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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마 백만장자 삐삐 ㅣ 시공주니어 문고 2단계 16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지음, 햇살과나무꾼 옮김, 롤프 레티시 그림 / 시공주니어 / 2000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삐삐를 부르는 화난 목소리 / 삐삐를 부르는 상냥한 소리 / 삐삐를 부르는 다정한 소리 / 삐삐를 부르는 산울림 소리 / 들쑥날쑥 오르락내리락 요리조리 팔딱팔딱 / 산장을 뒤흔드는 개구장이들 / 귀여운 말괄량이 삐~삐 / 어제도 말썽 그제도 말썽 / 오늘은 어떤 일을 할까요 / 귀여운 말괄량이 삐~삐 / 귀여운 말괄량이 삐삐 삐삐
글을 읽으면서 노래를 부르고 있다면 어린시절에 삐삐에 빠졌던 분이다. 어린시절 삐삐는 동경의 대상이었다. 금화가 잔뜩들어있는 가방을 한손으로 쑥 들어서 옷장 위로 툭 던져놓고, 옆집에 사는 아나카와 토미가 경험해 볼 수 조차 없는 모험을 하는 주근깨 투성이에 빨간 머리 소녀. 못된 어른들에게는 당당하고 혼자 살면서 원숭이 닐슨씨와 쿠키도 굽고 요리도 만들어 먹고, 자고 싶으면 자고, 놀고 싶으면 노는 삐삐의 모습이 얼마나 멋졌는지 모른다. 거기에 아빠는 해적에 식인종의 왕이란다. 어린시절 동생과 입벌리고 TV속으로 빠져들게 하는 모든 것을 삐삐는 모두 가지고 있었다. 남동생과 함께 삐삐를 보면서 어디서 들었는지 삐삐역을 맡은 잉거닐슨을 남자아이가 여자아이 분장을 해서 저렇게 날아다닌다는 이야기를 했었고, 동생을 그 사실을 그대로 믿었었던 기억이 난다. 사실 몇해전에 잉거닐슨의 현재 모습을 보고 여자였구나 하고 웃었던 기억이 난다.

"난 삐삐로타 델리카테사 위도셰이드 맥크렐민트 에프레임즈 도우터 롱스타킹이에요. 예전엔 바다의 무법자였고, 지금은 식인종의 왕인 에프레임 롱스타킹 선장의 딸이죠. 하지만 다들 삐삐라고 해요." (p.11)
신기한 경험이었다. 책을 읽으면서 삐삐의 TV속 목소리가 자동으로 들려오는 것이 아닌가? 그 만큼 삐삐는 내 어린시절을 함께 했었다. 어린이 극이라고만 생각을 했었지, 삐삐가 책으로 나왔다는 것을 몇해전에야 알았다. 큰아이 문고책 중에 '삐삐롱 스타킹'이 들어있는 걸 보고 어찌나 반가웠는지 모른다. 그렇게 찾다보니 '삐삐롱 스타킹' 이야기가 굉장한 시리즈 물인 걸 알았다. 몇해전에 삐삐이야기의 시작인 <내 이름은 삐삐롱 스타킹>을 읽었었는데, 리뷰를 썼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리고 요즘 만난 책은 <꼬마 백만 장자 삐삐>다. 삐삐가 백만장자라는 것은 1편을 통해서 벌써 알고 있었다. 아니, 책으로 만나기 전부터 삐삐는 어린시절 잔상으로 남아있었다. 뒤죽박죽 별장에 닐슨씨와 말과 함께 사는 꼮꼭 땋아 양쪽으로 쫙 뻗친 빨간 머리를 하고 커다란 입과 깨소금을 살살 뿌려 놓은 듯한 주근꺠, 그리고 짝짝이 긴 양말을 신고 있는 아이.
엄마랑 아빠가 없지만 혼자서도 씩씩하고 즐겁게 살아가는 아이. 도둑들이 들어닥쳐도 눈 하나 깜짝 하지 않고 춤까지 함께 추며 놀기도 하고, 으스대기 좋아하고 마음씩 나쁜 어른들을 혼내 주는 아이. 힘세고 용감할 뿐만 아니라 요리도 청소도 잘하는 아이가 삐삐다. 물론 삐삐만의 방식으로 말이다. 청소할 땐 온 거실에 물을 휙 뿌리면 끝이고, 요리를 해서 못 먹으면 다시 만들면 되고. 코파기(구구단)를 하는 학교에 다니지 않아서 글씨는 제대로 못 쓰지만, 누구도 듣도 보도 못한 신기한 이야기를 아주 많이 알고 있고, 상상력이 풍부해서 척척 지어내면서 친구들의 눈을 동그랗게 뜨게 만드는 아이가 삐삐다. 아이들이 꿈꿀 법한 일들을 멋지게 해 내고, 선생님이나 부모님한테 혼날까 봐 엄두도 내지 못하는 기발한 행동도 거침없이 한다. 이런 삐삐를 좋아하지 않을 수가 있을까?
친구들에게 사탕을 사 줄때도 삐삐는 한 두개를 사주지 않는다. 가게 안의 사탕을 몽땅 사기 위해, 장난감 가게의 장난감들을 친구들에게 모두 나눠주기 위해서 삐삐의 주머니에선 아낌없이 금화가 나온다. 장터에서 연극을 볼때는 '한쪽 눈으로만 보겟다고 약속하면, 반값에 들어갈 수 있어요'(p.98)처럼 삐삐만이 할수 있는 말들을 하고, 우리를 탈출한 호랑이를 고양이 다루듯 하고 못된 어른은 공중으로 던져 버린다. 이 멋진 삐삐에게 오래 전 바다에서 파도에 떠밀려 사라졌던 삐삐의 아빠가 뒤죽박죽 별장으로 찾아왔다. 삐삐가 이야기 한것처럼 식인종의 왕이 되어 에프레임 롱스타킹 선장님이 찾아오셨다. 아빠가 찾아오셨으니 너무나도 신이나는데, 토미와 아나카는 아닌가 보다. 이제 삐삐는 아빠와 함께 식인종 나라의 공주가 되기 위해서 아이들을 떠나야 할 준비를 하니 말이다. 삐삐의 송별회를 위한 파티에 모인 친구들. 어떻게 삐삐를 보낼 수 있을까?
삐삐 시리즈는 굉장히 많이 반영이 되었던 것 같다. 책을 읽으면서 이 모든 내용들이 떠올려지는 것을 보면 어린시절에 TV를 통해서 봤던 것만 같으니 말이다. 이 책이 처음으로 출간되던 1945년. 그때까지의 동화에 대한 상식을 뒤엎는 내용에 여러 출판사에서 난색을 표했으며 출간되고 나서도 많은 어른들을 화나게 했다고 한다. 하지만 어린이들에게 열렬한 사랑을 받는 데야 어쩔 수 있겠는가? 수 십 년 동안 삐삐의 이야기는 전 세계에서 번역되었으며 영화나 TV시리즈로 만들어졌다. 이제 삐삐 롱스타킹 시리즈는 어린이 책의 고전이 되었다. 삐삐를잊지 못하는 나같은 어른들과 아이들을 만나게 해 주는 즐거운 책,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여사가 선사한 삐삐 시리즈는 추억과 함께 아이와 공유가 가능한 너무나 사랑스런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