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직한 책이다. 요즘은 워낙에 가벼운 종이를 사용해서 책이 무거운 건 아니다. 현실에서 가능한 이야기들, 주변에 있을 법한 그런 이야기들은 가슴을 짓누르고, <죽은 자들의 방>은 그런 이야기였기에 묵직하게 다가왔다. 책장 뒷편에 끼어있는 DVD속 피를 흘리고 있는 소녀의 모습이 눈에 들어오는 것은 보통의 책에서 느낄 수 없는 이질감 때문이었다. <멜로디의 미소>라고 타이틀을 달고 있는 DVD에는 '사건이 사건을 낳은 입체적 스릴러'라고 되고 있다. 영화를 편하게 보는 편이 아니라 커버 속 글들만 눈에 들어온다. 멜로디라는 아이에게 무슨 일이 이어난걸까? 알 수 없다. 첫장을 넘겨보자. 넘기는 순간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서 멈출 수가 없다. 텍스트를 읽어내려가는 속도가 책장을 넘기는 속도보다 빠르게 느껴진다. 그 다음 이야기가. 그 뒤를 이은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진다.

1987년 8월 프랑스 북부에 한 집에서 프롤로그가 시작된다. 채 아홉 살도 되지 않은 아이가 죽어버리고 싶다는 생각밖에 나지 않는 곳에 있다. 읽으면서 짐작을 하게 되는 이상한 상상속에 빠져들어가는 순간 작가는 17년 후에 극심한 경제 위기로 황폐해진 프랑스 북부의 모습을 눈앞에 펼쳐보여준다. 그리고 그곳에선 멜로디라는 시각장애를 가진 납치된 소녀에 이야기와 딸아이의 몸값을 가지고 가다 뺑소니범의 차에 치인 남자의 이야기가 다른 이야기인 듯 하나의 이야기가 되어 이어진다. 몸값이 담긴 돈 가방은 사라졌고, 소녀는 환한 미소를 띤 시체로 발견 되어지고, 소녀에게서 나온 유일한 단서는 목에서 발견된 늑대의 털 뿐이다. 이것으로 무엇을 알수 있을까? 분명 무슨일이 일어났을텐데, 알 수가 없다.
DVD의 표지에 쓰여진 '사건이 사건을 낳은 입체적 스릴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순간이다. 야수의 직감을 지닌 여형사 뤼시 엔벨. 쌍둥이 아이의 엄마로 우리 표현으론 조신할 것처럼 보이는 그녀는 알 수 없는 매력을 가진 여인이다. 보통의 사람들이 탐닉하지 않는 것을 탐닉하지만, 여성의 매력 또한 강한 인물. 다른 이들이 그냥 지나쳐 버린 것들이 뤼시에게 끝없이 말을 걸기 시작한다 '화면 속에서 웃고 있는 소녀, ..단정히 빗은 머리 모양, 하얀 구두, 붉은 리본 장식이 달린 베이지색 잠옷'(p.104) 책을 읽다 보니 70~80년대에 프랑스에서 유행한 '뷰티 이턴'이라는 인형이란다. 이 인형을 찾아봤는데, 나오지 않는걸 보면 뤼시의 말처럼 한때의 유행이었다가 사라졌나본데, 멜로디가 이 인형의 모습으로 발견되었다. 죽은 소녀를 인형처럼 보이게 하기 위해서 시체와 함께 있었던 괴물. 뤼시가 움직이면서 수사 중 아버지를 죽이고 몸값을 가로챈 자와 아이를 살해한 자가 전혀 다른 인물이라는 사실을 알아챈다.
