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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우한테 잘해줘 ㅣ 자음과모음 청소년문학 23
박영란 지음 / 자음과모음 / 2012년 9월
평점 :
절판
녀석이 보낸 마지막 문자는 '영우한테 잘해줘'였다. '영우'가 누굴까? 녀석이 자살하기 직전에 그런 문자를 보냈으니, '영우'는 녀석도 알고 나도 아는 누구일 것이다. 학원가를 떠들썩하게 만들어버린 그 사건. 하지만 영우라니, 아무리 생각해도 알 수 없다. (p.7)

시작부터 강하다. 녀석이 자살하기 직전에 보낸 문자 '영우한테 잘해줘'. 녀석이 누군인지, 내가 누군인지조차 나타나 있지 않다. 이름을 이야기한것을 보면 문명 둘다 아는 아이일텐데, 영우라는 아이가 아무리 생각해도 알수가 없단다. 떠오르는 건 녀석과 관련이 있었던 사건. 학원가를 떠들썩하게 만들어 버린 그 사건과 관련이 된 인물일까? 학원가를 들썩이게 했던 사건에서 생각나는 이름은 '다솜'이가 전부인것 같은데 녀석이 이야기하는 '영우'는 누구일까?
딸 아이가 6학년이다. 이제 나도 슬슬 준비를 해야한다. 중학생 학부모들이 서슴없이 이야기하는 말들이 있다. '교복을 입는 순간, 아.이.들.이.미.쳤.다'. 미친 중학생이 되기전에 아이와 더 살갑게 부디낄려고 하는데, 쉽지가 않다. 그리고 지금 내가 만난 아이들은 분명 미친 중학생이지만 겉으로 보기엔 공부에 모든 것을 걸고 있는 그런 아이들이다. 과고를 목표로 달리는 아이들 속에 그.녀.석.들 이 있었다. 자이언트라 불리는 녀석. 골치 아픈 건 딱 질색이라는 엄마가 인공수정으로 낳은 키메라라고 생각하는 녀석. 죽은 쌍둥이 형만큼 자신을 괴상한 생물체, 괴물이라고 생각하지만, 학원가의 '신'이 되어버린 아이. 매번 같은 것을 보면 '신'이 될 수 밖에 없다고 이야기하는 아이. 그리고 아버지를 생각하면 무기력 상태에 빠져버리는 아이. 떠올리기도 전에 좌절시키는 한때 불법 체류자였던 남자. 그 신분을 벗어나기 위해 엄마와 결혼했다고 밖에 생각할 수 없는 그 남자가 아버지인 아이는 할 줄 아는게 공부밖에 없었다. 그래야만 누구도 자신의 존재를 모를것 같았다. 자이언트에게서 꼬마라 불리는 그 아이는 말이다.

이 두아이가 서로 죽이 맞는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미친 듯이 아니라, 진짜 미쳐! 숨이 꼴딱 넘어가기 직전까지 책을 들이파라고. 거기 뭐가 있나 보라고! 그렇게 해보지 못한 놈의 인생과, 거기 뭐가 있는지 목격한 놈의 인생이 같을 것 같냐? 한 번 해봐.! 그 경험, 어떤 건지 궁금하지도 않냐?'(p.139) 라고 외치는 강과의 외침을 아이들은 아무런 이의를 제기하지도 않고 받아들인다. 그렇게 과학올림피아드와 과고 만을 목표로 아이들은 달렸다. 하지만, 아무리 공부만 한다고 해도 역시 아이들이다. 아이들의 세계에. 그것도 중2병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왕성한 에너지를 어디에 써야 할지 주체못하는 아이들에게 학원의 강의실은 너무나 좁은 공간이였을 것이다. 몇 년째 학원가의 터줏대감으로 막강한 수상 실적과 집안 배경 덕에 ‘신족’으로 분류되며 다니고 있는 자이언트 코끼리와 혼혈아로 태어난 자신에 대해서도 부정하고픈 아픔을 감추고 있는 꼬마. 자이언트 코끼리에게서 보여지는 절대 고독도 그 때문이었을지 모른다.
