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군 이야기 1 시오노 나나미의 십자군 이야기 1
시오노 나나미 지음, 송태욱 옮김, 차용구 감수 / 문학동네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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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우물을 파면 암반수가 나올까 하는 생각을 잠시 해봤다.  <십자군 이야기>를 읽으면서 들었던 생각은 한우물만 판 시오노 나나미의 대단함.  로마와 그 주변 상황을 영상을 보듯이 표현한 그녀의 이야길 읽으면서, 읽는 다는 표현보다는 듣는다나 본다는 표현이 어울릴것만 같았으니 말이다.  아는것이 많아서 알려주고 싶은 것도 많고, 그래서 시오노 나나미 여사의 자기자랑만 듣고 있네 하는 생각도 가끔씩 들기는 했지만, 대단하다는 말은 절로 나온다.  내겐 이런 지식이 없었으니까 말이다.  시오노 나나미여사를 보면서 스치듯 다가오는 인물은 얼마전에 타계하신 박병선 선생님이셨다.  자신의 일생을 바쳐서 무엇인가에 매진하는 그녀들의 모습이 아름답다. 그리고 지금의 나를 바라본다. 지금 난 뭘 하고 있는건가? 나도 지금 우물하나는 파고 있는건가?

 

이것은 내가 명하는 것이 아니다. 주예수 그리스도가 명하는 것이다.  그 땅으로 가서 이교도와 싸워라. 설사 그고세서 목숨을 잃는다 해도 너희의 죄를 완전히 용서받게 될 것이다. 신계 부여받은 권한으로, 나는 여기서 그것을 분명히 약속한다. (p.24) 

 

 서른여섯 살에 로마 근처 오스티아의 주교로 임명되었고, 그 후에도 자주 교황의 대리인으로서 황제와 유력한 제후와의 교섭을 담당했던 우르바누스2세가 교황에 선출된 것은 1088년, 마흔여섯살때다. 그로부터 7년 후 이 교황 우르바누스 2세에 의해 십자군 원정을 이야기 한다.  이슬람교도는 지중해까지 세력을 확장해 너희 형제를 공격하고, 죽이고,납치해 노예로 삼고, 교회를 파괴하고, 파괴하지 않은 곳은 모스크로 바꾸고 있다.  그들의 폭력을 더이상 용납해서는 안된다.  지금이야말로 그들에게 맞서 일어설 때다(p.24)라고 분기탱천하여 의치고 있다. 과연 이것뿐이었을까?   그가 이야기하고자 했던것이 말이다.  어쨌든, 그의 말은 먹혀들었다.  책을 읽으면서 느꼈던, 너무나 세속적인 민중 십자군을 외쳤던 은자 피에르를 주시하여, 툴루즈 백작 레몽과 교황의 대리인인 아데마르주교, 로렌공작 고드프루아, 고드프루아의 동생 보두앵, 풀리아 공작 보에몬드, 보에몬드의 조카 탄크레디를 비롯해서, 부인 등살에 떠밀렸다해도 끊임없이 떠밀리고 있는 블라아 백작 에티엔과 노르망디 공작과 플랑드르 백작까지 1차 십자군 전쟁의 걸출한 인물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황제나 왕후는 참전을 하지 않고, 오직 제후들이 움직이기 시작한 제 1차 십자군의 세력들.  

 

 이야기는 1078년 '카노사의 굴욕'으로 들어가 봐야 한다.  십자군 전쟁의 처음의 의도는 이것이 아니었을까?  카노사에서 교황 그레고리우스 7세가 신성 로마제국의 황제 하인리히 4세를 눈싸인 벌판에서 우리말로 하면, 석고대죄를 하게 한것부터였을것이다.  자신의 말을 안들었다는 이유로 '넌 아냐. 이제부터 기독교인이 아냐'를 외쳐버렸으니 말이다.  중세는, 그것도 유럽은 그렇게도 그리스도를 탄압했을때는 언제고 이젠 언제 그랬냐는듯이 교황의 말 한마디로 파면을 시켜버리니 아이러니한다.  역사의 아이러니가 이뿐은 아니겠지만, 우스운것은 사실이다.  젊은 황제의 석고대죄는 교황의 승리인것 처럼 보였다.  분명 그랬을 것이다.  그런데 누가 알았을까? 이일로 인해서, 그레고리우스 7세가 자신의 거처로 돌아올수 없었다는 것을 말이다. 우르바누스 2세는 그레고리우스7세보다는 지략이 뛰어났었던 것 같다.  황제를 눈 속에 세워둠으로써 로마교황의 권위를 과시하는 것이 아니라, 전 유럽의 그리스도교도들을 이슬람과의 전쟁에 내보냄으로써 로마교황의 권위를 과시하는데 성공했으니 말이다.  작가의 말처럼 우르바누스2세는  황제 하인리히를 상대로 한 건력투쟁에서 20년만에 승리를 했다.

