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표지가 참 은밀하다. 문고리의 걸린 술 너머에 앉아있는 여인의 실루엣. 어째, 요염하다는 생각이 머리를 스치는지 모르겠다. 조신하다 보다는 요염하다는 표현이 생각난것은 부제 때문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궁궐에 핀 비밀의 꽃 - 궁녀'. 궁녀에 대해서 알고 있었던 것이 있었던가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책을 보자 마자 생각났던 것은 '후궁-제왕의 첩'이라는 이슈가 되고 있는 영화였다. 영화를 보지 못했다. 그저 이웃들에게 들려오는 소문이 꽤나 야하단다. 그런데, 왜 나는 궁녀라는 글을 읽으면서 후궁을 생각했을까? 궁에 살고 있는 여인네들이니 궁녀라고 해도 될까? 처음은 그랬다.

드라마의 영향 때문이었을 것이다. 궁으로 들어오는 여인들은 모두 '왕의 여자'라고 생각했던 이유가 말이다. 궁녀는 왕의 여자이기 때문에, 왕 이외의 남자로 궁에서 지내는 사내들은 모두 거세를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었다. 진실인지 알았다. 모두는 아니라도... 그래서 궁에 있는 모든 여인들, 궁녀가 왕의 여자라고 생각 했었다. 드라마에서, 인터넷에서 듣고 본 내용들. 결국은 카더라 통신이다. 내가 알고 있는 궁녀에 대한 이야기는, 야사 속 한 토막 정도가 너무나 크게 부풀어 올라서 알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백제 의자왕의 삼천 궁녀처럼 말이다. 낙화암에 3000명이 빠지면 산을 이루어 절대 죽을수가 없었을 것이다.
왜 야사를 궁녀에 대한 진실인 것처럼 알고 있었을까? 그 어느 이야기보다 더한 흥미와 상상력을 불러일으키는 궁중 여성이라는 소재. 상상의 영역으로 빠져 오로지 흥미와 상상력에만 맡겨져 버린 역사. 역사 소설이나 드라마, 영화를 통해서가 아닌 제대로 그녀들의 삶이 조명되어진것을 찾을 수가 없다. 어째서 조선왕조 500년 뿐 아니라, 삼국시대 부터 있었던 궁녀들에 관한 기록이 이렇게 전무할 수 있다 말인가? 작가는 이야기 한다. 궁녀는 왕의 신성한 이미지를 사수하기 위한 역린(逆鱗)이라고 말이다. '거꾸로 박힌 비늘' 곧, 절대로 건드리면 안 되는 금기 사항. '왕의 역린'이었기에 본능적으로 제정신이면 공개적으로 문제를 제기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왕의 집안일이었으니까.
그렇다면 조선의 마지막 궁녀였던 성옥염 상궁이 2001년에 세상을 떠나고, 궁녀에 대한 기록이 전무후무한 지금 신명호 작가는 어떻게 궁녀에 대한 이야기를 펼쳐내겠다는 말인가? 그것도 다 시들어가던 시절의 궁녀들의 이야기를 토대로 만들어진 이규태 학자와 김용숙 학자의<개화백경>과 <조선조 궁중 풍속 연구>만을 들여다 보면서 말이다. 하지만, 이런 건 내 생각일 뿐이다. 작가는 우리나라의 궁녀의 실체가 들어난 책, <삼국사기>,<고려사>,<조선왕조실록>,<승정원 일기>, <의궤>를 시작으로 살아있는 궁녀의 이야기를 찾기위해 <계축 일기>,<인현왕후전>, <한중록>등의 궁중 문학 작품과, 역모 사건마다 빠지지 안않던 단골인 궁녀들의 이야기가 실린 <추안급국안>을 통해서 그녀들의 실상을 파헤치고 시작한다.
연산군과 광해군하면 떠오르는 두 여인, 장녹수와 김개시를 시작으로 귀성군을 사모한 세조의 여인, 덕중까지 작가는 궁녀의 자격요건과 출신 성분, 몇살때부터 입궐을 할수 있었는지를 이야기 한다. 그뿐 아니라 궁녀와 하녀의 인간관계와 결혼을 했던 유모와 보모 상궁 및 궁녀의 성까지 다루고 있다. 그렇게 작가는 여기저기 흩어져 있던 궁녀에 대한 모든것을 사료로 만들어 내고 있다. 어느 시대에나 외국인은 있었지만, 궁녀 중에도 중국과 일본 출신의 궁녀들이 있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수를 잘 놓았던 그녀들로 인해서 조선의 명나라 자수가 전래되었을 수도 있었다고 하니, 문화 교류의 시작은 그녀들부터 시작이었을 듯 하다. 우리만 그러했을까? 중국에 공녀로 가서 명나라 3대 황제 영락제의 사랑을 받아 황제의 궁녀가 되었다 황제의 죽음과 함께 순장되어진 청주 한씨의 이야기는 가슴을 짠하게 만든다.
궁녀는 정말 모두 왕의 여자 였을까? 작가의 의도대로 이야기 한다면 '아니다'다. 우선 궁녀의 충원은 왕이 아닌 각 부서에서 한다는 것이다. 왕의 대전 궁녀는 왕이, 왕비의 궁녀는 왕비가, 후궁의 궁녀는 후궁이, 대비의 궁녀는 대비가, 세자의 궁녀는 세자가 각각 알아서 한다는 것이다. 곧, 궁녀의 충성 대상은 왕이 아니라 자신이 소속된 곳의 주인이었고, 궁녀를 뽑았던 이들 역시, 자신들에게 충성을 할 이들을 뽑았다. 어떻게 돌아갈지 알수 없는 역사의 중심의 살던 사람들이었으니까 말이다. 그러기에 자신의 주인에게 등을 돌렸던 궁녀는 철저하게 배신자라는 낙인이 찍혔다. 실례로 인목왕후에 궁녀였던 난이는 살길을 찾아 광혜군에게 갔다가, 인조 반정이후 역적의 몸이 되어 사약을 받는다.
처음 책을 받았을 때는 '야사'를 생각했었다. 시공사에서 '야사'를 이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내가 알고 있던 것보다 많은 '야사'들이 꿈틀거리면서 흘러 나오리라 생각 했었다. 그런데 그런 '야사'는 그냥 이야기다. 침묵을 강요 받았던 이야기들. 작가는 그녀들의 살아있는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출신 성분부터 권력을 둘러싼 암투와 조직 구조, 죽음까지 두려워하지 않았던 성에 관련된 스캔들까지. 역사의 뒤안길에 숨어서 사라져 갈 뻔했던 이야기들. 심지어 궁녀들의 월급과 재산, 궁녀들의 지위체재까지 우리가 알지 못했던, 아니 내가 알수조차 없었던 모든 이야기들을 풀어내고 있다. 흔한 이야기가 아니라 쉽게 다가오지는 않지만, 그렇기에 더욱 소중한 이야기. 결코 묻어버릴 수 없는 이야기. <궁녀>. 그녀들은 역린도 궁궐에 핀 비밀의 꽃도 아닌 사랑하고 사랑받고 싶어하던 사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