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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만장 빅토르 ㅣ 지그재그 20
드니 베치나 지음, 필립 베아 그림, 이정주 옮김 / 개암나무 / 2011년 10월
평점 :
절판
피코트와 나는 저녁마다 만나서 데이트를 했어요. 나는 이전에 살았던 멋진 삶을 얘기했어요. 하지만 지금의 삶은 얘기하지 않았어요. 창피하니까요. 나는 피코트를 만날 때마다 좀 더 멋져 보이고 싶었어요. 그래서 영화배우였던 여섯 번째 삶에서 대단했던 일만 골라서 얘기했어요. 그때 난 미국 할리우드에 살았고, 수많은 영화의 주인공이었어요. p.34
고양이는 몇번이나 살까? 생명이야 다 똑같지 않을까 하고 생각을 하지만, 그렇지 않은가 보다. 어느나라 속담에 고양이는 아홉번 산다는 이야기가 있단다. 그리고 그속담이 <파란만장 빅토르>의 모티브다. 아홉번 사는 고양이. 빅토르는 고양이가 죽으면 가는 고양이 천국에 가서 잔치를 한 다음 다음번 삶은 어떻게 태어날지 종이쪽지에 적곤했다. 물론 종이에 적은 바람대로 여덟번을 새로 태어났다. 힘이 센 고양이, 똑똑한 고양이, 잘생긴 고양이, 부자 고양이, 심지어 할리우드 스타 고양이로도 살아 본 빅토르는 아홉번째 삶을 위한 종이에 어이없는 단어를 써버렸다.
여덟번이나 멋진 고양이의 삶을 살아본 빅토르가 그렇게 고심하고 고심한 끝에 쓴 단어는 '나'였다. 나. 나라니. 그냥 빅토르처럼 살고 싶다는 말이다. 아차 싶은 순간, 빅토르는 빅토르로 태어나 버렸다. 빅토르 1세, 빅토르 2세와 빅토르 4세가 있는 집에 빅토르 3세로 살게 되어버렸다. 이 어이없는 실수로, 이젠 힘이세지도 똑똑하지도, 잘생기지도 그렇다고 잘 달리지도 않은 그저 그런 고양이가 되어버린 고양이. 잘 나가던 옛 모습을 그리워하고 지금의 자기 자신에게 만족하지 못하며 한탄만 한다. 왠지 어르신들이 소싯적엔~하면서 과거를 이야기하던 모습이 떠오른다.
그래도 빅토르에겐 친구가 있다. 날쌘 고양이 테제베. 테제베가 있어 조금은 행복하다. 그리고 말도 안되지만, 예쁜 여자 친구 피코트도 있다. 멋진 고양이들이 얼마나 많은데, 피코트가 빅토르를 선택한것일까? 그래서 빅토르는 피코트를 만날때마다 이전에 살았던 멋진 삶을 이야기 한다. 이유는 없었다. 다만, 지금의 모습이 너무 창피하니까. 피코트에게 잘 보이고 싶었으니까 그렇게 했을 뿐이다. 하지만, 그건 빅토르가 아니었다. 테제베가 원했던 고양이도 피코트가 사랑한 고양이도 과거의 멋진 고양이가 아닌, 현재의 빅토르. 과거에 가졌던 것을 한가지도 가지고 있지 않지만, 사랑스러운 고양이, 빅토르였다. 나답게 사는 삶. 내가 나다와 지는 자신을 아길 수 있는 삶이 가장 아름다운 삶이 니까.
난 내가 되기로 결심했어요. 이게 내가 나한테 줄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선물이에요. 난 살면서 내가 원하는 걸 할 수 있어요. p.54
빅토르가 자신을 찾아가는 과정은 어렵지 않게 나와있다. 저학년 문고이기때문에 아이들과 소통의 목적도 있을듯 하지만, 이야기를 따라가다보면 우정과 사랑, 자아찾기까지 꽤나 심오한 주제를 가벼운 터치로 이야기를 해준다. 몬트리올 시립 도서관장이라는 저자 드니 베치나는 책읽기는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기쁨 중에 하나라고 말한다고 하니, 그의 책이 어린이를 위해 재미와 감동이 있는 어린이 책을 쓰고 있다는 작가 소개와의 일맥상통한다. 재미있다. 게다가 이 짧은 글속에 감동이 있다. 아홉번의 고양이 목숨이 아이들이 하는 게임속 목숨처럼 하나가 사라져도 life를 표시하는 하트가 남아있듯 보여서 약간 걱정이 되긴 하지만, 독특한 고양이의 삶은 지금 나를 돌아보게 된다. 그리고 드니 베치나의 다른 작품들, <천하무적 빅토르>와 <빅토르와 빅토르>가 궁금한 이유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