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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면하는 벽
조정래 지음 / 해냄 / 2012년 4월
평점 :
조정래 작가의 신작이 나왔는 줄 알았다. <허수아비 춤>이후 <황토>, <비탈진 음지>와 <황토>가 나왔지만 개정본이었기에 신작을 기대하고 있었다. 그리고 <외면하는 벽>이라는 제목을 보고는 신작이 나왔구나 하고 얼씨구 좋아라 집어들었다. 단편집이다. 역시 개정본이다. 글을 써내는 기계도 아니고, 이리 좋은 작품들을 만들어 내는 분이 일년에 한권씩 뚝딱하고 책을 만들어 내기가 쉬운일이 아니지... 아쉽기야 말할 수 없지만, 이 단편들을 읽어 본 기억이 없으니 이 또한 내게는 새로운 글로 다가왔다. <비둘기>를 시작으로 8편의 이야기들이 실려있다. 단편의 장점은 짧은 호흡으로 읽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어느 장소에 있던지 한편씩 읽어 내릴 수 있고, 읽는 재미가 장편과는 또 다른 맛을 느끼게 한다.

1977년에 쓰여진 <비둘기>는 사상범들을 수용하고 있는 백골섬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눈을 가리고 들어간 곳. 눈을 떴을때 조차 햇볕을 볼 수 없는 그곳에서 죄수번호 1004와 간수로 만난 두 사람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시작되었다는 표현이 맞는 표현일까? 사상범 다운 독기를 품은 자의 죄수번호가 1004다. 빠삐용을 그리워 했을까? 그 희망이 비둘기가 되어 날아가 버린다. <우리들의 흔적>은 어떤가? 미스김이라고 불리던 직원의 죽음. 지금이라면 가능하지 않았을 일들을 동료이기에 아무 저항없이 발인을 하고 상을 치룬다. 누구의 흔적을 보려 한것일까? 부자집으로 시집을 간 미스김의 흔적을... 헛말처럼 던진 말들이 여전히 사람들 입에서 오르내리는 말이다.
동호의 이야기를 다룬 <진화론>. 조금씩 더 진화하는 것이 진화이건만 동화의 삶은 진화가 아닌 퇴화를 하고 있다. 한 고개를 넘으면 더 높은 고개가 나오고, 이것만 넘자하고 이 악물고 넘으면 더 높은 고개가 기다리고 있다. 짧은 단편속에서 어쩜 이리도 사람을 내몰수 있는 곳까지 내몰아 버리는지 모른다. '엄마 무사히 돌아와줘요'를 외치던 아이의 입에서 '뒈져라, 뒈져!'를 외치기 까지의 시간이 왜 이리 공허하게 다가 오는지 모른다. 그 시절 그 아이들.. 동호만이 그리 살았던 것이 아니기에 그럴수 있지라고 할수 있을까? <한, 그 그늘의 자리> 임심 6개월의 대학교수의 첩으로 다가온 경희. 그리고 그네를 알고 있는 태섭. 어린시절 경희가 느꼈던 수치를 태섭은 몰랐을 것이다. 그것이 무엇인지.. 그냥 그네가 주던 초코렛이 좋았을 것이다. 그 수치로 자신의 정상적인 삶을 인정하지 못하는 그녀. 굶주린 동생을 먹여야 한다는 욕망은 어린 그녀에게는 당연한 것이 었을지 모른다. 그걸 이용하는 어른들의 잘못이지, 아이의 잘못은 아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이거 참 큰 야단났네. 시체를 이고 어떻게 잠을 자고 어떻게 밥을 먹나 그래. 재수가 없을래니까 별일이 다 생기네."(p.259) <외면하는 벽>이라는 제목을 보면서 무엇을 말하나 싶었다. 이래서 모두 병원 장래식장으로 가는구나 하는 생각을 해봤다. 의사소통의 단절과 전통의 붕괴라는 이데올로기는 <외면하는 벽>에서만 나타내고 있는 것은 아니다. <마술의 손>속에서 보여지는 이야기들은 그 당시 전기가 들어오지 않던 오지의 변화를 보여준다. 전기가 들어옴과 동시에 들어오기 시작하는 TV, 그리고 전자제품들. 삶의 편이를 위해 들여오기 시작하는 물건들이 어떻게 한마을을 사람들을 바꾸어 놓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8편의 단편을 읽는 내내 어쩜 이리 하나도 행복한 결말이 없을까하며 가슴이 쓰려왔다. 색이 다른 사람들. 전쟁이 만들어낸 아이들의 성장을 그린 <미운오리 새끼>마저도 행복한 결말로 보이지 않았다. "깜둥이놈 하나쯤 꼬시는 건 자신있어... 난 거기선 최소한 구경거리는 아니란 말야. 섞여버리는 거야. 묻혀버리는 거야. 그것만으로 난 미치게 행복할 거야."(p.306). 처음엔 말이다. 그래도 애리샤를 보는 창규를 보면서 아이들과 함께 꿈꾸는 미래를 보면서 이 한편의 단편으로 가슴이 따뜻해져 온다. 희망이 있으니까 말이다. "그게무슨 상관 있어요. 그런 수술하는 처녀가 요새 세상에 어디 한둘인가요? 겨우 살아나고 나니까 별것 다 가지고 트집이군요. 아주머닌, 소문이나 내지 마세요."(p.390)
마지막은 희망을 이야기하는 구나 하면서 씽긋 웃으려고 하는 순간 작가는 그럴수는 없지. 1970년대의 민족의 삶인데 하면서, 이도 저도 아닌 자본주의와 국가 권력의 유착 관계를 어느 시골 마을에서의 귀신 소동에 빗대 비꼬고 있는 감칠맛 나지만, 헛 웃음 나게 만들어 버리는 <두개의 얼굴>로 쐐기를 박아 버린다. 1970년대 초에 태어났다. 어린시절이었고 서울에서 살았으니 이런 삶을 모른다. 정말 이랬을까 싶을 정도로 가슴이 쓰려온다. 조정래 선생의 소설이 행복하고 웃음 가득하게 만드는 이야기들은 많지 않음을 알고 있지만, 이 8편의 단편은 <외면하는 벽>을 타이틀로 내걸었 듯 철저하게 등을 돌리고 있다. 이웃에게서 등을 돌리고, 가족에게서 등을 돌리고, 심지어 나 자신에게서 조차도 등을 돌리고 있다. 읽어내려가면서 선생의 <허수아비 춤>이 생각났다. 일광그룹 남회장의 구구팔팔이삼사. 1970년대의 이 처절한 시간을 지난 지금 9988234를 외치고 있는 사람도 있는 지금. 2012년 봄을 지나는 5월의 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