천인인 '이진'이라는 사실을 아는 순간, 아니 류원과 함께 했던 이린의 동생이라는 것을 알게 되는 순간 갈이 품었던 생각은 어떤것이었을까?   '붓'을 찾으면서, 갈과 함께 하는 이들은 자신의 자아를 찾아가기 시작한다.  넋업사리를 선택하는 어린 소녀 아리도, 비인인지 상인인지 알 수 없었던 시겸도, 천인이면서 불량품이라 생각하는 재찬도 모두 진정한 자아를 찾아가면서 이들은 아홉 개의 붓을 다 모은다.  붓이 다 모이면 천지가 바뀐다고 생각을 했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세상은 이전과 똑같았다. 오로지 갈이 그렇게 믿고 따랐던 사람이 힘을 위해서 '붓'이 필요했음을 알게 될 뿐이었다.  

 

 붓이 무엇일까?  감이 만든 아홉개의 붓은 분명 세상에 존재했다.  갈이 만난 인물들은 뿔이 있던, 날개가 있던 모두 사람이었다.  '붓'은 그들의 삶에 이야기였다. 간절히 염원했을 때 만들어 진다는 '붓'.  자신의 욕심이 아닌 남을 위한 염원이 담겼을 때 '붓'은 향기를 내고 물을 모으고 소리를 냈다.  권력이 아닌, 사랑과 희생이 있을때만 움직이기 시작했다.  갈과 재찬, 아리와 시겸은 '붓'을 모으면서 그것을 알았을 것이다.  그들이 만들어 낸 '붓' 역시 그들만을 위한 것은 아니었으니까 말이다.  이제 또 다시 그들은 움직일것이다.  사라지는 '붓'과 다시 생겨나는 '붓'을 모으기 위해서가 아니라 살아있는 사람들, 서로 감싸주고 조화롭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만나기 위해서 움직일 것이다.  천인과 비인과 상인, 그리고 비인이면서 상인인 이들은 어쩌면 지금도 '붓'을 이야기 하면서 우리 주변에 있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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