 

면죄에 이끌려 십자군에 참가한 살인자와 도적,  처음부터 신에게 일생을 바치기로 서약한 성직자의 차이도 없었다.  예루살렘은 그런 도시였다.  사람들에게 이런 마음을 갖게 만드는 도시. 또 그것이 그리스도교와 유대교와 이슬람교 구별없이 모두에게 그런 마음을 갖게한다는 것이, 일신교들 사이의 마찰을 낳는 원이기도 했다. (p.222)

 

 지금이야 이렇게 말도 안되는 이야기에 고개를 끄덕일 사람이 몇이나 되었을까마는, 교황의 말은 신의 말이었던 그 당시에 면죄부는 뒤돌아보게 만드는 강렬한 유혹이었을 것이다.  '그곳에 가서 그 땅을 찾으면 어떤 죄를 지었어도 면죄가 되.  죽는다면 순교가 되고. 얼마나 멋져.  예수님 옆에 있게 될꺼야.'  살인과 강탈을 해오던 무리부터 시작해서 이런 유혹은 은밀하고 뿌리칠수 없는 금단의 과일의 향을 풍겼을 것이고, 그 금단의 과일을 탐하기 위해서 움직이기 시작했다.  십자군 전쟁에 관한 책들은 굉장히 많다.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는 순간부터 아이들은 국사와 세계사를 배우고, 그속엔 십자군전쟁이 나온다.  우리의 역사가 고려를 지나고 있을때, 그 당시 세계는 어떻게 돌아가고 있었을까?  그것이  중세의 십자군 전쟁이다.  거지꼴을 하고 있는 민중을 이끌고 움직이기 시작한 은자 피에르를 필두로, 움직인 인물들이 어떻게 삼년만에 예루살렘을 탈환했는지 저자는 <십자군 이야기 1편>에서 다루고 있다.

 

 동양에 장기가 있다면, 서양엔 체스가 있다.  체스의 말들이 움직이듯이 십자군을 이끌었던 십자군 역사의 1세대들이 움직이기 시작한다.  연륜으로 우두머리가 될 법 함에도 여간 이상한 짓을 하고, 삐지기 잘하는 레몽과 듬직한 고드프루아와 풀리아 공작 보에몬드. 그들의 움직임, 치고 빠지고 하는 전투가 눈에 보이기 시작한다.  중동의 지형이 보이기 시작하고, 그들이 어떻게 그 땅을 찾기 시작했는지가 보이기 시작한다.  그리스도교 쪽에서야 당연히 성 예루살렘 탈환이지만, 이슬람 쪽에서는 말도 안되지 흥~하고 콧방귀를 뀌었을 그런 일들이 그려진다.  작가는 이야기한다.  이 시기의 중동의 인물들은 왜 유럽에서 이들이 이렇게 몰려 왔는지 이유를 모르고 있었다고 말이다.  그들의 목표가 무엇이었는지. 왜 이렇게 중무장을 하고는 남의 땅에 몰려와서는 우우거리고 돌아다녔는지를 몰랐다고 말이다.   십자군 역사의 제 1세대에 속한 인물들이 특출나기도 했지만, 그와 동시에 그들을 맞이하는 이슬람측에는 그리 걸출한 장수가 없었던 것도 1차 십자군 전쟁의 승리의 요인이기도 했다는 것이다.  

 

 1118년을 기점으로 십자군 역사의 제 1세대 전원이 퇴장을 한다.   1105년 툴루즈 백작 레몽 사망.  1098년 아데마르 주교 안티오키아 공방전 중 사망, 1100년 로렌공작이면서 예루살렘의 '성묘의 수호자' 고드프루아 사망, 1111년 풀리아 공작 보에몬드 사망, 1112년 청춘의 대명사인 보에몬드의 조카 탄크레디 사망, 1118년 고드프루아의 동생이며 예루살렘 1대 왕 보두앵1세 사망.  그 시기와 맞추어 끝임없이 십자군의 제후들과 힘겨루기를 했던 비잔틴제국 황제 알렉시우스도 죽음을 맞는다.    제 1차 십자군에 의해 시리아와 팔레스티나 땅에 수립된 십자군 국가는 이들 제 1세대가 만들어 냈다.  유럽을 뒤로한 1096년 예루살렘을 함락할 때까지 3년 동안 정복하고, 그후 18년을 들여 확립해 나간 것또한 이들이었다.   황제도 왕도 참전하지 않은 제 1차 십자군의 주역들은 유럽각지에 영지를 가진 제후들이었다.  그들은 때때로, 아니 자주 이기적으로 행동하고 분열을 반복했지만, 최종목표 앞에서는 언제나 단결했고, 신이라는 이름으로 뭉쳤다.  그리고 이것이 제 1차 십자군이 성공한 주된 요인이었다.  

 

 역사는 끊임없이 반복 되지만, 그 변화와 반복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있다.  말도 안된다고 치부해 버리면서도 바르톨로메오에 의해서 발견된 '성스러운 창'은 레몽의 죽음과 함께 4개로 늘어나기로 했고, 자신도 믿지 못하면서 불의 시련을 하겠다면서 불속으로 뛰어드는 인물도 있었다.  이뿐인가?  그리스도가 못박혔던 십자가라면서 열심히 들고 다니는 사람들도 있다.  그건 도대체 어디서 발견했단 말인가?  알수 없는, 자신의 권위를 위한 한마디가 십자군 전쟁을 일으켰다.  자신이 참전하지 않은 전투.  누군가는 그의 말에 목숨을 내건다. 그리고 그들은 그것을 전부로 안다.  나는 신을 믿는다.  유일신을 유일하게 믿는다.  그리고 그들도 유일신을 믿는다.  단 하나의 유일신.  그 신을 위한 싸움이 시작된 곳.  그곳으로 향하기 위해 그 많은 사람들이 죽음속으로 들어갔다.  그길이 죽음임을 알면서도 들어갔다.  이제 십자군 역사의 1세대들은 떠났고, 그들의 영웅담만이 남았다.  그들의 영웅담은 뛰어난 기사들의 뒷이야로 남기고, 이제는 걸출하게 태어난 이슬람 용사들의 이야기를 들어 볼 차례다.   이제 준비는 되었고, 이슬람 용사들의 이야기속으로 떠나가봐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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