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머의 세상
주원규 지음 / 새움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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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송국을 비롯해 몇군데 은행의 전산망이 해커에 의해서 뚫렸단다.  처음 보도된 바로는 북에서 일으킨 소동이라는 말들도 있었지만, 사실여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회사에서는 일이 너무 힘이드니 누군가의 입에서 '차라리 전쟁이나 났으면 좋겠다'는 말이 나왔었다.  그 말을 들으면서 '너머의 세상'이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지금 이순간이 힘들어서, 전쟁이라도 나면 이 상황을 회피할 수 있을것 같은 순간들이 있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나는 전쟁을 경험해 본적이 없다.  아니, 지진이나 해일도 경험해 본적이 없다.  내 주변에 있는 대부분의 내 또래의 사람들 역시 그런 경험은 전무하다.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은 책과 영화를 통해서 만났던 간접 경험이었고, 그런 경험들은 조금은 과장되게, 조금은 미화되어서 나오기 마련이다. '차라리 전쟁이나 났으면... 차라리 천재지변이나 났으면...'  만약, 이런 일이 일어난다면 나는 어떻게 할 수 있을까?

 

 

 여기 한 가족이 있다.   할아버지, 아빠, 엄마, 누나와 남동생. 가족 구성원만 보면 딱 좋네라는 말이 나와야 하는데, 이들의 면면을 들여다보면 어떻게 이럴 수 있을까 하는 말이 절로 나올만큼 지지리 가난하다는 표현이 딱들어 맞는다.  치매에 걸린 아버지를 모시고, 딸과 살던 현수(아빠)는 어린 아들, 우빈과 함께 살고 있는 지수(엄마)와 재혼을 한다. 말이 재혼이지, 식도 올리지 않고, 그저 같이 살 뿐이지만 말이다. 하루 종일 TV만 멍하니 바라보는 치매에 걸린 할아버지 인보, 그런 시아버지를 쪽방에 두고 문을 걸어 잠근 채 안쓰러운 마음으로 일을 나서는 엄마 지수, 본사의 느닷없는 계약 해지에 무기한 농성을 벌이고 있는 아빠 현수, 아빠의 빚을 갚고 자신의 학비를 마련하기 위해 마트의 파견 직원으로 일하는 큰딸 세영과 강남 8학군의 고등학교에 입학하면서 뜻하지 않게 겉돌게 된 아들 우빈.  이제 이들의 하루가 그려지기 시작한다.

 

 내일은 꼭 가족들이 다 모여야한다고 외치고 있는 지수지만 그녀는 알고 있었다. 모이기가 힘들다는 것을. 그래도 그녀는 끊임없이 가족들에게 전화를 하고 문자를 보낸다.  인보를 남겨두고 움직이지 못하는 정여사를 돌보기 위해 타워펠리스로 들어온 순간까지도 말이다.  우빈은 왜 자신이 석구와 함께 타워팰리스 B동 2001호 앞에 와있는지 알 수 없었다. 잭나이프를 가지고 있는 석구가 두려웠고, 어디까지 갈지 두려웠다.  '김숙자'라는 이름표가 달린 유니폼을 입고 있는 세영에게 보내는 김팀장의 미소는 다른것을 원하고 있었다. 원하는 것을 이루지 못했을 때 그의 돌변하는 표정이 세영은 싫었다.  느닷없는 계약 해지 속에서 현수는 그저 사장인 윤정우가 있는 20층까지 크레인을 타고 올라가는 길밖에 없었다.  그저 '간다'는 말만 할 수 있는 인보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가야만 했으니까.  오늘 그들에게 무슨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일까?  남들은 너무나 잘 살고 있는 것 같은데, 왜 이 가족은 갈데까지 가야만 하는 것일까?

 

피에타 - 자비를 베푸소서

 

 "차라리 이 세상이 무너져 버렸으면 좋겠어..." 를 외치고 싶을 정도로 끝없이 힘들고 어렵다고 생각이 드는 그때, 서울 강남 한복판에서 강도 9.0의 지진이 일어났다.  지진은 모두를 동등하게 만들어 버리는 마법을 펼쳐낸다. 크레인을 타고 올라가던 현수와 사장 윤정우의 위치가 동등해지고, 지수의 돌봄을 바라는 정여사와 지수가 똑같아 진다.  몸싸움 도중에 칼로 석구를 찌르고 미현을 구해낸 우빈과 미현이 같은 위치에 있게되고, 냉동고에 갇힌 세영과 세영을 갇아버린 김팀장도 동등해져 버린다.  심지어 치매에 걸린 인보와 인보를 이상한 눈으로 바라보던 버스안 승객들도 동일시되어 진다.  이제 이들에게는 신에게 '피에타'를 외칠 수 밖에 없고, 그저 살기 위해서 울부짖을 수 밖에 없게 된다.  사람의 힘으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순간이 다가왔을 때, 이들이 찾는 것은 무엇일까?

 

 현실속에서도 큰 사고가 일어날때면 휴대전화 사용량이 급격하게 늘어난다고 한다. 강도 9.0의 지진은 모든것을 바꿔놓아 버린다.  더구나 지진이 익숙하지 않은 나라에서 발생하는 재해는 익숙할 수도 없을 뿐더라 상상조차 못할 일일것이다.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는 상항에 처해져있고, 그 순간에 전화기를 들고 있다면 어떻게 할것인가?  가장 먼저 생각나는 이에게 전화를 하지 않을까?  애써 외면했던 전화기 속 이야기들이 가족들에게 들려오기 시작한다.  지수의 메시지가 보이고, 엄마의 목소리가, 아빠의 목소리가 미치도록 그리워지는 시간.  단 한마디라도 듣고 싶고, 이야기를 하고 싶어진다.  대구 지하철 사태때 가장 많은 휴대폰 메시지는 '사랑한다'는 말이었다고 한다.  누구에게 하는 말일까?  사랑을 전할 사람.  죽음이 눈 앞에 닥쳐있을 때 '사랑'을 꼭 전해야만 하는 사람들.

 

 찰나의 시간.  급작스럽게 일어난 일들은 그 일을 겪고 있는 사람들 조차도 상황을 설명할 수 없게 만들어 버린다.  무슨 이유로 건물이 무너지고, 다리가 끊어지고 불이나고 있는지.. 그저, 살아야겠다는 의지와 가족만이 생각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일것이다.  살아있다는 것 자체가 형벌인것처럼 느껴지던 현수의 가족에게 '피에타'를 외쳐야 하는 순간은 '피에타'와 함께 그 구원의 대상이 가족이길 바랐을지도 모른다.  할아버지 인보가 끊임없이 가고 싶어하는 곳.  그곳이 어디이든, 그들은 그곳으로 모일것이다. 가족이니까.   사람이 어찌할 수 없는 순간엔 서로가 살아있는 것 자체 만으로도 기쁨이니까 말이다.  더 이상 미워할 필요도 더 이상 원망할 필요도 아파할 필요도 없이,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그저 보고만 있어도 기쁜 게 가족이니까 말이다.  현실의 모든 괴로움을 보여주다 모두를 극한에 몰아 놓지만, 그러기에 <너머의 세상에서>현수의 가족에게 이야기하고 있는 '피에타'는 가족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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