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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한니발 장군은 알프스를 넘었을까? - 한니발 vs 스키피오 ㅣ 역사공화국 세계사법정 12
박재영 지음 / 자음과모음 / 2010년 11월
평점 :
오랜만에 역사공화국 세계사 법정을 만났다. 한동안 한국사와 세계사에 빠져있었는데, 소설을 손에 잡으면 또 동떨어지고 만다. <십자군 이야기>와 <사화 시리즈>를 통해서 만났던 한국사와 유럽사는 어디로 사라져 버렸는지 보이지도 않고, 몇주만에 내 머릿속의 지우개는 가장 왕성하게 제 할일을 하고 있었다. 다 어디로 사라져 버렸는지... 내 머릿속 세계사가 통째로 날라가 버렸다. 그래도 간혹 남아 있는 몇 가지 중 하나가 한니발 장군이다. 때앙볕 작렬하는 아프리카쪽에서 살던 사람이 눈보라를 헤치고 코끼리 군단과 함께 알프스산맥을 넘는 모습. 베네딕트 마송의 그림으로도 유명한 <알프스 산맥을 통과하는 한니발 장군>은 얼마나 장엄한가? 그래서 세계사 중 한니발 장군의 이야기를 꺼내들었다. 궁금하니까.

“장군, 장군 생각에 역사상 최고의 명장은 누구일까요?” “말할 것도 없이, 알렉산드로스 대왕을 능가할 사람은 없소.” “그렇군요. 그러면 두 번째는요?” “에피루스의 피로스요.” “…음. 그럼 세 번째는?” “바로 나, 카르타고의 한니발이오.” “하하, 장군은 자마 전투에서 나에게 패하지 않았소? 어찌 패장이 승장 아페어서 자신을 더 위대한 인물이라고 한단 말이오? 지나가던 개도 웃겠소그려. 하하." "만약 내가 자마 전투에서 당신에게 승리했다면, 나는 알렉산드로스와 피로스를 능가하는 역사상 가장 위대한 군사령관으로 불렸을 거요." (p.14)
이렇게 '한니발 vs 스키피오'의 대결이 시작된다. 원고측 변호사는 풍부한 지식을 바탕으로 잘못된 역사를 바로잡는 데 혼신의 힘을 쏟는 김딴지 변호사, 피고측은 기존의 역사적 평가에는 다 이유가 있다고 확신을 가지고, 역사적 진실은 쉽게 변하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이대로 변호사가 맡았다. 어찌나 두분다 똑똑하신지, 함께 하다보면 세계사속에서 재미있는 게임을 하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이제 그들의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보자. 물론, 한니발 장군의 이야기만 하려고 하는 것은 아니다. '페니키아인의'라는 뜻으로, 카르타고가 페니키아에 기원을 두고 있어서 로마인들이 포에니라고 불렀던 '포에니 전쟁'으로 들어가 보는 것이 우선일 듯 하다.
카르타고와 로마 간에 벌어진 포에니 전쟁은 3차에 걸쳐 약 120년 동안 계속 되었다. 기원전 814년경에 건국된 것으로 추정되어지는 카르타고는 지중해에서 해상 무역 문화를 꽃피우던 곳이었다. 당시 카르타고는 지중해의 패권을 잡고 있었고, 막강한 해군력을 자랑하고 있었기 때문에 '카라타고의 허락 없이는 바다에서 손도 씻을 수 없다'는 말이 나왔을 정도 였다. 하지만 로마가 카르타고의 지배 아래 있던 시칠리아를 장악하기 위해 벌인 1차 포에니 전쟁에서 로마는 코르부스를 이용해서 카르타고와의 전투에서 승전을 한다. 코르부스는 라틴어로 까마귀라는 뜻인데, 배와 배를 연결하는 일종의 다리로 끝에 날카로운 철제 갈고리가 달려 있어서 갑판을 뚫고 들어가 깊이 박히는 역활을 한다. 해상전에 불리한 로마가 해상전을 코르부스를 이용해서 육상전으로 만들어 버린 것이다.