낙서한 용의자들은 치밀하고 냉정했다. 낙서를 지우지 않았거나, 유리 파편을주워 담지 않았더라면 두 사건은 절대로 하나로 이어질 수 없었다. 용의자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단서를 남겼다. 완벽을 추구했다는 점, 그건 바로 그들이 남긴 표식과도 같은 증거였다.... (p.145)
이제 이야기는 맬로디가 괴물이라 칭했던 살인범들과 멜로디의 아버지를 죽인 뺑소니범들의 이야기 속으로 시나브로 들어가기 시작한다. 처음부터 뺑소니범들이 누구인지 작가 프랑크 틸리에는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괴물은 철처하게 숨겨두고 있다. 멀쩡한 사람들이 사람을 죽이고 돈의 유혹에 벋어나지 못하면서 또 다른 괴물이 되어 가는 모습은 오픈하여 보여주면서, 처음부터 멜로디에 의해서 괴물이라 불리어지고 있는 인물은 책의 후반부에 이루도록 드러내 놓지를 않고 있다. 아니 그 괴물이 혼자인지 아닌지조차 알수 없게 만들고 있다. 이야기의 중반은 다른 이들의 눈에는 보이지만 감지하지 못하고 있는 뺑소니범들, 비고와 실뱅에게 맞춰져 있다. 물욕으로 인해서 누가 누가 더 괴물이 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는 것처럼 보이고, 그 속에 그들을 지켜보던 또 다른 괴물이 비쳐지기 시작한다.
밤과 낮이 다른것 같은 인물, 뤼시 엔벨. 혼자서 온갖 범죄서를 탐닉하고, 연쇄 살인범의 심리를 익히던 말단 형사에게 찾아온 최악의 사건. <죽은 자들의 방>은 프랑크 틸리에가 '뤼시 형사' 시리즈의 서막을 연 작품이라고 한다. 이 사건을 통해서 말단의 뤼시는 누구도 눈치채지 못했던 사실들을 하나씩 찾아가면서 성장해 간다. 출판사에선 '선량한 신민과 절대악의 경계가 무너질 때, 지옥이 입을 벌린다'라는 표현을 쓰고 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지옥이라는 곳은 어떤 곳일까? 유황불이 일고, 끔찍한 고문 도구가 있다고 지옥이라는 표현을 하지는 않을 것이다. 선량함을 의심한적 없었고, 보통의 시민이라고 여겼던 사람들이 괴물이 되는 순간, 그 순간 그들은 지옥으로 들어가는 문턱에 서 있는 것이 아닐까? '고고한 프랑스 출판계'라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고고함이 어떤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알고 있는 프랑스 책들과는 확실히 다르다. 다른 책들과 비교한다는 것 자체가 우수운 이야기일지도 모르겠지만, 재미있다. 시간가는 줄 모르게 책장이 넘어갈 정도로 말이다.
뺑소니범들의 이야기로만 국한되어 있지는 않다. 멜로디의 죽음이후 또 다른 소녀가 납치되었고, 소녀 뿐 아니라 임신부까지 납치되는 사건이 발생 되면서 납치범들의 의도는 미궁속에 빠지게 되는데, 중간 중간 수의학과 함께 인체 해부학 이야기까지 다방면으로 나오고 있다. 그리고 그러한 사건들을 거치면서 뤼시는 더 많은 것을 알아가기 시작한다. 실업과 피폐해진 생활고 속에서 양심과 이성을 버린 사람들의 이야기와 함께 납치법들의 마음속 깊숙히 자리잡고 있던 트라우마는 책의 프롤로그를 다시 들여다 보게 만들어 버린다. 어린시절의 트라우마. 평생을 조여오는 고통이 사람이 변하게 하기도 하지만, 그 고통속에서 꽃을 피우는 사람들도 얼마나 많은가? 어떤것이 옳다 그르다를 판단할 수는 없지만, '절대악'으로 보여지던 것들의 저변은 가슴을 아프게 만든다. 사회가 할 수 있는 것을 저버렸을때 일어나는 결과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으니 말이다. 그 방관이 이루어낸것이 <죽은 자들의 방>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본다.
뤼시는 숨 쉬는 것조차 잊고 있었다. 형언할 수 없는 아름다움으로 가득찬, 죽은 자들의 방, 그 방은 가늠조차 불가능한 막대한 힘으로 뤼시의 머리를 지배했다. 방 안을 장악한 끔찍한 공포는 무시무시하다는 말의 의미를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었다. 눈앞에 펼쳐진 광경 앞에서는 꿈이라는 상상의 논리 체계도 무너지고 제아무리 끔찍한 악몽도 숙연해질 수밖에 없었다. (p.36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