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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존자
이창래 지음, 나중길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3년 1월
평점 :
처음은 가슴 아픈 전쟁에 대한 이야기였다. 준이라는 아이와 쌍둥이 동생. 이름 때문이었을까? 남자 아이가 그보다 어린 동생과 피난을 가고 있다고 생각을 했는데, 여자 아이다. 그것도 어린 아이다. 이 아이가 더 어린 쌍둥이 동생을 데리고 부산으로 가고 있었다. 어디서 얻었는지 알 수 없는 낡은 모포가 아이의 유일한 재산이었다. 무사히 피난을 떠나길 바랬지만, 그 또한 사치였을까? 아이에게서 동생들을 뺴앗아 가는 것은 운명이었을까? 필연이었을까? 아이에 눈에 다리가 잘린 남동생과 하반신이 사라져버린 여동생이 보이고 아이는 그져 살아 남기위해 움직인다. 그럼, 이 아이의 부모는 어떻게 되었을까? 교사였던 아버지. 사랑하는 어머니와 쌍둥이 언니, 오빠. 중간에 끼여있던 특별한 이 아이는 만나지 않아도, 보지 않아도 될 것들을 봤다. 폭격에 차안에 있던 언니와 엄마가 죽는 것을 봤고, 아버지가 죽는 것을 봤고, 오빠가 끌려가는 것을 봤다. 이제 이 아이에게 남는 것이 있을 수 있을까?

그랬다. 준의 이야기라고만 생각을 했었다. 어떻게 준이 미국으로 건너왔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경제적으로 성공한 것처럼 보이는 준을 만나면서 이제 편해졌을까를 생각했었다. 그런 그녀에게 8년 전 유럽으로 떠난 아들 니콜라스가 있단다. 그렇게 준의 이야기라고만 생각했던 이야기는 니콜라스를 찾기위해 준이 찾는 헥터와 누구인지 알 수 조차 없는 실비에 이야기를 들려주기 시작한다. 이렇게 이야기는 전쟁 고아가 되어 버린 준과 미군 병사 헥터 그리고 선교사 아내 실비의 이야기를 하나씩 풀어내기 시작한다. 과연 그들에겐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무엇때문에 전쟁 고아였던 준이 헥터를 찾고 있고, 헥터는 끊임없이 실비를 떠올리는 것일까? 그들의 이야기를 따라가야지만 전쟁을, 그 속에서 희생된 세 영혼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처음부터 준의 이야기는 알고 있었다. 그래서 어떻게 준이 고아가 되었는지 알고 있었다. 그리고 준이 마주치 미군을 따라 들어간 고아원은 새로운 세상을 보여줬다. 그 남자는 누구였을까? 전쟁을 경멸했던 아버지. 자신의 부재시에 일어난 아버지의 죽음. 왜 그의 어머니가 그를 그렇게 봤는지 모른다. 단지 그는 전쟁이 일던 곳으로 가야만 했다. 헥터라는 이름에 이남자는 분명 타고난 군인이었다. 하지만, 죽어가는 중국 소년의 눈동자는, 동료들의 죽음은 더 이상 볼 수가 없었다. 그렇게 그는 전사자 처리부대로 옮겨갔고, 그곳에서도 그는 있을수가 없었다. 우연히 알게 된 목사를 통해서 고아원으로 가던 길, 다 죽어가던 그 소녀는 그냥 그를 따라왔던 어린 아이였다. 그곳에 있던 한 여인을 만나기 전까지는 그의 삶은 그저 흘러가는 시간처럼 흘려보내기만 하면 되는 것 같았다. 선교사의 아내, 실비. 그녀의 부모님은 분명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선교사였는데, 그녀가 만나는 곳은 하나님만 전할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준의 이야기로 시작된 글은 헥터의 현재의 삶과 과거를 교차하면서 보여주기 시작한다. 헥터가 실비에게 연정을 느끼고, 그녀를 품는 이야기부터 준을 만나기 전까지의 그의 삶을 말이다. 헥터는 굉장히 잘생긴 남자로 나온다. 그덕에 헥터를 그냥 두는 사람이 없었다. 어린시절 부터 말이다. 그가 미국에서 준을 만나기 전까지의 삶을 보면 왜 그렇게 살고 있을까 싶을 정도로 안쓰럽게 보인다. 도라를 만나면서 이제 행복을 느끼기 시작하는 헥터앞에 준이 나타나면서 또 다시 그의 행복은 사라지는 것처럼 보였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아무것도 없는 그에게 그녀가 찾기를 원하는 아이, 니콜라스. 그아이를 만나야 할것 같았다. 하지만 니콜라스의 문제가 아니었다. 헥터와 준의 기억 속 교차점은 실비였다. 헥터가 사랑했던 여인, 실비. 그리고 준이 사랑했던 여인, 실비. 육체적인 사랑만이 사랑은 아니다. 그들의 사랑을 어떻게 표현해야할까?
