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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강 연필 - 2011년 제17회 황금도깨비상 수상작 ㅣ 일공일삼 71
신수현 지음, 김성희 그림 / 비룡소 / 2011년 5월
평점 :
작년에 이 책이 얼마나 난리였는지 모른다. 그런데도 왜 읽지 않았냐면... 그림동화인 줄 알았다. 그림 몇장 들어있는 동화겠지 하고는 잊고 있었는데, 도서관에 갔다가 이 책이 눈에 들어왔다. 그림책이 아니다. 왜 그림책이라고 생각했을까? <연필하나>라는 손미나씨가 번역을 했던 그림책의 영향이 있지 않았나 싶기는 하지만, 눈을 확 끌더니, 그 자리에서 다 읽어 버렸다. 오... 재밌다. 아이들 생각이 나서 대출을 해왔더니, 아이들 반응도 기대 이상이다. 아이들에게 책에 대한 이야기를 해줬더니, 역시나 작은 아이는 <연필 하나>를 이야기 하고, 큰 아이는 <요술 연필 페니>를 이야기 한다. 아이들은 자신이 읽은 책들을 이 <빨강 연필>을 통해서 기억을 해내고 있다. 그리고 나는, 기억속에서 사라졌던 <주만치>가 떠오르기 시작했다. 둥둥둥 하는 북의 울림이 있고, 엔딩을 장식했던 인도 아이들 발밑에 떨어져 있던 <주만치>.

흔히 빨간 연필이라고는 하지만, 빨강을 강조하지는 않는데, 신수현 작가는 빨강을 강조하고 있다. 책 표지 역시 반짝반짝 빛이나는 빨강색을 띈 연필이 눈을 사로잡는다. 그 속에서 만들어지는 이야기. 고양이도 있고, 나무도 있고, 꽃도 있는 이 빨강연필은 어떤 이야기를 만들어 내고 있는것일까? 삼년 전 부모님이 별거를 하기 시작하면서 민호는 모든것에 자신이 없는 아이가 되어버렸다. 엄마를 힘들게 하는 아빠. 민호눈엔 그렇게 보였고, 그속엔 민호도 포함이 되었으니까 말이다. 그런 민호가 수아의 유리천사의 날개를 깬것은 실수였다. 수아 책상서랍에서 유리 천사가 떨어질지 누가 알았겠는가? 하지만, 민호는 수아에게 이야기 할수가 없었다. 5학년 이니까. 좋아하는 여자 친구가 소중이 여기는 것을 깼다고 당당히 말할수 있는 친구들은 별로 없다. 게다가 모든것이 위축되어 있는 상태라면 말이다. 이 아이에 책상에 떡하니 자리를 잡고 있는 '빨강연필'. 어디서 났을까? 주인이 없는 이 빨강색 연필이 민호의 일상을 바꿔놓기 시작한다.
'엄마랑 아빠가 부부 싸움 했는데 아빠 때문에 엄마가 계속 울었다. 아빠가 그냥 없었으면 좋겠다.'(p.32)라고 민호가 3년전에 일기를 쓴후 민호는 일기를 쓸때 다른 사람이 봐도 괜찮을 내용만 쓰기 시작했다. 그래서 민호의 일기장은 두개다. 남에게 보여줘도 상관없는 일기장과 자신만의 일기장. 민호가 빨강 연필을 깎기 시작했다. '칼날이 연필에 쑤욱 들어가더니 진한 나무 향이 풍겨 나왔다. 처음 맡아 보는 독특한 향이었는데 순간적으로 가슴이 뭉클하며 설렜다. ... 알싸하면서도 매혹적인 향이 가슴에 퍼지는 게 느껴졌다.'(p.21) 민호에 손에 들린 연필은 살아있는 듯 움직이기 시작하고, 민호에게 한번도 받아보지 못했던 선생님의 칭찬을 받게한다. '참 잘했어요'(p.25), '글짓기 실력이 많이 늘었구나. 더 열심히 하길 바란다.'(p.37) 민호가 들어보지 못했던 칭찬은 엄마를 기쁘게 하고, 민호의 빨강 연필은 피겨스케이팅 선수처럼 유연하게 민호에게 글을 선사한다.
