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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토
조정래 지음 / 해냄 / 2011년 5월
평점 :
점예 너 같은 애들은 특히 조심해야 돼. 그 예쁜 얼굴을 지키는 주인이 없어봐라. 당장 매가 병아리를 채듯 휘이익.... p. 43
그 예쁜 얼굴이 문제였을까? 점예는 그렇게 살고 싶지 않았다. 점예가 원한 삶은 분명 아니었다. 아버지를 죽일 수가 없었기에 열일곱 꽃다운 아가가 왜놈의 첩이 되어 아이를 낳았고, 사랑하는 남편이 남편이 남기고간 어린 딸을 살려야 했기에, 미군 대위 프랜더스의 말을 따를 수 밖에 없었다. 남들은 다 잘 사는 것 같은데, 인간답게 살 수 없는 세상일지라도 살아야 한다는 것. 그것밖에 길이 없다.

항아리를 눕혀 딸의 시신을 넣으며 점례는 더는 울지 않았다. 자신의 잘못이 아니었다. 자식을 지켜내기에는 전쟁의 물결은 너무나 거세고 무정했다. p.228
분명 그녀의 잘못은 아니었다. 어느것 하나 그녀의 잘못은 아니었다. 험하고 고달프게 살아온 세월이었다. 남은 것이라곤 세 자식뿐이었다. 아비가 다른 세 자식들, 태순. 세연, 동익. 뒷바라지를 하느라고 허둥지둥하며 한시도 편할때 없이 억척스럽게 살아왔고, 자식들이 잘 되는 것만이 소원이었고, 그것이 유일하게 잡고 있었던 삶의 끈이었다. 그런데 쉬운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녀의 소망되로 된것이 어디 있던가?
일제 말기부터 해방 전후, 그리고 한국전쟁을 거치며 아비가 각기 다른 세 자식을 키울 수밖에 없었던 한 여인의 굴곡진 인생이 그려져있다. 어느 날 작은아들의 조난 소식 앞에 자신 역시 일본 순사의 씨이면서 파란 눈을 한 동생을 '인디언을 개 잡듯 한 살인자의 피'가 흐른다는 이유로 멸시하는 큰아들의 태도에 모욕감을 느낀 주인공의 지나온 삶을 회상하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살아가는 것이 어찌나 아픈지 모른다. 1999년도에 '조정래문학전집'(전9권) 네 번째 책 <비탈진 음지>에 수록 출간되었던 중편 '황토'가 2011년 5월 200여 매에 이르는 내용을 새롭게 추가 집필하고, 한 문장 한 문장을 처음 쓰듯 다듬어 장편으로 전면 개작해서 다시 나왔다. 200여 매가 추가 집필되어 장편으로 나왔어도, 중편을 읽지 않은 상태에서 읽어서 그런지, 호흡이 짧다. 얼마전에 <비탈진 음지>를 읽은 후라, 두 이야기가 같은 무게로 가슴을 내리 누른다.
예전의 삶과 지금의 삶. 어느것 하나 새로울 것 없어 보이는 이들의 삶이 허허하고 웃게 만들지를 않는다. 이제야 행복을 찾는가 보다하는 그순간, 그녀의 삶은 다시 나락으로 내려가고, 아무도 그녀를 감싸줄이가 없었다. 그래도 그녀는 어미다. 아무리 어린 나이에 어미가 되고, 원치않은 상태에서 어미가 되어도 그녀는 어미다. 산불난 산 중턱에 다 타들어간 까투리 날개 속에 새끼병아리들이 살아있듯, 아이들을 어떻게 해서든 살려야 하는 그녀는 어미다. 그 새끼들이 이제는 지 어미 목숨줄로 살았는지는 모르고, 지잘났다고 삐약삐약 악다구니를 친다.
새끼들만 삐약거렸을리가 만무다. 여기서도 웅웅되고, 저기서도 웅웅되고 50년 그리 길지 않은 삶 속에서 그녀는 너무나 많은 것을 겪었다. 그녀의 사랑을 다시 만날 수는 있을까? 알 수 없다. 조정래 작가는 완벽하게 뒷이야기는 독자의 몫으로 남겨 놓고 있으니 말이다. 아주 짧은 사랑일지라도, 삼 남매를 보면, 부모의 사랑이 얼마나 중요한가 하는 생각을 해본다. 그 짧은 몇해의 사랑으로 사랑을 줄줄아는 세연이가 있어 그나마 다행이다. 그래도 점예의 삶이 가슴 아픈것은 어쩔 수가 없다. 그녀의 삶이 편안해지기를 원하지만, 어떤것이 편안일지는 모르겠다. 해피엔딩을 만들던, 세드엔딩을 만들던 그 역시 독자의 몫이니 조금 더 생각해 봐야겠다.