부모의 죽음을 보고, 타락이라 정의한다면 타락이었을 길을 걸은 그녀는 겉으로 보기엔 완벽한 여인이었다. 그녀가 선교사의 아내가 되는것은 당연한 것처럼 보였다. 그렇게 그녀가 남편과 함께 한국으로 왔다. 고아원에 있던 모든 아이들이 그녀와 함께 하기를 원했고, 나이든 여자들은 그녀를 동경했었다. 그리고 그곳에 준도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아이들을 위해서만 살 수 있는 사람은 아니었다. 그녀의 삶은 준과 마찬가지로 보지 않아도 될 것들을 너무도 많이 만났으니 말이다. 영혼이 상처받은 세명의 이야기는 이렇게 끊임없이 씨실과 날실이 엮이는 것처럼 교차되면서 나온다. 한 사람의 현재의 모습뒤엔 다른이에 과거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고, 그 속에 또 다른 이들이 조금씩 겹쳐지면서 나오고 있다.
한국전쟁 당시 한 산골에 세워진 고아원과 1986년 미국을 배경으로 현재와 과거를 오가면 전쟁으로 인해 뒤얽힌 세 남녀의 삶을 이야기 하고 있는 <생존자>는 출판사의 말처럼 그들의 비극적인 삶과 슬픔, 인간의 가치를 말살하는 전쟁의 참상을 이야기하고 있다. 2010년 퍼블리셔츠 위클리 올해의 책, 2011년 풀리처상 후보작이며 데이턴 평화상 수상작인 <생존자>는 전쟁의 참상 속에서 엉망이 된 청춘들의 엉켜 버린 과거의 매듭을 풀어주고는 있다. 1965년 한국에서 태어난 이창래는 세 살 때 미국으로 이민해 현재까지 미국에서 활동하고 영어를 모국어로 쓰는 한국계 미국 작가다. 그의 다른 작품을 읽어 볼 기회가 없었다. 하지만, 600페이지가 넘는 쉽지 않은 <생존자>를 읽으면서 그가 써 내려가는 한국전쟁은 눈앞에서 바라보는 것처럼 무섭다. 조금도 덮어주거나 미화함없이 전쟁의 실상을 보여주고 있다. 누군가는 이야기를 한다. 이 글은 전쟁과 구원, 사랑과 용서, 숭고한 희생을 이야기하고 있다고 말이다. 사실 모르겠다. 어렵기도 하지만, 두려움이 앞서서 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준이 느끼는 굶주림. 그것이 전쟁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은 나의 단순함 때문일까?
굶주림. 그것이 다시 준을 찾아왔다. 하지만 피난길에서 어머니와 언니 오빠, 그리고 쌍둥이 동생들과 함께 행렬에 파묻혀 가다가 결국은 혼자가 되었을 때 느낌 굶주림과 달리 이번에 찾아온 굶주림은 숨어 있는 망각의 천사, 죽음의 천사가 아니었다. (p.58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