매냥 똑같은 날인 것 같던 어느날, 저녁시간이 유일한 낙이었고 자유시간이었던 올림피아반 아이들 열 명은 서점에서 지구과학 교재를 슬쩍해오면서 느껴보지 못했던 짜릿함을 느낀다. 카이스트를 졸업하고 다시 학원가로 돌아와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는 일류 강사 강과를 보며 결국 자신이 힘들여 하는 공부의 종착지가 학원 강사일지도 모른다는 자괴감에 빠진 아이들에게 도둑질은 짜릿한 일탈이었다. 그렇게 아이들은 저녁식사 후 문구점을 편의점을 돌기 시작한다. 일탈은 작은 일탈로 끝나야만 했었다. 일탈이 너무 오래가면 문제가 생기기 마련이고, 도둑질을 그만두겠다는 아이들과 짜릿함을 포기할 수 없는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분리가 되어버린다. 좁은 강의실에 흐르는 냉냉함. 누군가 툭하고 건드리면 터져버릴것 같은 침묵. 그리고 그일이 터져버렸다. 어느 사건에서나 자이언트가 지목되어지는 건, 그 녀석의 이력때문이었다. 학원가의 신족. 그녀석의 일탈은 처음이 아니었었단다. 그래도 이젠 아닌데, 자인언트의 덩치는 한번 본 사람들의 뇌리에서 잊혀지질 않는지 모두 녀석을 지목하고, 하지도 않은 녀석을 위해 녀석에 아버지가 나선다. 그게 다였다면 그냥 지나갔을까? U학원 옥상에서 여학생이 떨어지던 날 왜 사람들은 녀석을 지목했을까? 단지 녀석이 그곳에 있었다는 이유로...
이야기가 그것 뿐이었나? 열 넷, 열 다섯, 참 어린 나이인데, 이 아이들의 삶의 무게가 가볍지가 않다. 학원을 보내기 위해 늦은 밤까지 일을 하는 엄마가 있는 아이도 있고, 아이만 두고 몇달씩 해외 여행을 떠나는 엄마도 있다. 올림피아드를 거쳐 과고를 가고 카이스트를 갔다 학원가로 돌아온 강과도 있다. 강과의 꿈인 '여행자를 위한 여관'을 들으면서 아이들은 잠시 푸른 바다를 꿈꾸고 여유를 부려보기도 하지만, 또다시 일상으로 돌아온다. 묶여있었던 이야기들을 작가는 슬쩍 슬쩍 풀어주면서 다시 또 묶어버린다. 아버지의 존재를 부정하려던 아이는 '엄마는 아버지가 남자로 보이더라고 했다. 까무잡잡하고, 왜소하고, 눈만 커다란 필리핀 남자가 어느 날 사람으로 보여서 결혼했다고 했다'(p.244) 라는 엄마의 말에서 이제사 아버지를 엄마가 사랑한 남자로 인식을 하면서 아버지를 창피해하지 않는다. 그저 친구와 나누었던 말일뿐이지만, 아이들은 잊지않고 그 답을 하기도 한다. 시간이 지나 스치듯 하는 이야기. "영우한테 잘해줘". 누구의 인생이든 그 시기만큼 힘든 것은 없다. 시간이 지나면 해결이 된다고 하지만, 그 시간이 얼마나 짧은지 그 당시에는 알지 못한다. 중3. 아이들은 미래를 꿈꾸지만, 그 꿈이 막혀 버릴때도 있다. 하지만 그래도 아이들은 자란다. 그렇게 자라고 성장한다. 중3이 인생의 전부는 아니니까 말이다.
‘인생’, ‘꿈’ 이런 단어들은 너무 적나라하게 쓰면 뭔가 분위기가 없지 않냐? 은유가 있어야지. 감추는 듯, 속사정이나 숨겨진 의미가 있는 듯, 그런 이름으로. (p.26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