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담 : 두 번째 아이는 사라진다 문학동네 청소년 13
방미진 지음 / 문학동네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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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디선가 한번 쯤 들어보았을 듯 한 이야기다.  어째서 괴담속에 나오는 공부 잘하는 아이들은 꼭 한 교실에 남아서 공부를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오밤에 끝까지 남아서 공부를 하던 아이들이 하나씩 사라지곤 하는 이야기들은 입시라는 틀속에서 한줄기 빛이 었을지도 모른다.  무서우니 얼릉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고 싶었으니까.   정류장에서부터 십 분 정도 거리의 오르막인 '언덕', 길지는 않지만 경사가 가팔라 가장 힘든 '절벽' 이라고 표현이 되어지는 학교가 나온다.  내가 다니던 학교를 모델로 따왔나 싶을 정도로 고등학교의 모습이 닮아 있다.  인왕산을 배경으로 그림처럼 산등성에 있던 학교는 꽃다운 여고생들에게 튼실한 무다리를 선사해 줬었는데 하는 생각을 하니 풋하고 웃음이 나온다.

 

 

 올 초에 강풀 만화 중 <조명가게>라는 작품을 읽은 적이 있었다.  에피소드 중 하나가 사라지는 아이들 이었다. 아이들이 하나씩 사라지는데, 사라진 아이를 아무도 기억하지 못한다.  분명 누군가 있었던 것 같은데, 누군지 생각이 나지 않고, 처음부터 그 아이는 없는 것 처럼 느껴진다.  가끔 욱신거리게 아플때가 있긴 하지만 왜 인지는 모른다.  그런 이야기..  어디에선가 한 번쯤 들었던 그런 이야기.  오늘 같이 있었는데 또 다른 오늘이 되면 낯선 듯 낯익은 물건들을 보면서 누군지 모를 사람을 그리워 하는 그런 이야기들을 우리는 은연중에 만나고 있다.

 

 인주가 죽었다.  학교 뒤 연못에서.  새벽을 가르며 학교에 올라가던 인주가 죽었다.  그리고 괴담이 돌기 시작 한다. '너 그거 알아?'라는 은밀한 속삭임과 함께. 어느 학교에나 하나 둘씩 있는 괴담이 끊이지 않고 아이들 주변에 돌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곳에 지연과 연두가,  엽기 트리플이라는 미래, 치한과 보영이 있었다.  아이들은 성악을 하는 연두와 지연이 은근히 인주를 따돌렸다고 이야기 한다.  연두와 지연은 같은 반이었으니 둘이 더 친하게 당연한테, 예고가 아닌 학교에서 은근히 퍼지는 소문은 단짝 처럼 보이던 연두와 지연마저도 떨어뜨려 놓는다.  그러면서도 괴담은 사라지지 않고 조금씩 변해가면서 이야기를 만들어 낸다.

 

연못 위에서 일 등과 이 등이 사진을 찍으면 이 등이 사라진대.

연못 위에서 형제가 사진을 찍으면 두 번째 아이가 사라진대.

연못 위에서 첫 번째 아이와 두 번째 아이가 사진을 찍으면 두 번째 아이가 사라진대.

연못 위에서 첫 번째 아이와 두 번째 아이가 사진이 찍히면 두 번째 아이가 사라진대.

텅 빈 교실에서 첫 번째 아이와 두 번째 아이가 사진을 찍으면 두 번째 아이가 사라진대.

셋이 찍으면....?

 

 모든 것이 완벽한 것 같은 아이 지연.  부모의 재력이 있고, 절대음감까지 가진 이아이가 음악교사, 경민에겐 눈엣가시처럼 보였다.  경민은 인주의 죽음이 자살이라 확신을 하지만, 지연에게 책임에 있기를. 지연이 죄책감에 떨기를, 그러다 망가져 버리기를 원하다.  자신이 못 가진 것을 가진 학생에 대한 부러움 이었는지도 모른다.  경민의 친구인 PD가 만들고 있는 다큐에 여주인공을 차지하기 위한 아이들.  지연과 연두 그리고 인주의 이야기 였을까?  .  여주인공이 되는 순간 앞날이 열릴 것 같았으니까.  PD가 원했던 건 무너져 내린 경민을 찍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누가 여주인공으로 뽑히던 그 학생은 경민의 들러리일 뿐이었다.  이상한 관계에 아이들.  더 이상한 아이들.  엽기 트리플이라 불리는 치한을 두고 함께 사귀는 미래와 보영. 

 

 보영의 머리를 묶어 주고 있는 보라색 머리끈, 연두의 손가락에서 빛나는 반지, 주은 디지털 카메라 속에서 환하게 웃고있는 여학생.  주인없는 물건들이 하나둘씩 나타나면서 괴담은 현실이 되지만, 괴담은 괴담일 뿐이다.  인주는 괴담의 주인공이 아니었을까?  어째서 인주는 잊혀지지 않고 있을까?  지연을 누르고 있는 이야기들.  아무도 모르는 지연과 또 한 사람만이 알고 있는 이야기들.  두려움의 또 다른 이름은 외로움인지도 모른다.   첫 번째가 되고 싶은, 무대 위의 주인공을 꿈꾸는 아이들. '너만 없으면 돼?' 정말? 그런데 왜 두 번째 아이일까?  보통의 괴담 속 이야기는 첫 번째 아이의 사라짐이다.  너만 없으면 일등이 되니까.  늘 사라지는 건 두 번째 아이였다.  남는 건 첫 번째 아이. 첫 번째 아이는 언제나 남지만, 한 번도 첫 번째 아이가 될 수가 없었다. 두 번째 아이가 눈앞에서 사라져 가는 그 순간조차도 첫 번째 아이라는 것을 확신할 수 없으니까.  그래서 두 번째 아이가 사라짐에도 언제나 남는건 두 번째 아이였다.

 

 우정이 지독한 질투로 변하고, 열정이 비틀린 집착으로 물들고, 간절히 사라지길 바라는 존재가 생겼을 때, 간절히 원할 때 찾아와 현실이 되어 버리는 이야기.  작가의 말처럼 괴담의 의미를 도저히 읽어 낼 수가 없을 지도 모른다.  배 속에 든 창자처럼 단순한 형태의 미로지만, 출구를 찾는 사이 흡수돼 버리고 마니까. 목적도 의미도 없는 커다란 함정이니까.  혹시, 이 함정에 빠져서 내가 기억못하고 있는 누군가가 있는 것은 아닐까?  그 두 번째 아이로 인해서 어느 순간 하염없이 눈물이 흘러 내리는 건 아닐까?  여름밤을 잠 못 이루게 만들면서 <괴담>은 이렇게 프리마돈나와 세콘다돈나와 생각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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