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쾌자풍 1 - 쾌자 입은 포졸이 대륙에 불러일으킨 거대한 바람 ㅣ 쾌자풍 1
이우혁 지음 / 해냄 / 2012년 8월
평점 :
절판
단 한사람의 사고방식일지라도, 그것이 굳건하고 지속적이면, 이는 주변 모두에게 영향을 끼칠 수 있다. 나아가서는 그것이 아주 큰일을 뒤집거나 역사의 흐름을 바꾸는 경우도 아주 드물지는 않다. 많은 경우 그런 주인공들은 위인이 되지만, 이름도 남지 않고 심지어는 자기 스스로도 그런 주인공인지 모르는 채 이런 역사의 격랑을 만들어내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p.220

그런 사람 한번 만나보려고 한다. 자기 스스로도 그런 주인공인지 모르는 채 역사의 격량을 만들어 내고 있는 사람. 알다가도 모르겠는데, 뭐 이런 사람이 있어 하다가도 킥킥거리게 만들어 버리는 그런 사람을 말이다. 하이텔과 나우누리가 컴퓨터를 다루는 최고의 방법이라고 알고 있었을 때가 있었다. 스무살에 직장에 들어가서 간간히 만나는 인터넷이라는 별세계는 그전까지 만나지 못했던 새로움을 폭포처럼 쏟아냈고, 그 속엔 인터넷 소설이라는 새로운 장르가 있었다. <퇴마록>은 그렇게 만났었다. 밤을 새워서 읽었고, 그 속에 빠졌었다. 무협지를 어렸을때도 좋아했지만, 퇴마라는 새로운 이야기는 어린시절의 호기심을 충족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그렇게 이우혁을 만났었고, 강산이 몇번을 바뀌고 난 지금 또 다시 나는 그의 새로운 이야기를 만났다. 쾌자 입은 포졸이 대륙에 불러일으킨 거대한 바람이라는 『쾌자풍』을 말이다.
이야기의 시작은 명나라 고위 관료의 연쇄 살인사건이었다. 무림에서 명성을 날리는 남궁가의 손자 남궁수와 공동파에서 무공을 익힌 엽호가 세 번째 살인사건현장에 투입되고, 황제 직속 기관인 동창의 제독동창은 그들에게 살인현장에서 나온 흑모에 관련된 단서를 찾으라는 명을 내리게 된다. 그렇게 그들은 조선으로 향한다. 남궁가의 도련님과 무공의 대가, 그리고 남궁가의 노복, 아칠이 함께 말이다. 꽤나 멋진 조합으로 보이지만 속으로 들어가 보면 이런 코미디가 없다. 도련님이 음식을 만드는 것도 법도에 맞지 않는 것도 하실수 없다며 음식을 하는 아칠의 솜씨가 도저히 먹을 수가 없으니, 도련님도 도련님의 사형도 쫄쫄 굶기만 한다. 아칠이라는 노복의 무공이 상당하니 그를 떨쳐낼 수도 없고, 욕이란 욕은 다하고, 어떻게 하면 아칠을 죽일수 있을까 하는 생각만 하는 두 밀사. 이를 어찌해야할까?
이제 북쪽 변방 지역, 의주 위화 마을로 가보자. <삼국지통속여의>와<수호지연의>를 이야기꾼에게 들으면서 영웅을 꿈꾸는 남자,포졸 지종희. 고을 이방인 형 지두희에게 매번 혼나고, 아침마다 문틀에 머리 박고, 형과의 힘겨루기에서 한번도 이기지 못하는 이 남자는 쾌자 자락을 휘날리며 전립을 비뚜름하게 쓰고 육모곤을 어깨에 걸쳐 멘 채 압록강 너머 국경 근처, 난전으로만 가면 두령이 되어버린다. 여진말도 중국말도 조금씩은 할수 있는 이 남자. 묘하다. 그리 썩 잘하는 것은 없는데 난전을 드나드는 여진족들도 명국 상인들도 조선병사들도 의형제라며 그의 말이면 죽는 시늉까지 하니 말이다.
드디어 이들이 만났다. 조선으로 가야만 하는 남궁수와 엽호. 말도 안되게 조선말을 배운 아칠 덕분에 된통 호되게 지종희에게 얻어맞고 끼니나 해결할 생각으로 들어간 난전에서도 죽어라 또 맞는다. 조선은 동방예의지국이라 하던데, 그냥 들려오는 말이었는지, 여기저기 때리는 사람이 너무 많다. 무공을 배웠건만 어떻게 쓰기도 전에 맞은데 또 맞는다. 이들이 명나라 임금의 직속 기관인 동창에서 명을 받은 인물들이 맞는지 의심 스러워진다. 아니, 비급이 있어 살인사건에서 혈국(血菊)을 찾아냈던 그 명민한 인물들이 맞을까? 책장을 펼치지 마자 보았던 명민하고 의협심강한 두명의 무인은 책장을 넘길수록 어디에서도 찾을 수가 없다. 배가고프니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조선 성종, 1490년대를 배경으로 이야기를 펼쳐나가지만, 역사적 사실이 주류로 흘러나오지는 않는다. 아니, 아직 이야기가 덜 펼쳐져서 일지는 모르겠지만, 무림의 인물들이 나옴에도 무협소설 같지도 않다. 물론, 중국의 '탈문지변'등의 이야기를 들려주고는 있다. 하지만, 이우혁 작가가 이야기하는 것은 이런 역사적인 이야기보다는 지종희라는 포졸과 함께 어우르는 재미다. 똑똑한 것도 특출나게 강하지도 않은 인물. 뻔뻔하고 비겁하고 탐욕스럽고 거짓말도 밥먹듯 하는데, 이 인물이 묘하게 끌린다. 그의 신조가 형과의 약속, '사람으로서 선을 넘지 않는다'라고 하지만, 이게 선을 넘지 않은 건가 싶을 정도로 지멋데로이다. 그는 장난이라 하지만, 도저히 저게 장난일까 싶을 정도로 경노사상도 없고, 여인에 대한 예우도 없다. 물론, 책속에 나오는 노인이라는 인물, 아칠도, 나하추의 공주, 걸우추란티무르도 보통사람 같지 않긴 마찬가지지만 말이다.
이우혁 작가의 소설들은 재미있다. 오래전 만났던 <퇴마록>을 시작으로 그의 작품중에서 재미가 빠진 이야기는 없었다. 그러기에 술술 넘어간다. 주민이 거주하지 않는 기이한 공백지 형태로 남아있던 압록강 건너 옛 사군 지역. 이곳의 난전을 휘젓는 훤칠한 키와 제법 잘생긴 얼굴에 흑백으로 어우러진 쾌자 자락이 미끈한 포졸 지종희가 있었다. 그리고 그와 만난 인물들이 있었다. 지종희와 이우혁 작가가 어떤 이야기를 펼쳐낼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기대해본다. 포졸이라는 말단 관원이 대륙에 불러일으킬 거대한 바람을 말이다. 대륙이 난전 같지는 않을테지만, 그의 뻔뻔함이라면 뭔가 일을 내고도 남을 듯 하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