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멘트
더글라스 케네디 지음, 조동섭 옮김 / 밝은세상 / 2011년 10월
평점 :
절판


'순간이 있다. 모든 걸 바꿀 수 있는 순간, 아무것도 바꿀 수 없는 순간, 우리 앞에 놓인 순간.  우리가 누구인지, 우리가 찾는 것이 무엇인지, 우리가 간절히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결코 얻을 수 없는 게 무엇인지 알려 주는 순간. 우리는 순간으로 부터 자유로울 수 있을까?' (p.592)

 

 다시 더글라스 케네디로 돌아왔다.  『파리 5구의 여인』을 읽으면서 더글라스 케네디가 새로운 시도를 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긴 했지만, 내가 원하던 그의 작품이 아니여서 였는지, 찜찜함이 계속 되었었는데, 그 전작, 『모멘트』를 읽으니 더글라스 케네디를 다시 만난 기분이 들었다.  이런 글을 원했다.  읽으면서 중간 중간 분명 반전이 있을꺼야를 되네이지만, 그 반전 뒤에 또 다른 이야기가 숨어있는 것.  그런 이야기가 케네디의 매력이다. 그리고 그런 이야기를 『모멘트』를 통해 다시 만났다.

 

 

 분단의 현실은 많은 것을 만들어 낸다.  어린시절 TV를 통해 보여진 '이산가족 찾기'라는 프로는 눈물샘을 자극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여전히 이산가족 상봉은 드문드문 행사처럼 이루어지고 있지만, 그 세대들에 기억의 소멸과 함께 분단의 현실 또한 담배 연기처럼 잊혀져가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분단이나 냉전이라는 말은 우리만의 이야기는 아니었다.  독일의 '통곡의 벽'이 무너지는 것을 바라보면서 이제 우리만 남았나를 생각하기도 했었지만, 베를린 장벽이라는 긴 벽을 사이에 두고 앉아있는 남녀의 이야기도 우리네 이야기만큼 많은 것을 담고 있을 것이다.  마주하지 못하는 연인들.  한권의 노트를 가지고 앉아있는 남자와 고개숙여 체념하 듯 있는 여자의 이야기, 그들이 들려주고자 하는 이야기는 무엇일까?

 

 소설이 소설이 아닐 때는? 작가의 체험담일 때이다. 작가 토마스.  그는 지금 심각한 인생의 위기를 맞고 있다.  아내, 잔은 이혼을 요구하고, 자신의 모든것인 딸, 캔디스는 남자친구와 결혼하겠다면서 아빠를 조여온다.  그리고 다락방에 처박아 놓았던 원고가 그에 앞에 놓여있다.  제목이 적혀 있어야 할 첫장이 공란으로 남겨져 있는 토마스의 이야기. 그의 시각으로 그려진 지금의 토마스가 있게 된 이야기.  그렇게 토마스는 20여년 전에 토마스가 되어버린다. 1984년 사랑을 회피하기 위해  베를린으로 온 스물여섯 살의 청년, 토마스. 그는 카페 이스탄블에서 본 전단지를 통해서 알스테어 피치몬스로스의 집에 기거하게 되고, 미국정부가 운영하는 국영방송국인 <라디오리버티>에서 프리랜서 작가로 일을 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곳에서 만난 번역가, 페트라 두스만.  그렇게 그의 삶이 바뀌기 시작한다. 

 

'내가 알던 삶이 방금 전에 완전히 바뀌었다.' (p.118)  

 

 사랑에 빠진 두 연인은 두 사람 사이에서 벌어진 모든 일에서 숨은 의미를 찾아내려 한다.  그가, 그녀가 나를 좋아하는 것일까?  그리고 그 모든 것이 사랑이라고 안 순간 부터 멈추질 못한다.  내 사랑만이 보이기 시작하고, 그의 모든것, 그녀의 모든것을 알고 싶어 한다. 동거인 알스테어가 흉기에 찔려 생사를 오고가는 와중에도 그들의 사랑은 멈추지 않는다.  이성간의 사랑만 사랑이라고 할 수는 없다.  알스테어와 메메트의 사랑 역시 조마조마하게 보여지고, 페트라의 모든 것을 알고 싶어 하는 토마스에게 페트라는 자신을 보여주기 시작한다.  이제 페트라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사랑없는 결혼, 사랑없이 태어났어도 사랑할 수 밖에 없는 아이, 요한.  그녀의 남편이었던 유르겐의 자살과 그녀가 비밀경찰에 끌려가면서 요한이 비밀경찰에 입양되어진 사실.  그녀를 고발한 친구, 주디트.  그녀를 사랑하기에 요한의 사진을 찾기위해 토마스는 베를린 장벽을 넘을 수 있었다.  오직 사랑하나만으로.

 

 이제 두 사람 사이는 거리낌이 없을 것 같았다. 그저 사랑만 하면 되는 줄 알았다.  프랑스로 가서 그들의 아이를 낳고, 행복하기만 하면 되는지 알았다.  그래야만 하는데, 절절한 사랑은 왜 이리도 아프게 다가오는 것일까?  믿었던 그녀가 그녀의 모습이 아니란다. 그녀가 그를 속였단다.  왜 첩보원인 부블리스크의 말만을 들었을까?  "토마스, 내 사랑은 당신이야. 내가 다 설명할 테니....", "제발, 제발, 나에게 말할 기회를..."(p.413) 그녀의 말이 들리지 않았다.  자신의 자존심이 상했다는 것이 모든 생각을 막아버렸다.  그녀를 위해 죽을 각오로 베를린 장벽을 넘었는데, 그것 조차도 거짓이었단다.  그녀의 모든것이 거짓이었단다. 분단된 베를린처럼 죽어도 떨어질 수 없을 것 같은 그들의 사랑이 그렇게 갈라져 버렸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그의 앞에 요한으로 부터 소포가 전혀져 온다.  그녀가 가슴아프게 사랑했던 그녀의 아들로 부터.

 

 사랑에 빠진 청춘은 너무나 뜨거워서 앞뒤 분간을 못할 때가 얼마나 많은가?  그 시절에는 알지 못했던 사실들이 조금만 뒤에서 바라보면 보여지는데, 사랑은 이성을 마비시키고 그저 사랑이라는 감성에 휩쓸려 쓸려나가는 것처럼 가장 행복할 수 있는 그 순간 그 행복을 스스로 망쳐버린다. 토 마스와 페트라의 사랑이야기와 분단과 냉전으로 상징되는 비극의 역사가 동일한 분량으로 『모멘트』는 그려지고 있다.  통일이 된 독일처럼 토마스와 페트라 역시 그러길 읽는 독자는 바라지만, 시간의 장벽은 물리적인 장벽과 다르다는 것을 알고 있다.  요한에게서 온 소포 속 이야기는 또 다른 이야기를 풀어내면서 더글라스 케네디는 이야기를 풀어내기 시작한다. '그때 페트라와 헤어지지 않았더라면 얼마나 행복했을까?' 그의 생에 단 한번뿐이었던 진정한 사랑을 만나고도 끝내 잃어버리게 된 것 자존심 때문이었지만, 그러기에 지금 그가 할 수 있는 말은 이것 뿐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완성.  인생에서 '완성'될 수 있는 게 과연 있을까?  아니면 그저 잃어버린 것과 우연히 마주치는 게 인생의 전부일까? (p.590)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