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스트 그렌스 형사 시리즈
안데슈 루슬룬드.버리에 헬스트럼 지음, 이승재 옮김 / 검은숲 / 2011년 8월
평점 :
절판


 안데슈 루슬룬드와 버리에 헬스트럼의 글이 어찌나 강했었는지, 그들의 다른 작품이 궁금했었다.  너무나 강하게 <쓰리 세컨즈>가 다가왔었고, 내가 알지 못했던 세상에 대한 강력한 후폭풍이 한동안 아무것도 못하게 만들었었다.  그들이 만들어 낸 또 다른 이야기, <비스트> 읽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지금, 불편하다.  읽는 내내 불편했다.  얼굴을 이렇게 찡그리면서 읽었던 책이 몇권이나 될까?  눈앞에서 보는것 같은 이 잔인함.  책의 서두를 차지하고 있는 이 잔인함에 몸서리 처지는 이유는,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세상에 이야기 이기 때문일 것이다.  저 멀리 있는 스웨덴이라는 나라의 이야기가 아닌 대한민국의 이야기.  그 끔찍한 이야기.  읽는 내내 불편함에도 덮어버리지 못하고 읽어내려 간 그  긴 이야기.

 

 

 

 몇달동안 뉴스의 헤드라인을 차지하는 것은 폭행과 죽음이었던 것 같다.  수원의 끔찍한 살인사건을 시작으로 통영의 어린이 납치 사건과 제주도의 살인사건까지 그 폭력성이 도를 넘어서고 있다.  그 중에 아동 성폭행은 극을 달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끔찍하다.  뉴스를 보면서 허를 내두르다가 섬뜩함을 느끼는 이유는 내게도 그 나이에 아이들이 있기 때문이고, 많은 사람들 또한 그것으로 더욱 두려움을 느끼고 있을 것이다.  에베트 그렌스 형사 시리즈의 첫번째 이야기, 자신들의 성적 쾌락을 위해 무력을 동원한 변태 족속들, 그중에서도 어린아이게 몹쓸 짓을 하는 짐승같은 부류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The Beast>

 

 '대략 4년전의 일'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1997년 이른바 스카르프흘름 사건이 일어났다. 두명의 아홉살짜리 여자아이들이 어느 건물의 지하창고에서 강간당한 뒤 잔인하게 살해된 사건.  범인은 잡혔다.  아이들을 어린 창녀라고 부르는 벤트 룬드. 아이들을 그렇게 죽이고도 중죄를 선고받고 아스프소스 중앙 교도소의 성범죄자 특별감호구역에 수감되어 있는 그의 이야기가 책 서두를 몸서리치게 만들고 있다.  그리고 '대략 최근의 일'이라고 분류되어진 일들이 일어난다.   정신감정과 치료를 위해 병원으로 호송되던 도중 벤트 룬드가 호송차량을 탈취해 달아나 버렸다.  그리고 그 시간들 속에 프레드리크와 마리가 있었다.  어린 시절 불행했던 가정을 대물림하지 않기 위해 마리를 지극정성으로 보살피는 이혼남 프레드리크.  늦은 오후 마리를 유치원에 데려다 주고 유치원 앞에서 마주친 남자. 그 남자의 정체를 알았을 때 다섯살 난 그의 딸은 사라지고 없었다.  그리고 마리는 예외없이 끔찍한 모습에 주검으로 발견된다.

