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어머니의 모든 것
델핀 드 비강 지음, 권지현 옮김 / 문예중앙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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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엄마는 예순한 살에, 노부인이 되기 전에 세상을 떠났다.  엄마는 바람대로 세상을 떠났다.  살아 있을 떄 죽었다.  이제 나는 엄마의 용기에 감탄할 수 있다. (p.413)

 

 붉은 속지 때문인지, 겉표지가 강렬하게 다가왔다.  중간 중간 뚫린 표지 탓이겠지만, 표지 속 여인이 눈길을 사로 잡는다.  이 여인이 델핀 드 비강일까?  프랑스를 대표하는 여류작가라는 그녀의 글을 처음 만났다.  <내 아내의 모든 것>이라는 영화 제목 탓인지, 책을 읽고 있는데 딸 아이가 엄마가 외로운 이야기냐고 묻는다.  어머니로서가 아닌 한 여인의 어린 시절부터 죽음을 맞이한 순간까지, 아니 그 이후까지의 이야기를 <내 어머니의 모든 것>은 담고 있다.  노부인이 되기 전에 세상을 떠나 버린 엄마. 살아 있을 때 죽어버린 엄마.  그 엄마의 삶은 어땠을까? 

 

 

 조르주, 리안, 리스베트, 바르텔레미, 뤼실, 밀로, 앙토냉, 장 마르크, 쥐스틴, 비올레트, 그리고 톰까지 엄마의 가족은 참 많기도 많았다.  신화적인 이 대가족은 모든지 가능할 것 같은 외할아버지와 아름답고 밝은 외할머니 리안 그리고 부모를 닮아 예쁜 아이들로 넘쳐났다. 엄마는 조르주와 리안의 아홉 아이들 가운데 셋째였다.  아이를 좋아했던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  엄마의 가족들은 외모 덕분에 어디서나 주목을 받았고, 그 중에서 엄마, 뤼실은 특히 아름다웠고, 어린 시절엔 광고모델로 활동을 하면서 생활에 도움을 주는 착한 아이였다.  그런 엄마의 막내 동생이었던 여섯살 난 앙토냉이 우물에 빠져 죽으면서 조금씩 금이 가는 것 같이 보인다.  앙토냉의 죽음 이후 장 마르크가 입양되어 오지만, 이 아이 역시 열 다섯 살을 넘기지 못하고 죽고, 뤼실의 동생 밀로도 서른이 되기전에 자살을 한다.  가족들만의 일이라고 넘기기에는 엄마의 삶이 삐걱거리기 시작하는 것이 눈에 보이기 시작한다.  아니, 온 가족들이 삐걱거리기 시작한 것일지도 모른다.

 

난 무슨 상상을 했던 것일까?  객관적이고 전지전능한 서사를 통해 엄마의 어린 시절을 이야기할 수 있을 거라고? 내게 맡겨진 소재를 갖다 쓰기만 하면 된다고?  선택을, 말하자면 '작은거래'를 하기만 하면 된다고? 도대체 무슨 권리로? (p.42)

 

 엄마를 알기 위해서, 가족들을 찾아 다니면서 엄마에 '관한', 혹은 엄마의 '주변', 또는 엄마를 '시작'으로 하는것이 아닌 광활하고 어둡고 절망에 찬 땅 처럼 엄마가 느껴지면서 엄마를 보기 시작한다.  작가는 총 3부로 이야기를 분리하면서, 엄마의 어린시절, 결혼 후 아이들과 함께 한 시간, 생트 안느 병원과 엄마의 죽음직전까지의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다.  굉장히 따뜻한것 처럼 1부는 그려지고 있다.  조르주의 첫 광고회사 설립과 파산, 앙토냉의 출생과 같은 비극적인 '모뵈주 가' 마저도 가족의 애정이 결속되어 있고, 따뜻함이 넘쳐나는 것 처럼 그려주고 있다.  그렇게 끝없이 행복할 것 같은 곳에서 엄마는 왜 탈출을 하려고 했을까?  2부로 넘어가면서 엄마의 망상인지 아닌지 알 수 없는 이야기들이 펼쳐지기 시작한다.  근친상간, 자살, 정신질환과 같은 극단적인 이야기들이 나오지만, 그 속에 나오는 가족들은 침묵하고 외면해 버린다. 이것은 진실일까? 

 

 도대체 왜 뤼실은 정신을 놓은것일까?  정말 아버지에게 강간을 당한 것인지, 어렸을 때 겪은 형제들의 죽음과 사고사와 자살로 영향을 받은 것인지 알수가 없다. 아니면 리안의 가족력이 뤼실에게 전해진 것일까?  작가 델핀 드 비강의 자전적 소설이라고 이야기를 하고 있다.  델핀 드 비강은 엄마에 대해 끊임없이 '왜'라는 물음을 던지고 있고, 그러기에 자살을 택한 엄마의 과거를 추적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옮긴이에 말 처럼 사람은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난 것이 아니라 선택의 여지없이 한 가족안에서 태어났고 좋든 싫든 평생 함께 살아가야 한다.(p.416) 원망하고 인연을 끊겠다 외쳐도 보지만, 결국 가족이기에 사랑하고 미워한다.  <내 어머니의 모든 것>은 가족이기에 아무일도 없었던 것처럼 넘어가야만 했던 이야기를, 웃어야 했던 이야기들을 풀어내고 있다.  가장 끈끈하기에 가장 아프게 하는 사람들, 가족.  아름답지만 절대 사라지지 않는 추락의 흔적을 가지고 있던 엄마, 뤼실.

 

 죽음 이후 남은 가족은 신화를 만들고 미화시킨다.  자식들을 방관한것 처럼 보이는 뤼실에 대해 비올레트가 '누가 뭐라 해도 언니 덕분에 너희들이 빨리 인생을 알게 된거야'(p.217)라고 말하는 것처럼 말이다.  정신질환으로 딸의 눈에 침을 놓겠다고 덤비던 엄마였지만, 엄마였기에 애틋하고 엄마였기에 오열을 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델핀 드 비강은 이야기한다.  왜 그녀가 엄마에 대한 이야기를 쓰는지.  읽으면서 이런 가족도 있구나 싶지만, 이게 가족이구나 하는 생각도 함께 들었다.  지극정성이신 내 어머니가 생각이 났고, 아직도 건강하신것에 감사를 드리게 되는 것은 나의 어머니는 뤼실같지 않아서가 아니다.  그저 엄마이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작가는 엄마에 대한 모든것을 찾고 엄마를 알아가면서 슬퍼하는 것보다는 가족의 일환으로서의 엄마와 가족의 모습을 보여주려고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나는 내 가족의 가장 즐거운 모습을, 소란스럽고 분에 넘치는 생명력을, 비극을 이겨내는 그 강한 힘을 읽게 하고 싶었다.  (p.1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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