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꾸는 황소
션 케니프 지음, 최재천.이선아 옮김 / 살림 / 2012년 6월
평점 :
절판


슈트 컨베이어에 있을 때는 소처럼 행동할 필요가 전혀 없어. 아직 모르겠어?  슈트 컨베이어에서는 날뛰고 발길질하고 공격을 하거나 뿔질을 할 필요가 없어.  내가 진실을 말해 줄게. 이제 이 농장 생활은 끝났어. 소들도 세련되게 사는 거야. 인간의 은혜를 받는 거야.  지금까지 경험한 모든 추위와 배고픔에서 구원을 받는 거야. (p.112)

 

 

 요상한 소 한마리가 있다. 만약 사람들이 우리를 데려가지 않으면 우리는 굶어죽고 말 것이다. 우리가 굶어 죽으면, 그들 또한 굶어 죽는다.  이것이 내가 알고 있는 이곳의 법칙이다.(p.10) 라고 생각하는 녀석이다.  그래서 다른 소들과 함께 사람을 기다리는 이 녀석은 황소다. 고월 농장에서 엄마소와 함께 살고 있던 이 녀석은 스스로 '에트로'라고 부른다.  에트로는 프랑스어로 '존재'라는 의미를 담고 있단다. 그리고 그의 이름은 에트로가 유일하게 말할 수 있는 단어이기도 하다. 아무도 듣지는 않지만 말이다.  이 녀석의 눈에 슈트 컨베이어는 별 세계였다.  그러니, 그곳으로 간 소들이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것 또한 충분히 이해가 된다.  심지어 에트로의 엄마소까지도 말이다.  얼마나 좋은 곳이기에 어린 소를 버려두고 가서는 돌아오지 않을까?    

 

 지적인 황소 에트르는 농장에 있는 소년이 말하는 말도 정확이 이해하고 똑똑하게 알아 듣는다. 에트르는  소년과 농장주와 사람들이 말하는 소리를 들으면서 대부분의 말을 배웠으니까 말이다. 어느 황소도 말을 배우고 노래를 하려하지 않는다.   오직 소년만이 노래를 할 줄 안다. 암소는 노래를 부르지도 않고, 에트로가 할 수 있는 만큼의 말도 할 수 없다. 하지만, 에트로는 다르다. 단지 아무도 못 알아듣는 다는 것 밖에.  주고 받는 말이라고는 '앙프'와 '엉프'밖에 없는 소떼들.   그들과 함께 하고 있는 이 녀석에게도 사랑이 찾아왔다.  왜 암소가 그의 눈에 들어왔는지는 모르겠지만, 언덕위의 산 밑에서 만난 암소는 그의 그녀가 되어버렸고,  애트로에게 매우 특별한 존재가 되어버렸다.  

 

"재는 내 암소야. 검은 황소 넌 절대로 그녀를 가질 수 없어.  잘들어! 나도 너처럼 풀을 먹어.  나도 너처럼 뿔이 있어.  나도 너처럼 성질 있는 황소라고."(p.67)

 

 가족애를 지니고 있는 특별한 존재, 에트르.  그에게 암소는 그저 그런 소가 아니었다.  농장의 절대권력인 검은 황소에게서 지켜내야 할 존재였고, 그가 책임을 져야만 할 존재였다.  암소와 암소가 낳은 수송아지까지도.  그렇게 암소와 수송아지를 지키고 있는 에트르에게 기회가 찾아왔다. 기회라고 믿었다.  별 세계로 가는 슈트 컨베이어.  그곳에 들어가기 전에 맛보는 너무나 맛있는 건초들.  그곳에 수송아지가 들어오지 못함이 가슴 아팠다.  새끼를 지켜야만 하는데. 그러고 에트르는 보게 된다.  평소 막연히 짐작만 하던 자신들의 운명을.  자신의 암소가 어떻게 되어가는지를 보면서 그는 아무것도 하지못하고 바라보기만 할 수 밖에 없었다.  살아남은 수송아지를 지키기 위해서.

 

 그제서야 에트르는 알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이제 나는 소가 개를 앞지를 수 없는 발, 울지 못하는 눈동자, 먹기만 할 뿐 소리 내어 외칠 수 없는 입을 가지고 태어난 하등동물이라고 생각 한다.'(p.126)라고 말이다.  소들은 주는 대로 먹지 않고 굶을 수도 있지만 어느 소도 그렇게 하는 소는 없었다.  심지어 에트르도 그렇게 할 수가 없었다.  에트르의 발밑에 소년이 있을 때,  에트르가 농장의 울타리를 넘어 밖으로 나갔을 때, 따라오는 것은 오로지 수송아지 밖에 없었다.  송아지와 함께 한 길. 송아지는 농장의 케일이 먹고 싶었을 것이고,  목초지의 풀이 먹고 싶을 것이고, 목장 생활의 가장 큰 덫인 익숙함이 그리울웠을 것이다.  하지만 에트르는 절대로 다시는 농장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어린 송아지의 무지의 유혹은 이렇게 고통을 넘어서고 있었다.

 

 에트르와 어린 황소의 앞날은 어떻게 변하게 될까?  에트르에 말처럼 인도로 가서 행복하게 살수 있을까? 절벽넘어 알수 없는 곳으로 가면 새로운 목초지가 있을까?  꿈을 꾼다.  오로지 황소의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는 <꿈꾸는 황소>. 에트르는 꿈을 꾼다.  꿈을 꾸라고 강요하지 않아도 끊임없이 꿈을 꾼다. 암소와 수송아지와 함께 하는 꿈을 꾼다.  진짜 황소처럼 살고 싶었던 에트르.  세계적인 침팬지 연구가인 제인 구달이 권하고 있고, 채식주의자라는 이효리가 권하고 있는 책. 이들이 권하고 있지 않다고 하더라도 '동물과 인간이 함께 행복해질 수 있는 길은 없을까?’라는 물음에 대한 답을 하지 않더라도, 아니, 그런 물음을 생각 조차 하지 않더라도, 에트르가 말하는 것은 주어진 삶에 익숙해지는 것, 그보다 잔인한 운명은 없다 가 아닐까?   에트르의 마지막 말을 듣고 실망하지 않기를. 그래도 에트르는 또 다른 꿈을 꾸고 있을테니까 말이다.

 

나는 절벽까지 가서 그 끝을 내려다본다.  내 아래쪽, 내 시야가 닿는 그곳에, 수천 마리의 소들이 울타리가 둘러진 목초지 안에서 풀을 뜯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p.1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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