제 2차 포에니 전쟁은 어떻게 시작되었을까? 이제 한니발이 나오기 시작한다. 1차포에니 전쟁의 중심에 있던 카르타고의 하밀카르의 아들이 한니발이다. 2차 포에니 전쟁은 '한니발 전쟁'이라고 불릴 말큼 한니발의 활약이 대단했다. 한니발은 기원전 218년 29세의 나이로 10만여명의 대군과 코끼리 37마리를 이끌로 카르타헤나에서 로마로 출정하게 된다. 해군이 강한 카르타고의 장군이 로마가 전혀 예상 하지 못할 방향, 이탈리아 반도 북쪽에서 아래로 내려가는 방법을 택하기 위해 피레네 산맥과 알프스 산맥을 넘은것이다. 알프스 산맥을 넘으면서 10만의 대군은 6만으로 줄어들지만, 한니발의 위력은 대단했다. 전승을 거두면서 로마를 압박해오는 한니발. 하지만, 본국에서 지원을 하는 것이 아니었기에 한니발의 힘은 약해지기 시작했고, 로마연합을 와해시키려는 시도는 불발이 되면서 로마의 청년 장교 스키피오와의 싸움에서 패하고 만다.

<알프스 산맥을 통과하는 한니발 장군> by 베네딕트 마송
제 3차 포에니 전쟁은 전쟁이라고 말하기도 무색할 정도로 로마의 승리였다. 기원전 146년 전쟁의 3년째가 되는 해, 로마군 총사령관 스키피오 아이밀리아누스에게 함락된 카르타고는 노예가 된 사람들이 어린 아이까지 포함헤사 5만명에 이르렀고, 성벽, 신전, 가옥들과 자장 건물들을 모두 파괴하고 불질렀으며, 땅을 가래로 갈아엎고 소금을 뿌려, 풀 한포기 나지 않는 폐허로 만들면서 로마 역사상 그 당시까지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만행을 저질렀다. 7백전동안 드넓은 지중해 세계를 호령했던 카르타고의 영광은 불타는 폐허 속으로 이렇게 사라져 버린다. 하지만, 포에니 전쟁의 승리가 로마의 평화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다. 가장 강한 적은 내부의 적이라고 했던가? 로마의 근본적인 위기는 외부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 그들 내부에 도사리고 있었다.
포에니 전쟁이 끝나자 이탈리아 반도는 전쟁의 후유증으로 토지는 황폐화되고 전염병까지 돌면서 민중은 약해지고, 전쟁의 승리로 귀족들은 부유해졌다. 이에 반기를 들었던 인물이 티베리우스 그라쿠스와 가이우스 크라쿠스였는데, 이들의 토지 제도 개혁은 실폐로 돌아가고, 귀족들에게 살해를 당한다. 이렇게 공화정은 무너지고, 황제가 군림을 하게 되는데, 포에니 전쟁의 뒤를 잇는 이야기가 '부르투스 너마저..'로 유명한 루비콘 강을 건넌 카이사르 이야기다. 카이사르 이야기는 전에 쓴적이 있다. 카이사르 보다 한니발 이야기를 먼저 읽었더라면 훨씬 재밌었을 테지만, 지난 시간을 돌릴수는 없고, 이제야 하나씩 짝이 맞춰가니 그 또한 감사하다. 역사에 '만약'을 가져다 붙인다면 그건 더 이상 역사가 아니라 소설이 된다. 하지만, 생각은 해볼수 있지 않을까? 역사 사실과 역사 기록은 별개의 문제이니 말이다. 과거에 있었던 역사 사실을 있었던 그대로 재현할 수는 없다. 기록자의 주관이 필연적으로 들어갈 수 밖에 없고, 그러기에 승자의 기록일 수 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알고 있다. 승자의 기록의 헛점을. '만약'이 소설이 될지라도, 생각해 보아야 하는 이유는 역사는 다른 형태로 언제나 되풀이 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