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몽 1 - 운명의 택군
김시연 지음 / 은행나무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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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알고 있던 철종은 어떤 사람이었던가 생각을 해보왔다.  조선왕조 500년 역사속에서 '강화도령'이라 불리던 일자 무식의 왕.  사도세자의 증손이고 3대가 역적죄로 강화도에 유배되었던 인물. 삼정의 문란이 극에 달했고, 안동 김씨의 세도정치가 절정에 달했던 시기에 주색에 빠져 민초들의 삶을 돌아보지 않았던 인물.  나라가 험해 동학이 성행했던 시기 역시 철종 때 였다.  조선의 25대의 왕.  내가 알고 있는 철종이다. 이렇게 왕이지만 별볼일 없던, 나라를 좀 먹었던 임금이라 여겼던 왕, 철종이 인간, 이원범으로 다가왔다.  단 하나의 사랑에 목을 메는 사랑밖에 모르는 남자가 내게 다가왔다.

 

 

단 한 번도 와본 적 없는 낯선 섬, 그러나 왠지 익숙한 곳,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오랫동안 유배생활을 했던 곳, 이제는 3대가 대를 이어 역적 죄인으로 귀양생활을 해야 할 곳... 바로 강화도, 그 섬이었다. (p.21)

 

 왕족은 이러했다. 이러해야만 했다. 흥선군 처럼 난봉꾼으로 모두가 머리를 돌리지 않는 이상은 능지처참 당하는 형제의 모습을 보면서, 아무 잘못이 없어도 민초들의 돌을 맞아가면서 살기위해서 움직여야만 했다. 그래야만 살수 있었다.  그렇게 사도세자의 증손, 경응과 원범은 형의 살이 찢겨 나감을 목숨과 바꾸어 그들의 목숨을 이어나간다. 이렇게 왕실에 씨가 말라갔다.  조선 중기 부터 왕권을 위협할 만한 혈족들은 이렇게 사정없이 제거되어 갔다.  세도정치다.  순조때부터 이어지는 안동 김씨와 풍양 조씨의 외척의 권력 다툼은 힘없는 임금을 핫바지로 만들고, 그들만의 세상을 만들려고 하고 있었다.

 

 안동 김씨와 풍양 조씨에게 새로운 임금이 필요해진 것은 스물 두살에 헌종의 죽음 때문이었다. 후사가 없던 헌종. 왕실에 씨가 말라버렸고, 누구든지 순원왕후가 조정하기에 딱인 인물이 필요했다.  없던 후사도 만들어 버리는 권력에 눈이 먼 사람들.  "제왕의 사주이던가?" "아닙니다. 누님! 그래서 택한 것입니다"(p.87) 제왕의 사주가 아닌 자. 한여름의 촛불 처럼 뜨겁지도 밝지도 않은 그저 그림 한장 보일 만한 빛, 겨우 한 손만 녹일 수 있는 그런 사주를 가진자가 다음 왕이 되어야만 한단다.  순원왕후의 손에서 놀아날 수 있는 자, 스물이 되지 않아, 순원왕후의 양자가 될수 있는 자, 그가 이원범. 역적이라하여 강화도로 유배를 보낸 '강화도령'이었다.

 

 소학도 떼지 못한 일자무식의 원범. 그저 종친이라는 이유로, 전주 이씨의 피를 받았다는 이유로 왕이 되어야만 한단다.  강화도에 있는 정인, 봉이를 두고 가야만 한단다.  아무것도 필요하지 않는데, 그녀를 두고 가야만 한단다.  원하지도 않은 삶을 살기 위해서 야무진 정인을 두고 가야만 한단다.  가을이 되면 혼례를 올리기로 한 고운 정인을 두고 가야만 한단다.  그렇게 이원범은 철종이 된다.  왕이 될 수밖에 없었던 가혹한 운명이기에 왕이 되어 버렸다.  열아홉 해, 민초들의 삶을 모두 버리고 익숙하지 않는 왕이 되어, 처음 본 할머니를 '자존마마'라 부르며 왕이 되어 버렸다.

 

 아무도 믿을 수 없는 곳, 원범을 강화도에서 데리고 온 도승지와 상선, 그리고 보모상궁.  이들외에 믿을 수 있는 인물이 아무도 없다.  하지만, 그들은 힘이 강한 자들이 아니다.  곤욕스러운 왕노릇과 함께 왕궁밖, 또 한명의 왕손.  살기위해 난봉꾼이 되어버린 흥선군이 아들을 키우기 시작한다.  전왕의 아저씨뻘이 되는 사람이 왕이 되는 세상. 전주 이씨가 아닌 안동 김씨가 조선의 왕이 된지 너무 오래 되었다. 이씨성을 가진 자.  그의 아들을 왕으로 만들기 위해 길고 긴 세월을 숨죽이며 살아온 그가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한다.

 

 조선왕의 계보를 역사 소설들로 익혀버린 듯 하다.  아이책으로 몇 주전에 정조와 순조의 이야기를 읽었는데, 그 다음에 만난 인물이 철종이다.  어렸을 때, '태정태세문단세...'하면서 외웠던 계보 보다 책으로 만난 왕들은 살아서 움직이고 그들의 삶을 통해서 민초들의 삶을 마주보게 된다.  철종 역시 그렇게 만났다.  내가 알고 있던 그런 인물이 아닌 조선 역사상 가장 슬픈 운명을 타고난 비운의 왕으로 역사학자 김인호 교수의 추천사처럼 시대의 벽을 뚫고 150년 말에 재발견되어 나타났다.  왜 그럴수 밖에 없었느냐를 이해하게 해주고 있다.  지존이라는 왕이 허수아비가 되어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순원왕후 뒤에 김좌근이, 그리고 그 뒤에 나합이 어떻게 조선을 혼란의 극치로 만드는지, 정치도 뭣도 아닌 부패한 권력에서 시궁창 냄새를 풍기는 지를 보여주고 있다.  아직 2권으로 들어가지 않아, 철종의 운명을 알면서도 애써 부인하려 함은, 그의 운명이 너무나 가혹하기 때문이다. 조금은 행복해지지 않을까? 정인을 만날 수도 있지 않을까?  소설이기에 가능하지 않을까?  역사 소설이기에 그러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면서도 인간, 이원범이 너무나 애처로와 그의 편에 서게된다.  그리고 그렇게 2권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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