 

아빠는 아이의 뺨에 입을 맞췄지만 엄마는 시체를 덮고 있는 시트 위에 머리를 묻으며 그대로 주저앉고 말았다.  아이 엄마는 절규했다.(p.229)

 

 딸을 잃은 아빠는 딸과 함께 죽었다.   '이미 한계를 넘은 룬드는 결코 살인행각을 멈출 수 없을 것'이라는 그렌스 형사의 말에 룬드를 찾기 시작하는 프레드리크.  또 다른 유치원 앞에서 마주하는 룬드와 프레드리크의 엽총에서 총알이 발사된다.  스스로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총을 든 프레드리크의 행동, 옳은 일인가?  이제 이야기는 다른 국면으로 들어가기 시작한다. '누군가의 생명을 쥐락펴락 할 생사여탈권이 있는가?' 딸아이가 죽었고, 또 다른 아이들이 죽을수도 있는 시점에서 총알을 발사한 프레드리크.  그를 통해서 여론 몰이를 하고 싶어하는 젊은 검사 오게스탐. <쓰레 세컨즈>로 만난 오게스탐은 <비스트>보다는 조금은 노련해진 면이 보였는데, 첫 작품이라 그런지 <비스트>속에서의 오게스탐은 피해자에 대한 측은지심은 커녕 출세만을 생각하는 검사로 그려지고 있다.  오게스탐이 맡은 역할은?  국민적 영웅이 되어 있는 프레드리크에게 종신형을 받게 하는 것.  가능할까?

 

 스웨덴 곳곳에 숨어있는 인물들이 총출동하는 모습이다.  아스프소스 중앙 교도소에 교도관들, 그속에 구류중인 마약사범들과 성범죄자들. 탈바카에 살고 있는 노출광 예란과 그를 끔찍하게 싫어하는 뱅트 쇠델룬드를 비롯한 이웃들. 마리가 죽던 날 마흔번째 생일을 맞은 스벤과 노형사, 에베트 그렌스까지.  이 많은 인물들이 왜 나왔을까?  분명 연결은 된다.  렌나트 오스카숀의 이중 생활은 어처구니 없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스웨덴의 의식이 우리와 다르기 때문일까?  아내를 사랑함에도 같은 동료인 닐슨을 사랑하기에 이혼을 이야기하려는 렌나트. 그리고 발생하는 룬드의 탈옥.  삶은 내 생각처럼 딱딱 맞게 다가오지는 않는다.  어린시절 아버지로 부터 폭행을 받았던 프레드리크에게서 마리를 빼앗아 가버린 것처럼 말이다.  <비스트>와 <쓰레 세컨즈>만을 읽은 상태이기 때문에 안데슈 루슬룬드와 버리에 헬스트럼가 만들어 낸 다른 이야기들은 어떨지 모르겠다.  어쩌면 이 곳에 나온 인물들이 그들의 다른 이야기 속에 또 다른 이야기거리로 나올지는 모르겠지만, 지금은 모르겠다.

 

 너무나 현실적으로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는 안데슈 루슬룬드와 버리에 헬스트럼은 어떠한 결말도 이야기하고 있지 않다.  '그래서 이걸 어쩌라고?'라고 외치게 되는 이유는 답답함 때문이기도 하고, 그들이 만들어낸 결말을 받아들일 수 없기 때문일수도 있다.  5만 5천건의 유죄판결이 나고, 그중 547건이 성폭행에 관한 범죄이면, 법원은 그 중 절반 이하의 판결에 대해서만 징역형을 선고한다는 스웨덴.  그렌스 형사의 말처럼 "두려워서 저러는 겁니다. 성폭행범, 변태들이 두려워서, 그래서 증오심에 불타오르는 거라고요.  그러니 피해아동의 아버지가 그 변태를 죽이는 순간 영웅이 된 거지요. 저 사람들에게 당연한 논리예요. 자신들이 했으면 하는 일을 대신 해주었으니까요. 행동으로 옮길 엄두조차 나지 않는 그런 일을요."(p.388)  프레드리크  주변에 일어나는 사건들.  어느 누가 이것은 옳다, 그르다라고 이야기 할수 있을까?  아니, 옳은것이 있기는 한 걸까?

 

"자식을 지키기 위해 부모는 어떤 일까지 할 수 있을까." "어린 소녀와 연쇄살인범, 누구의 생명이 더 소중한가." ..................................그리고, "모든 이의 생명은 똑같이 존중받아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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