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서의 문제 진구 시리즈 1
도진기 지음 / 시공사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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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맛보기 소설을 먼저 봤었다.  <순서의 문제>와 <뮤즈의 계시>.  짧은 단편 두편을 읽으면서 도진기 작가가 궁금해 지기 시작했다.  판사가 직업이라는 분의 글이 그리 어수룩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전작도 있다니 프로작가다.  선함과 악함, 정직함과 비열함.  상식적인 듯 하면서 그렇지 않은 모호한 경계속에 서있는 남자를 만났다.  김진구. 이 청년 뭐지? '오뚝한 콧날이 어딘가 높은 뜻을 지닌 남자 같은 느낌을 주는 한편으로 쌍꺼풀 없는 눈이 수수하면서 선한 인상을 만들어 주었다. 어떤 의지를 가지고 있으면서 그것을 안으로 갈무리하는 남자'(p.405)가 해미가 받은 진구의 첫 인상이었다.  물론, 내가 처음 만난 진구는 그런 모습은 아니다.  나쁜 남자의 전형이다.  빠릿빠릿 돌아가는 머리로 요상한 짓만 하는 것 같다가도, 자신의 여자친구 문제에는 '해미를 건드렸으니까요'(p.389)라면서 여자들을 몸서리치게 빠지게 만드는 매력도 있다.

 

 

 시간의 흐름으로 이야기가 흘러가지는 않는다.  해미와 진구의 만남을 다룬 <환기통>이 가장 끝에 자리하고 있으니 말이다.  처음의 시작은 <순서의 문제>다.  처음 도진기 작가의 글로 만났던 것이 <순서의 문제>였으니, 진구와의 인연 역시 이 글이 처음이었다.  <순서의 문제>를 시작으로 <대모산은 너무 멀다>, <막간: 마추피추의 꿈>, <티켓다방의 죽음>, <신 노란 방의 비밀>, <뮤즈의 계시>, <환기통>으로 이어지고 있다.  단편의 모음은 어느 장소에서든 읽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어서 좋다.  호흡이 짧기 때문에 한편씩 읽는 건 금새 읽으나갈 수 있으니까  말이다.  <순서의 문제>에서 못된 머스마 둘이 왔다갔다 하다 진구가 5억을 꿀꺽해 버려서, 그걸 어디에 쓸까 했더니 집을 샀단다.  갑자기 집이 생긴 진구, 달라졌을까 싶지만, 똑같다.  해미의 표현으로는 '터프한 남자도 아닌 주제에, 웃음이 거의 없고 눈물은 전혀 없는 무신경이다.  설상가상으로 요즈음엔 추위와 함께 찾아온 거대한 게으름이 진구를 집어삼켜, 집 안에만 틀어박혀 있다'(p.63)라고 표현을 하고 있다. 

 

 이불 돌돌 말고 게으름의 미학을 즐기는 진구의 눈빛이 반짝이며 깨어날 때가 있다.  자신이 관심을 둔 일.  어디서 많이 본 듯한 캐릭터다. 진구를 만나면서 홈즈가 생각이 나는 건 나 뿐일까? <대모산은 너무 멀다>속 진구는 이불 속에서 해미의 이야기만 듣고 사건을 해결한다.  포상금 2,000만원과 함께 말이다. 홈즈가 진구라면 해미는 왓슨쯤 될까?  그건 또 아닌것 같다.  가끔 왓슨과 비슷한 면이 있긴 하지만, 해미 역시 진구와 비교하지 않더라도 그리 성실한 아가씨는 아니다.  착하고 정많은 것은 인정하지만 말이다.  <환기통>을 통해서 진구와 해미의 첫만남을 살짝 드려다 봤다.  이렇게도 만날 수 있구나 하는 생각과 함께 해미의 큰아버지의 존재가 드러난다.  마추피추로 가는 두 연인의 알리바이를 만들어주는 인물이었으니 이 복선도 재미있다.  단편들의 제목이 재미있다.  직설적이다. 그래서 추리물 같다는 생각이 들긴 한다.   단어 하나 툭 던져놓고 그 단어를 유추하면서 글을 풀어내는 것 같은 그런 재미가 있다.

 

 읽는 사람 마다 다르겠지만, <티켓다방의 죽음>이 진구라는 인물을 가장 잘 드러내주는 이야기 같았다.  재미는 말할것도 없다.  책 뒷장에 '모호한 선악의 경계, 지적유희에만 반응하는 천재성, 도덕과 휴머니티를 후천적으로 학습한 그가 온다'라는 표현이 적혀있다.  진구를 가장 잘 드러내는 말이다.  그리고 이 문장에 가장 잘 어울리는 사건이 <티켓다방의 죽음>이다.  자살인지 타살인지가 중요하지 않은 죽음. 단지 진실이 아닌 혼란을 주기위해서 진구가 움직인다.  물론, 그속엔 돈이 개입되어 있다.  자살처럼 보이는 해미의 먼 친척 아저씨.  타살이어야만 보험금 6억을 받을 수 있는 사건. 해결을 하면 보험금의 20%를 준다는 양문요의 처, 임홍숙.  가만히 앉아서 살인 사건을 알아맞히는 진구가 이런 사건 하나 뒤집기는 쉬운 일이다.  몸은 힘들지만 말이다.  뭐하는 걸까?  그냥 진구만 따라가면 된다.  홈즈는 왓슨에게 하나하나 이야기를 해주지 않는다. 사건을 해결하는 과정 중에는 말이다.  설명은 사건이 해결된 후에 들으면 된다.  진구 역시 홈즈를 따른다.  그냥 진구만 따라가다 보면, 사건의 결말은 진구가 알아서 이야기를 해준다.  누군가를 통해서 이야기하는 법이 없다.  시시콜콜한 이야기까지 다 해준다.

 

 보는것과 관찰하는 것은 다른다.  <순서의 문제>를 나는 눈으로 보고 있고 진구는 그 속에서 관찰을 하면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처음엔 아주 못된 남자였는데, 이 캐릭터의 매력에 빠져 버렸다.  도진기 작가의 '어둠의 변호사'시리즈도 이런 느낌일 것 같다.  도 판사님, 악인들을 너무 많이 만나셔서 그들의 매력에 빠져버리신걸까?  진구라는 매력적인 인물, <뮤즈의 계시>를 통해서 고진 변호사와 만났으니, 이 둘의 시리즈를 기대하고 있어도 좋을 것 같다.  이들이 가지고 있는 관찰력과 뛰어난 두뇌회전. 명석한 머리. 부럽다.  거기에 운동신경까지 말이다.  그리고 이 못된 남자, 김진구. 조금 멋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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