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녹지대 1
박경리 지음 / 현대문학 / 2012년 1월
평점 :
절판
굉장히 빠른 속도로 책장이 넘어간다. 그렇다고 흔한 연애소설처럼 재미가 있는것은 아니다. 그냥 넘어간다. 읽으면서 끊임없이 60~70년대의 영화들이 떠오른다. 맨발의 청춘도 떠오르고, 겨울여자도 떠오른다. 내용이 생각나는 건 아니다. 그냥 그 말투, 언제 봤던 영화들이었는지 조차 기억에 없지만, 중학교 이후 TV를 통해서 본 영화 속 말투를 <녹지대>를 통해서 다시 만났다. 그런데 녹지대가 뭐지?
녹지대를 모르세요? 한국이 비트족들이 모이는 음악 살롱이에요. p.56
beat generation, 폐배세대라는 뜻으로 2차 대전후 생겨난 보헤미안적인 문학인과 예술인들이 모이는 곳이란다. 그 녹지대가 영화의 타이틀처럼 전체를 아우르고 있다. 녹지대는 명동에 있는 음악 살롱이다. 시인의 꿈을 키우고 있는 하인애가 같은 꿈을 꾸는 사람들과 어울리는 곳이다. 인애는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대학교수인 하흥수와 사채놀이를 하는 최경순 여사, 대학생인 하숙배와 함께 살고 있다. 산다는 표현이 옳은지는 모르겠다. 이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는 언제 어디서 나타났는지 알수없이 집안을 들락 거리고, 비가 내리면, 비님이 오신다면서 비를 맞고 녹지대로 들어간다.
음악 살롱, 녹지대에는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인물들이 끊임없이 등장한다. 하지만, <녹지대>1권은 인애가 만나려는 인물을 안개속 깊이 감추어 버리고 있다. 분명 이 자유로운 여인, 인애가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것은 알겠지만, 왜 그를 사랑하고 무엇이 그들을 못 만나게 하는지는 정확하게 나오지 않는다. 통금에 갇히고, 사람에 갇히면서 인애는 '김정현'이라는 인물을 만나지 못한다. 김정현이라는 인물과 함께, 인애의 사촌, 숙배, 친구 은자의 연애관계가 민상건, 한철, 박광수라는 인물들과 얽히기 시작한다. 중심엔 민상건이 있는듯 하다가, 김정현이 있기도 하다. 아직 이야기는 모르겠다.
인애는 이야기 한다. "살인자라도 좋다! 강도라도 좋다! 나,나는 그를 만나애 해!"라고 말이다. 사랑은 언제나 끓는다. 펄펄 끓어 쏟아질것 같은 용암을 더 끓게 하는 것이 사랑이 아닐까? 사랑하나만으로 이제는 살수 없음을 알 나이가 되어버렸는데, 청춘의 피가 끓는 이들은 사랑에 목을 멘다. <녹지대>는 故 박경리 선생이 1964년 6월 1일에서 1965년 4월 30일까지 부산일보에 연재한 장편 소설이다. 50년 전에 쓰여진 소설을 읽기에, 그 시절 영화들의 말투에 피식거리면서 웃음이 난다. 그리고 사랑에 눈물이 난다. 어쩜, 이제는 이런 사랑을 만나지 못할지 모르겠으니까 말이다. 스무살 어린시절의 사랑이 이랬었지. 가슴이 아리고 메여서 눈물 흘리고, 새벽이든 늦은 밤이든 상관치않고 그를 만나기 위해서 달려갔었지.
숙배가 끔찍하게 인애를 생각하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최경순 여사가 인애를 견딜 수 없으리만큼 미워하는 것도 아니다. 그들은 어쩌면 자기 자신들의 감정을 인애를 매개하여 발산하고 불평한 것인지도 모른다. 강한 개성이 자아내는 몸서리치는 고독 속에 그들은 다 빠져 있었으니까. p.146
이 어린 아가씨들의 사랑만 있을까? <녹지대>속 사랑은 젊은 연인들의 사랑만을 다루고 있지는 않다. 무엇 때문에 경순여사는 이토록 자신의 감정을 발산할곳이 없어서 가슴을 아리고 있을까? 작가는 젊은 연인들뿐 아니라, 대학교수 하흥수씨와 그의 부인 최경순 여사, 그리고 주치의인 한윤석박사의 이야기를 풀어낸다. 1964년부터 쓰여진 글이다. 한국전쟁 후 근 15년이다. 전쟁의 폐혜 속 에서도 사랑은 꿈틀거린다. 전쟁으로 부모를 잃은 아이, 전쟁으로 양공주가 되고 살수 밖에 없던 사람, 그리고 살아야만 하는 사람들. 그들의 이야기가 <녹지대>를 통해서 펼쳐진다. 여전히 풀리지 않는 민상건과 김정현이라는 인물의 수수께끼는 2권에서 풀릴 듯 하다. 책 뒷표지의 실려있는 1960년대를 살아가는 젊은이들의 불확실하고 불명료한 사랑과 절망이 담긴 구원의 서사는 2권까지 읽어야 알수 있을것 같다. 하지만, 청춘은 뜨겁다. 그것만은 확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