빨강연필과 함께쓴 '호랑이 보다 무서운 것'과 '우리집'은 민호의 일상을 바꿔놓기 시작하면서 선생님은 민호에게 백일장에 나가보라는 말씀을 하시게 된다. 빨강연필이 없어도 글을 쓸수 있을까? 지금까지 쓴 글들이 민호의 실력일까? 정말 열심히 글짓기를 배우고 있는 재규에 눈에 민호는 거짓투성이로 보였을지도 모른다. 아니, 재규는 눈에 보이는 민호의 실력이 부러웠을 것이다. 민호 역시 빨강연필을 두려워했지만, 재규가 민호의 빨강 연필을 숨겼을때 민호는 무서웠다. 빨강연필 없이 글을 쓴다는 것이 말이다. 어쩌면 재규와의 다툼으로 손을 다친것이 마음을 편하게 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백일장의 시제. '내가 가장 즐거운 때는'으로 시작되어지는 <행복>은 민호에게 어울리는 말이 아니었기에 민호는 <고통>을 이야기 한다. 이렇게 민호의 일상이 돌아온다.
'이봐, 난 너의 보물이야. 너에게 찾아온 행운이라고. 다른 애들은 나 같은 행운을 놓치지 않아. 널 최고로 만드렁 줄게. 난 충분히 그럴 힘이 있어.'(p.187) 빨강연필의 유혹은 강렬했다. 불속에서 재로 변한 '우리집'과 달리 빨강연필은 끊임없이 민호를 유혹하지만, 민호는 빨강연필을 보내 버린다. 그리고 민호는 가슴속에 뭉쳐 있던 응어리가 터져 나오면서 아프기도 하고 후련하기도 했다. 그렇게 빨강연필은 민호에게서 사라져버린다. 민호가 빨강연필과 함께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민호는 연필만 믿고 따라가지는 않았다. 어렸을때 부터 책을 좋아했다는 민호는 엄마와 함께 도서관을 다니고, 더많은 책을 읽기 시작한다. 이렇게 자신도 모르게 글이 늘었을 것이다. 그리고 민호가 쓴 백일장 글 <고통>은 송지아 선생님의 <날아라 학교>의 러브콜을 받게 된다. 이제 민호는 자신의 힘으로 글을 쓰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빨강연필은 주만치처럼 민호같이 아파하는 아이를 찾아간다.
마법의 연필은 아이들에게 굉장히 매력적인 소재로 다가온다. 그뿐인가?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의기소침하고 있던 아이가 글을 쓰면서 자신을 믿어주는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되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이글 속 소년은 자신을 믿어 주고 다독여 주는 사람들을 앞에 두고 진실을 밝힐 수 없어 외로움과 두려움도 느끼면서 커간다. '빨강연필'은 아이에게 어떤 말도 하지 않는다. 다만, 아이의 맘속에 자리잡고 있는 진실을 쓰지 않아서 아이가 스스로 죄책감을 느끼게 만들고 있다. 민호가 느끼는 빨강연필은 '너에게 찾아온 행운이라고. 다른 애들은 나 같은 행운을 놓치지 않아'(p.187)처럼 정당하지 않은 유혹이다. 그러기에 5학년 이 소년은 유혹을 뿌리치고 자신을 믿는 이들을 위해 좀 더 당당하고 용기 있는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마음을 갖기 시작한다. 누군가에게 손을 내미는 것은 쉽지 않다. 그 존재가 친구이든, 부모든지 말이다. 민호가 아빠에게 전화를 거는 순간도, 수아에게 깨어진 유리 천사를 보여주는 순간에도 말이다. 남이 아닌, 자신의 힘으로 일어서는 민호를 보면서 우리 아이들도 이럴수 있을까, 아닌 내 자신을 돌이켜본다. 누군가의 도움만을 바라고 있는것은 아닌지 말이다. 그리고 민호의 이야기 뒤의 나오는 효주는 어떤 결정을 내릴지 궁금해 진다. 갑자기 다가온 행운은 정말 행운일까? 아님 불행일까? 그건 오로지 자신의 몫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