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년의 밤
정유정 지음 / 은행나무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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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령은 근방에서 가장 유명한 소녀였다.  상수원지가 있는 이 마을 어디를 가나 그 이름을 들을 수 있었다.  세령휴게소, 세령초등학교, 세령진료소, 세령파출소, 세령수목원.... p.60

 

 입소문이 읽는 속도를 앞지르는 책이었다.  그리고 그 입소문을 귀로 듣고도 무심히 지나치다가, 이제 손을 뻗어 읽기 시작했다.  책을 읽으면서, 다음장이 넘어가는것이 무서운 경험을 오랜만에 가졌다.  무엇이 무서웠을까?   혹시 내가 생각했던 일이 벌어 질까봐 무서웠는지도 모른다.  결론적으로는 내가 생각했던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럼에도 읽는 내내 소름이 돋았고, 책장을 덮은 순간이 안심이 된것도 아니었다.   해피엔딩도 세드엔딩도 아닌 이야기. 그렇다고 열린결말이라고 말할 수도 없는 그런 이야기들을 정유정 작가는 풀어내고 있었다.

 

 서원.  열두 살 어린 소년에게 남겨진 이름은 '살인마의 아들'이었다.  '세령호의 재앙'이라고 불리던 사건은 끊임없이 서원 주위를 짙은안개처럼 퍼져있었고, 세령호의 재앙속에서 엄마를 잃고, 아빠는 살인마가 된 지금, 의지할 곳은 친적도 가족도 아닌, 세령마을에서의 룸메이트 승환이었다.  승환은 왜 서원과 함께 세간의 눈을 피해 사는걸까?  세령호의 재앙이 있은 7년 후, 또 다시 서원에게 스포트 라이트가 따라붙기 시작한다.   그리고 서원은 7년전 잃어버린 자신의 운동화와 함께 한편의 소설을 배달 받게 된다.  7년전 그날 밤 무슨일이 일어났던 것일까?

 

 현수.  2군이었지만, 거대한 그는 조만간 1군이 될수 있을것 같았다.  그녀, 은주를 만나 결혼하고 신혼여행을 간 그날 사고를 당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연상의 그녀를 만나고, 야구를 그만 둔 그 순간부터 그에겐 용팔이도, 최상사도 나타나지 않은듯 했다.  하지만, 술은 그를 다시 나락으로 빠치게 만들었다.  왜 술만 마시면 운전을 하고 싶은걸까?  술로인해 무면허가 되었음에도 아내에게 이야기하지 않았다.  그냥 버티고 싶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날 그 짙은 안개속에서 만난 세령은 그의 손에 의해 죽임을 당하고 세령호속으로 빠져들어갔다.

 

 분명 소설은 현수를 살인마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세령을 죽인것도 현수였고, 수문을 열어 수많은 사람을 죽인것도 현수였다.  살인마이기에 그의 아들은 살인마의 아들이 되었다.  그런데 이 개운치 않은 뒷맛은 무엇일까?  세령이 죽기 전 가학적인 그녀의 아빠, 영제.  오영제. 세령마을의 대 부호, 치과의사, 어느것 하나 빠질것 없는 오영제.  그와 함께 그 마을에 있는것 부터가 잘못이었다.  그가 몰고오는 짙은 안개.  교정이라는 이름의 그 안개속 검은 그림자.   누구를 향해 다가가는 것일까?  

 

 슬금슬금, 하지만 터벅 터벅 발자욱 소리가 들리는 것 같은 그런 소설이었다. 공포가 스물스물 올라오는 소설은 분명 아닌데, 읽는 내내 공포를 느끼는 소설이었다.  은주의 행동을 이해하면서도 분노하게 되고, 현수에게 울화가 터지다가도 서원을 향한 그의 부정으로 가슴 아련한 그런 소설이었다.   자신만의 성을 쌓고 사는 영제를 어떻게 이해해야할지 모르다가도, 그의 삶이 불쌍한 그런 이야기 였다.  그리고 그 곳에 서원과 승환이 있었다.  승환...?   그는 누구일까?  7년.  짧다고 하면 짧지만, 서른의 그가 마흔이 되어버린 7년.  그동안 승환은 서원과 함께 한다.  이 소년이 무엇이길래, 자신의 인생을 이 어린 소년과 함께 하고 있을까?

 

 선데이서울은 서원과 승환을 떠돌이로 만들어 버리는 마법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뒤의 그림자.  7년이 지난 지금 그 그림자가 나타나기 시작한다.  숨통을 조이듯, 서원과 승환을 조금씩 조금씩 조여오기 시작한다.  자신만의 것이라고 여겼던 가족이 사라진 뒤, 영제가 보여주는 분노는 발작이었다.  미치광이의 서곡같았다.  그리고 그 서곡은 7년동안 잔잔히 흐르고 있었다. 자신이 생각한 시나리오를 완성시키기 위해서 말이다.  소설가 조용호는 이야기 한다. '운명이 난데없이 변화구를 던진 밤.' 당신이라면 그 저주 받은 생을 어떤 타구로 받아칠 것인가라고 말이다.

 

 한 남자는 딸의 복수를 꿈꾸고, 한  남자는 아들의 목숨을 지키려 한다.는 카피 문구는 책속의 모든 내용을 이야기 하고 있다. 그리고 이 한문장이 사실과 진실사이에 있는 '그러나'를 생각하게 만든다.  작가의 말처럼 우리는 모두 '그러나'를 피해 갈 수 없는 존재이니 말이다.

 

야구는 단순한 거야.  공을 던지고, 공을 치고, 공을 받고, 타자가 타석에 들어오면 투수는 공을 던져야 하는 걸세.  포수는 승부구를 요구해야 하고. 7년전, 그 아이는 내가 지켜야 할 공이었지만 이제 아냐. 내 배터리야.  내가 사인을 보내고 서원이가 던지는 거야. 내 사인을 거부하든.  받아 들이든 그건 그 아이의 선택이지.  하지만 공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자네야.  그 아이에게 선택할 기회를 주게. p.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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